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 관여?···'팩트 체크' 결과는

김태원 기자 2023. 9. 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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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독립기념관
[서울경제]
“자유시 참변, 소련제 무기 지급 위한 반납 과정서 발생

육군사관학교 내부에 설치된 ‘독립 영웅’ 5명의 흉상 중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외부로, 나머지 4인의 흉상은 교정 내로 이전되는 가운데 홍 장군을 둘러싼 ‘자유시 참변’ 논란에 연구자들이 국방부의 주장을 일축했다.

앞서 국방부는 28일 오후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 자료를 배포해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 시 적절하지 않다"며 "홍 장군이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참변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홍 장군의 자유시 참변 개입 의혹, 공산주의자 논란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홍범도 평전' 저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지난달 3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자유시 참변에 대해 당시 소련군 측이 요구한 무장 해제를 두고 우리 독립군 내부에서 이견이 발생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독립군은 일본제·소련제·체코제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소련군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를 회수해 러시아제로 일괄 지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독립군 무기 반납 문제를 두고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소련 적군과 무기 반납을 지지했던 세력이 반대파를 공격하면 자유시 참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다. 연합뉴스
“홍범도, 재판서 독립군 석방에 최선···대종교 지원한 민족주의자”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활동한 데 대해서는 "홍 장군은 포수 역할을 할 때부터 멧돼지라든가 짐승을 잡으면 부하들하고 똑같이 나눴는데 아주 정의로운 장군, 공정한 장군으로 불렸고 그래서 맡게 됐다"며 "엄청난 비극 사태였는데도 단 몇 사람에게만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사실관계를 분명히 했다.

홍 장군을 42년간 연구해 온 시인 이동순 역시 같은 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홍 장군은 당시) 현장에 계시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그 소식을 듣고 황급히 와보니까 길가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어마어마한 동족상쟁이 타국에서 펼쳐졌고 통곡하면서 뒷수습을 시신을 땅에 묻고 황급히 뛰어다니면서 현장을 정리하고 나중에 재판관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든지 석방시키려는 혼신의 노력을 당신이 하시겠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과 관련해 ‘홍 장군이 공산주의자’라 주장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이씨는 "(홍 장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며 "연금을 받기 위해서 입당원서를 내야 된다든지 기타 여러 가지로 해서 거기(러시아) 살면서 받아들인 그런 형식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전 관장도 "홍 장군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에 매몰된 그런 분이 아니고 오히려 성향을 따진다고 그러면 민족주의"라며 "블라디보스토크 이런 데에서 체류할 때 '단군을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며 대종교라든가 민족종교, 관학 회복 이런 데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고 떠올렸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당시 소련은 일본의 적···지원받으려 공산당 입당했을 뿐”

한편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28일 러시아 자유시에서 러시아 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 부대(대한의용군)를 공격한 사건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가운데 최대 비극으로 꼽힌다.

당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이후 일제의 독립군 탄압이 거세지자 연해주와 아무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상당수 독립군 부대가 1921년 1∼3월 자유시에 모여 독립군 통합을 논의했다.

일제와 적대관계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의도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17년 발간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보면 이때 모인 독립군 수가 2000여명 정도였다.

통합 논의 초기에는 러시아공산당 극동국(局)이 지원한 대한의용군이 통합 주도권을 쥐었으나, 1921년 4월 '극동지역 볼셰비키 혁명사업'이 러시아공산당에서 코민테른으로 이관되면서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지원을 받은 고려혁명군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후 통합 조건을 두고 대한의용군과 고려혁명군이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1921년 6월 28일 더는 독립군 통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 치안유지 명목 등으로 대한의용군을 강제로 무장해제 시키는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자유시에 모인 독립군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군이거나 적어도 러시아 공산당 또는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가려는 독립군이었고 참변의 원인도 이념 대립이 아닌 독립군 주도권 다툼이었던 것이다.

독립군 연구의 대가인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19일 연합뉴스에 "당시 국제정세상 독립군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가려면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했고 그래서 많은 독립군이 자유시에 모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잡하게 얽힌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왜곡된 주장(이념 대립)으로 국민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18년 3월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제막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표지석.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연합뉴스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 주도권 다툼···홍 장군은 ‘통합’에만 관심”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 과정에서 고려혁명군 편에서 대한의용군 소속 독립군을 학살했다는 주장도 낭설에 가깝다.

1921년 3월께 자유시에 도착한 홍 장군은 당시 주도권을 쥔 대한의용군 중심의 독립군 통합에 찬성했다가, 이후 주도권이 고려혁명군으로 넘어가자 1921년 5월 기존 태도를 바꿔 고려혁명군 중심의 통합에 힘을 실었다.

양측 모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던 홍 장군으로서는 통합 주도권의 향방엔 관심이 없었고 하루라도 빨리 통합이 마무리돼 항일무장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해석이다.

공식 사료에도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자유시 참변 연구 권위자인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에 "홍 장군이 고려혁명군 중심의 독립군 통합에 찬성하고 참변 이후 벌어진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왜곡된 주장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고 오히려 참변 당시 홍 장군이 휘하 장교들과 인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했다는 증언만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성향 커뮤니티들에선 또 자유시 참변으로 자유시에 모였던 2000여명의 독립군 중 700∼800명이 사망해 사실상 독립군이 궤멸했다는 주장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보면 가해자 측인 고려혁명군의 주장으론 사망자가 36명, 피해자 측인 대한의용군의 집계로는 전투 중 사망, 익사, 행방불명 인원이 총 600여명이다. 사상자 규모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망 303명, 행방불명 250여명, 포로 917명으로 추정된다.

또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소속 군인이 864명이라는 기록을 고려하면 사망자가 700∼800명이라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 대한의용군 병력이 1000명 내외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자유시 참변 이후에도 고려혁명군 중심으로 모인 독립군이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했다"면서 "정확한 사상자 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독립군이 궤멸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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