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독자적 외교관계, 무기 판매 활용… 제3국가서 ‘러브콜’ [뉴스 인사이드-방산 수출 강국 프랑스]

박수찬 2023. 9. 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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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시장서 ‘美·러와 어깨’ 비결은
대표주자 라팔전투기 ‘100% 佛 기술’
美 영향력 떠나 첨단무기 운영 매력
금융지원·무기 패키지 판매도 ‘톡톡’
‘집토끼’ 관리로 부가가치 극대화도
K방산 핵심장비·기술 국산화 박차
지속 공급 가능한 ‘단골’ 확보가 중요
우크라戰 무기력… 러산 무기 성능 의심
‘러 기술 기반· 저비용’ 중국산 대안 주목
미국과 러시아의 ‘양강 체제’가 지속됐던 세계 무기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로 프랑스와 중국이 부상하고, 러시아의 지위가 흔들릴 조짐을 보인다. 세계 무기시장은 언뜻 보면 단일 시장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수요와 정치적 고려가 소용돌이 치는 틈새시장들이 존재한다. 프랑스와 중국은 이런 틈새시장을 노리고 차별화한 경쟁력을 앞세워 방산 수출에 나서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 사이 ‘자리 잡기’

‘독립적인 대외 정책과 강한 프랑스의 위상 확보.’ 냉전 시절부터 오랜 기간 유지된 프랑스의 정책이다. 독자적인 외교안보 노선을 내세우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한 프랑스는 국방과학 분야에서도 독자적인 무기 개발을 추구했다. 프랑스가 자체 개발한 무기들은 미국이나 소련(현 러시아)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비동맹 국가들 사이에 주목을 받으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이는 프랑스 방위산업이 세계 무기시장에서 미국,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도움이 됐다.

냉전 이후에도 이런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022년 공개한 2017~2021년 무기거래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무기 수출 3위에 올랐다.
프랑스 무기가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방위산업 대표 주자인 라팔 전투기는 프랑스 방산기업 닷소(60%)가 체계 통합을 하고, 전자장비를 담당하는 탈레스(22%)와 엔진을 만드는 사프란(18%)이 참여하는 형태다. 100% 프랑스 기술로 만들어진 셈이다. 탑재 무장도 일부 정밀유도폭탄을 제외하면 프랑스 제품이다. 미국과의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첨단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서방 무기를 원하는 제3세계 국가에서 매력적이다. 실제로 미국 기술이 포함된 KF-21의 공동 개발에 참여한 인도네시아는 분담금 수천억원을 미납하면서도 2022년 라팔 42대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아랍에미리트(UAE)도 2021년 12월 라팔 80대 구매를 발표했는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F-35 판매 과정에서 중국의 스파이 행위로부터 자국 첨단무기를 지키고자 설정한 보안 요구를 UAE가 부담스러워했던 결과”라고 분석했다.
예산이 부족한 국가에 제공되는 금융지원도 프랑스의 방산 수출을 촉진한다. 2015년 라팔 24대를 도입한 이집트가 2021년 30대 추가 도입을 결정했을 때 구매 대금 39억5000만유로(약 5조3400억원)의 85%에 달하는 융자를 프랑스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무기체계를 한데 묶어 패키지 판매를 진행해 수출 규모를 늘리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프랑스가 2021년 UAE에 라팔 80대를 판매하기로 했을 때 에어버스 H225M 수송헬기 12대도 수출 품목에 포함됐다. 특정 국가에 무기를 공급한 뒤 또 다른 자국산 장비를 제안하며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전략이 눈에 띈다. 2016년 인도에 라팔 36대를 판매한 프랑스는 최근 항공모함 탑재형인 라팔M 24대를 추가 수출하기로 했고, 에어버스가 만든 A400M 대형 수송기도 인도에 제안하고 있다.
예전부터 프랑스 무기를 구매했던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는 ‘집토끼 단속’은 부가가치를 극대화한다. 라팔 도입국인 인도와 UAE, 이집트, 그리스, 카타르는 닷소가 냉전 시절 개발한 미라지 전투기를 운용했던 국가들이다. 프랑스산 스코르펜급 잠수함을 도입한 말레이시아도 전부터 프랑스가 만든 잠수함을 썼다. 프랑스의 무기 정비 및 지원체계와 무장 시스템에 익숙한 국가를 대상으로 성능이 한층 높아진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기존 고객을 지키면서 부가가치도 늘리는 효과를 얻었다. 첨단무기를 수십년간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대를 이어가며 프랑스 무기를 구매한 국가들은 프랑스에 수십년에 걸쳐 막대한 경제·정치적 이익을 제공하게 된다.
◆한국도 프랑스 사례 참고할 필요

