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동차는 달리는 전자장비…SW가 주인공

배성수 2023. 9. 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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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OS와 비슷한 '차량 SW 플랫폼'
업체별로 국제 규격에 맞춰 만들어
현대오토에버, 2019년 국내 유일 개발
선박·로봇 등 활용 분야 갈수록 넓어져
현대자동차그룹이 구상한 미래 교통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과거 자동차는 ‘달리는 기계’였다. 복잡한 부품이 서로 맞물린 이동장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자동차는 ‘달리는 전자장비’다. 최신형 자동차는 대부분 기능을 소프트웨어(SW)로 처리하고 있다. 별도로 제어했던 기능에 통합 제어를 도입해 새로운 가치 제공까지 창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터널 연동 자동 제어가 좋은 예다. 터널과 같이 공기가 좋지 않은 곳에 진입 시 창문을 닫고 공조 시스템을 내기 순환 모드로 바꾸는 기능이다. 작동 과정은 단순하지만 여기에는 까다로운 기술이 요구된다. 내비게이션, 창문, 에어컨 등 각각의 장비에서 정보를 받아 통합적인 제어가 이뤄져야 한다. 이는 차량용 SW 플랫폼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전장부품 제어하는 차량용 SW 플랫폼


차량 SW 플랫폼을 컴퓨터 분야에 비교한다면 ‘운영체제(OS)’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차량 SW 플랫폼은 누가 만들까. 컴퓨터의 OS와 마찬가지로 차량 SW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현대오토에버가 유일하다. 이 회사는 차량 SW 플랫폼인 ‘모빌진’을 개발하고 있다.

차량 SW 플랫폼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규격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자동차처럼 많은 소비자를 위해 개발되는 제품 대부분에는 규격이 있는데 이는 SW에도 해당한다. 그런데 자동차 제조사마다 자체 OS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용 컴퓨터(PC)처럼 저마다 다른 규격을 쓰게 될 것이다. 이는 산업 전체로 보면 하나의 낭비인 셈이다. 자동차업계에선 이런 이유로 통일된 규격이 탄생했다. 자동차 제조사와 정보기술(IT) 기업은 함께 차량 SW 구조 표준을 제정하는 ‘오토사’를 설립하고 동일한 규격으로 함께 고도화를 이루고 있다.

오토사의 목적은 개발 편의성, 재사용성, 모듈화 등 세 가지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전장부품에는 수많은 SW가 필요하다. 설계 단계부터 표준과 규칙을 정하면 개발 편의성과 검증 과정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현대오토에버, 국내 유일 차량용 플랫폼 개발

선박 비즈니스에 탑재된 모빌진 콘셉트 /현대오토에버 제공


오토사 규격에 맞춰 차량 SW 플랫폼을 만들고 활용하는 것은 각 기업의 일이다. 오토사 규격에 맞춰 직접 SW 플랫폼을 구축할 수도 있고, 다른 회사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서 쓸 수도 있다. 차량 SW 플랫폼을 개발하는 현대차그룹은 전자에 속한다. 회사 관계자는 “모빌리티 산업의 선두 주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핵심 요소를 직접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량 SW 플랫폼은 그 자체로 특별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SW 플랫폼은 응용 SW가 정상 작동하기 위한 안정적인 토대이자 기반 역할을 한다. 또한 문제 발생 등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정확한 피드백을 제공해 응용 SW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돕는다. 이처럼 차량 SW 플랫폼을 자체 개발하고 꾸준히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향후 등장할 다양한 미래 기술의 토대는 물론 더 다양한 모빌리티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현대오토에버가 차량 SW 플랫폼 개발에 뛰어든 건 2012년부터다. 당시 차량 SW 플랫폼 시장의 강자는 독일계 업체들이었다. 지금도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 SW 플랫폼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과 협업해 직접 개발에 나섰다. 처음엔 부정적인 반응도 컸다. 해외 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국내 자체 개발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오토에버는 2019년 모빌진을 출시하며 ‘국내 유일의 차량 SW 플랫폼 개발사’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로봇 AAM 우주 등 차세대 모빌리티 활용 기대”

