고개숙인 교육당국 책임자 vs 등 돌린 선생님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의 49재를 맞은 4일 교육당국 책임자들이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겠다"며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고인의 선·후배와 동료 교원들은 편지를 낭독했고, 교직단체 대표들은 고인처럼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량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선 지난 7월18일 교내에서 목숨을 끊은 교사를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이 자리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김용서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정치권에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대표 등이 함께 했다. 참석자들은 추모 영상 시청과 편지 낭독, 헌화 등 추모식 순서에 맞춰 고인을 기리며 묵념했다.
이 부총리는 추모사에서 "7월 18일은 꽃다운 나이의 선생님이 청춘을 바쳐 이룬 간절했던 꿈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난 슬픈 날이자 교육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린 날"이라며 "이날을 통해 그동안 우리 선생님들이 겪으셨을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학교와 교실이 얼마나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 7월 22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선생님들이 모여 외친 간절한 호소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그동안 무너진 교권에 대한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추모사를 읽는 도중 울컥한 뒤 몇초간 말을 멈추고 흐르는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추모제 참석자들은 의자를 반대로 돌려 앉으며 그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 교육감은 사과의 뜻을 재차 밝혔다. 그는 추도사에서 "서울교육을 대표해 깊이 사죄드린다"며 "가장 앞장서서 선생님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교육감으로서 가늠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반성한다"며 "안전하고 평화로운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정당하게 가르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임 교육감도 "선생님을 추모하는 마음과 정당한 교육활동 보호에 대한 소망은 모두가 하나일 것"이라며 "선생님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날 서이초에선 추모공간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더운 날씨에도 검은 옷과 마스크를 쓴 시민들은 학교 정문 밖까지 길게 줄을 서 헌화를 했다. 전국 교사들은 '공교육 멈춤의 날'을 통해 추모와 교권 보호를 외쳤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교사가 사망한 서울 서이초와 신목초를 포함 전국 초등학교 37곳이 임시휴업을 결정했다. 전체 초교 6286곳의 0.6% 수준이다. 교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교육부가 엄중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려던 대부분의 학교가 재량휴업일 지정을 취소했다.
하지만 추모집회 참여를 위해 개인적으로 연가·병가를 쓰겠다는 교사들의 규모는 집계되지 않아 교육당국은 '수업 공백'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교사들이 연가·병가·조퇴 등 '우회 파업'을 통해 개인적으로 참여했다. 일부 학교는 학부모들로부터 교외 체험 학습 신청을 받았다. 경기도 화성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정부가 징계를 내리겠다고 강력하게 나서 최종적으로 학교 차원의 재량휴업은 철회했다"면서도 "선생님들의 추모제 참여 의지가 커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수업을 진행하지 않거나 학부모들이 체험학습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일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교육부는 일단 연가와 병가를 낸 교사들의 징계 여부에 대해 "원칙이 바뀌지 않았다"고 재확인했다. 다만 강경대응을 고수했던 기존 입장과 달리 교사 징계 문제와 관련해 전반적으로 말을 아꼈다. 교육부 관계자도 "파면과 해임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현장의 교육 공백을 막기 위해 본청과 직속 기관 인력 300여명, 11개 교육지원청 550여명 등 직원 850명 가량을 일선 학교에 파견했다. 긴급 지원 대책은 교사들이 연가와 병가, 학교장 차원의 재량휴업일 지정 등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어려운 초등학교의 교육 공백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한편 교사들은 이날 우회 파업 외에 하교 이후 추모 집회에서도 교권 회복의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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