프랑스의 방산 수출 정책과 성과는 우리 ‘K방산’에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한국은 북한과의 대결 구도 속에서 무기 성능을 높이고자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결과 해외시장에서 주목받는 무기를 개발했다. 최근에는 폴란드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FA-50 전투기 등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세계 무기시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후발주자다. 글로벌 시장에서 K방산의 영향력을 높이고 방위산업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성과가 일회성 ‘대박’으로 그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방위산업과 수출 진흥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조언한다. 우선 미국의 수출 승인 여부에 따른 정치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심 장비와 기술의 국산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발주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 시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2008년 노르웨이의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미국산 F-35 전투기와 경합한 스웨덴 사브의 그리펜을 밀어내고자 사브 측이 그리펜 탑재용으로 요청한 미국산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판매 승인을 고의로 지연시켰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노르웨이는 F-35 도입을 결정했다. 한국도 KF-21과 K2 등 첨단무기 판매 과정에서 엔진, 레이더 등 핵심 구성품 공급을 해외에 의존한다면 해당 장비 제작국의 승인 여부에 따라 수출이 영향받을 수 있다.

프랑스가 미라지 전투기를 사용해 온 국가에 라팔을 수출한 것처럼 한국산 무기 구매국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장비를 공급함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국가를 K방산 ‘단골손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1990년대 말레이시아에 K200 장갑차를, 방글라데시에 호위함을 수출했으나 이후 추가 판매가 이뤄지지 않으며 지속적 효과를 얻지 못했다. 현재는 K방산의 제품 종류가 늘어나고 수출용 무기 개발도 이뤄지는 만큼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함으로써 국산 무기 구매국에 추가 판매를 시도할 여건이 갖춰졌다는 평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T-50 계열 항공기를 구매한 동남아 등을 대상으로 KF-21을 수출한다면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육군의 T-14 전차가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AP통신
◆군사강국 위상 추락 러… 빈틈 노리는 中

2022년부터 지속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낸 러시아군의 모습이 생중계되며 러시아는 군사강국의 위상에 큰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산 무기의 성능과 생산 능력에 대한 의심도 커졌다. 러시아군이 전쟁을 치르며 상실한 막대한 양의 군사장비를 서둘러 충당하려면 수출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이안 스토리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주요 무기 수출국으로서 위상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그럴 뿐 아니라 아예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꺼리는 국제사회 분위기도 러시아산 무기 수출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러시아산 무기를 사용한 국가들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력 공백을 메우려면 다른 나라에서 무기를 사와야 하지만, 무기 운용체계가 러시아 시스템 위주로 구성돼 호환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재정적 부담 증가도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이 개발한 첨단무기 중에는 러시아 기술에 기반을 둔 것이 적지 않다. 특히 지대공미사일 체계는 러시아산 S-300 지대공미사일보다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비싸지 않다. 서방 측이 패트리엇 등 요격 무기 판매를 꺼리는 국가에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동유럽의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가까우면서도 지난해 중국에서 HQ-22 지대공미사일을 도입했다. HQ-22는 S-300과 유사한 무기인데 가격은 더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의 적도기니는 중국에서 호위함을 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태국은 상륙함을 도입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주목받는 무인공격기는 중국이 경쟁력을 자랑하는 분야다.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운용에 필요한 기술 수준은 높지 않아 개발도상국도 충분히 운용할 수 있다. 중국산 윙룽 무인공격기의 경우 미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산 무기 사용국인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에티오피아 등에 수출됐다. 현대전에서 무인기가 지속적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무인공격기는 앞으로 중국산 무기 판매를 주도하는 장비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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