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ABC협회 부수 조작 '무혐의' 경찰은 뭐했나
"면죄부만 준 부실 수사" 수사 과정에서 무얼 놓쳤나
"증거,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발견하지 않은 것인가"
"100부 오면 최소 50부는 파지" 달라지지 않은 현실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부수 부풀리기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도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고발이 이뤄진 후 2년 5개월간 무엇을 수사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 8월29일자 성명)
“국내 유일 유료부수 인증기관이었던 ABC협회 간부의 공익제보를 통해 드러난 '신문 부수조작 사건'이 결국 면죄부만 준 부실 수사로 끝났다.” (민주언론시민연합 1일자 논평)
조선일보와 ABC협회 부수 조작 의혹은 어떻게 '무혐의'로 결론 났을까. 지난달 9일 서울경찰청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사기·업무방해 및 국가 보조금법 위반 혐의 고발 건에 대한 수사 결과 통지서에서 “조선일보가 ABC협회 부수 공사 규정에 따른 유료 부수 보고가 아니라 전국 지국에 판매한 지대 부수를 토대로 산출한 내역을 유료 부수 현황으로 보고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본사 및 지국, 관련 피의자 등으로부터 압수한 자료를 분석했으나 유료 부수를 조작한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수사가 시작된 2021년 3월만 해도 증거는 명확해 보였다. ABC협회가 2020년 발표한 조선일보 유가율(발송부수 대비 배달부수 비율)은 95.94%였으나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초 12개 신문지국 현장점검 결과 조선일보 유가율이 67.24%였다고 밝혔다. 신문지국 성실률(신문사가 밝힌 유료부수 대비 현장 실사를 통해 인증한 유료부수 비율)도 ABC협회는 조선일보가 98.09%라고 밝혔으나 문체부 조사에선 55.36%로 나타났다. 문체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사무감사 결과를 그해 3월 발표하고 그해 7월 ABC협회의 정책적 활용까지 중단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충분한 증거나 증언은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문체부 사무감사에 협조했던 신문지국장들이 수사가 시작되며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무감사) 이후 경찰 수사에서는 나올 자료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무감사 대상 신문지국이 노출되며 협조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신문지국들이 관련 증거자료를 전부 교체하고 답변을 거부하며 문체부 사무감사 이상의 증거나 증언이 나올 수 없었다는 것. 더욱이 다수 신문지국장은 수사로 인한 파지 수입 감소를 원치 않았다.
문체부 역시 사무감사 발표 이후 신문지국 현장 조사에 나섰으나 신문사신문지국의 비협조로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본사의 '비협조' 지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신문지국장은 “처음부터 신문지국이나 파지업체 압수수색이 너무 허술했고 생색내기처럼 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라고 말하며 부실 수사를 꼬집었다. 해당 지국장은 “조작 증거를 확보하려면 조선일보 파지가 얼마나 나오는지가 제일 중요했는데 조선일보 신문지국을 압수수색하지 않고 여러 신문을 배달하는 통합 신문지국을 압수수색 했으니 전체 파지 규모에서 조선일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사 판매국장들이 갖고 있었을 개별 자료 확보가 핵심이었는데 이를 놓친 게 한계였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도권 지역의 또 다른 신문지국장은 “본사에서 100부가 오면 최소 50부는 파지다. 올해 초 파지값이 1kg당 400원대였는데 최근 200원대로 떨어져 파지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해외 파지 수출이 안 되면서 내부 물량이 늘어난 결과”라고 전했다. 해당 지국장은 “2021년 문체부 사무감사 결과는 놀랄 정도로 정확했다”고 전한 뒤 “ABC협회는 유료 부수 산정 기준을 완화하고 정상적으로 실사에 나서지 않았다. 집주인(신문협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일 논평에서 “비닐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전 세계로 헐값에 폐지가 되어 수출되는 '계란판 신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이렇게 조작된 신문 부수를 근거로 정부 광고비를 산출하고 각종 보조금을 타온 언론사 부조리를 바로잡을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규정과 다르게 결과를 산출해 보고한 것을 우리는 조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찰은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고의로 발견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이번엔 정권의 비호를 받아 어물쩍 넘어가는 것 같지만 '권불십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7월7일 박보균 문체부장관은 국회에서 “ABC 제도가 우리 지적대로 좀 더 보완정비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ABC 지표를 다시 사용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기존 열독률 조사 문제점도 보완해 정비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전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는 “ABC협회 부수공사라는 퇴행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문체부 진정서를 주도하며 ABC협회 문제를 공론화했던 전직 간부는 ABC협회측과의 각종 소송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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