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높은 비대면진료… 꽃피기전에 고사위기
플랫폼기업 축소하거나 업종 전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계도기간을 마치고 이달부터 본격 시행됐지만 지나치게 좁은 문 때문에 플랫폼 기업들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고사 위기에 처했다. 현재 제도 상으로 초진은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하고 만성질환 이외의 질환으로 비대면 진료를 받으려면 같은 증상으로 30일 이내에 대면 진료 경험이 있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만약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운영 지침을 위반하면 급여·의료급여비를 환수당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현재 불법 비대면진료 신고센터를 운영해 초진 허용 예외 대상이 아닌 환자에게 비대면으로 초진하거나 진료하지 않은 환자에게 약 처방을 하는 등 의료기관의 지침 위반 의심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부터 섬·벽지 거주자와 거동 불편자, 감염병 확진자 등에 예외적으로 비대면 초진을 허용하기로 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이용자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실제 한때 30여 곳까지 늘었던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잇달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종료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1위 업체인 '닥터나우'는 서비스를 축소했다. 닥터나우는 제도에 맞춰 서류로 재진임을 증명해야만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대신 24시간 실시간 무료 의료상담, 대면 진료 병원 예약 등 다른 서비스를 확대해 헬스케어 기업으로의 사업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나만의닥터'는 비대면 진료를 중단하고 건강관리 콘텐츠와 대면 진료 예약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메듭, 썰즈, 파닥 등 7곳은 계도 기간에 이미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중단했다. 솔닥은 비대면 진료를 의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축소했하는 대신에 의료기관을 상대로 B2B(기업 간 거래) 솔루션을 제공하기로 했다.
업계는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재진을 중심으로 하고, 약 배송 또한 금지하면서 비대면 진료를 통해 매출을 얻을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원격산업의료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요청 건수는 5월 일평균 5000여 건이었지만 6월 4100건, 7월 3600건, 8월 3500건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현재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의료계는 초진은 허용하면 안된다는 입장이지만, 플랫폼 업체들은 대상 확대와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구조상 현금이 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업 방향을 바꾸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진 대상자를 확대하고 약국과 연계해 약 배송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플랫폼 업계와도 논의를 통해 상생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건호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의학한림원 원격의료연구특별위원장)는 정부 방침인 재진 중심의 비대면 진료에 대해 공감하면서 점진적 완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 안전과 의사의 편의"라면서 "초진 범위를 의사 입장에서 부담스럽게 열어주게 되면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면서 성급한 추진에 대해서는 우려했다. 그는 "재진 환자는 안면이 있어 서로 신뢰할 수 있는데, 초진 환자가 빨리 처방전을 달라고 하는 등 심한 요구를 할때 의사들이 방어를 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이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95%에 문제가 없어도 5% 비율로 환자가 사고가 나면 안된다"며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 익숙해지고 난 뒤 점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초진 허용 지역을 일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일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끝난 이후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자문단 회의와 공청회 등을 활용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측은 "현행 시범사업 모델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초진 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는 재진의 기한인 '30일 내 진료'(만성질환 이외 질병)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면서 "그 간의 시범사업 운영 경험과 의견 수렴을 통해 시범사업 모델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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