현재 모빌진 브랜드 내에는 다양한 제품이 있다. 제어기(ECU) 지원 체계를 위해 모빌진 클래식, 모빌진 어댑티브, 모빌진 시큐리티 등 여러 가지 제품군을 갖췄다. 전장업계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차량 SW도 새로운 아키텍처(구조)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데, 모빌진은 이런 변화에 발맞춰 도메인 집중형 아키텍처와 중앙 집중형 아키텍처에 모두 대응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모빌진은 전동화, 섀시, 인포테인먼트 도메인 등 전 도메인에 적용된다. 향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에 맞춰 클라우드 기반 차량 연동 서비스 등 더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예정이다. 차량의 내부 통신 시스템을 전부 모빌진이 제어하는 통합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다.

모빌진의 활용 가능성은 자동차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오토에버는 최근 HD현대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 회사 아비커스와 차세대 자율주행 플랫폼의 선박 적용을 위한 개발계약을 체결했다. 아비커스에서 개발한 자율운항 솔루션 ‘뉴보트’에 모빌진을 적용하는 것이다. 현대오토에버는 향후 로봇과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 우주 등 다양한 분야의 미래 모빌리티에도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SDV시대에 대비"…현대차와 함께 진화하는 현대오토에버 '모빌진'

모빌진은 크게 클래식, 어댑티브, 시큐리티 등 3개로 이뤄진다. 클래식은 자동차의 기본에 충실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어댑티브는 미래의 기능 발전에 대비하는 플랫폼이다. 시큐리티는 다양한 보안 기능을 제공하는 보안 솔루션이다. 모든 모빌진 제품은 오토사 표준에 기반해 최신 완성차에 요구되는 통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특화 기능, 보안 사항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

모빌진은 최근 자동차 산업의 진화 과정과 맥을 같이한다. 모빌진 클래식은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기반 제어기를 위한 표준 소프트웨어(SW) 플랫폼이다. 2012년 개발을 시작한 모빌진 클래식 1.0은 2016년 현대차가 선보인 그랜저 IG의 전자편의 부분에 최초로 적용됐다. 이후 활용 범위가 계속 넓어져 현재는 현대차그룹 내 표준 SW가 됐다. 2021년에는 신규 보안 사항을 지원하는 표준 SW 플랫폼이 개발됐고 현재는 무선 업데이트(OTA) 기능이 요구되는 제어기 대부분에 해당 기술이 적용됐다.

현대오토에버가 2020년 개발을 시작한 모빌진 클래식 2.0은 오토사의 신규 사양 준수, 기능안전(ISO26262)을 만족한다. 플랫폼 레벨에서 기능 안전 ASIL-D 인증을 획득했다. 또한 차량 SW 프로세스 심사 표준(ASPICE CL1)을 획득했고, 2024년엔 CL2 획득을 목표로 개발 프로세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모빌진 클래식이 다른 차량 SW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된 부분은 빠른 속도와 현대차그룹의 양산 노하우다.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의 유관 부서와 사양 단계부터 협업해 자동차에 필요한 신규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 각 사양의 기본 소프트웨어부터 고려하기에 최적의 방안을 수립할 수 있는 셈이다.

모빌리티 어댑티브는 자율주행과 커넥티비티, 인포테인먼트 등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2019년부터 개발되고 있다. 어댑티브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반의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구조) 플랫폼이다. 어댑티브의 장점은 오토사 어댑티브 표준 사양을 준수하는 동시에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에 특화된 확장 사양을 지원하는 것이다. 고성능 하드웨어에 적용할 수 있어 기계 학습, 표적 인식, 센서 융합과 같은 많은 연산을 해야 하는 일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기능의 앱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는 승강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대오토에버 관계자는 “모빌진과 같은 차량 SW 플랫폼을 갖고 있으면 수많은 기술을 더욱 쉽고 빠르게, 직접 시험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모빌진은 미래 자동차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에도 투입되고 있는 만큼 SDV 시대를 대비한 산업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수 기자/도움말=현대자동차그룹 HMG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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