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홈쇼핑 송출중단, 공멸의 길로 가지 말아야…'순망치한'
모든 생태계는 상호의존성을 필수 요소로 꼽는다. 상호의존성이 무너지면 결국 생태계는 파괴되고 만다. 방송도 생태계가 있다. 제작, 편성, 송출, 광고 등 다양한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나름의 역할을 한다. 생태계 순환과정이 순조롭지 못하면 각각의 요소들은 생존력을 잃게 되고 생태계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최근 TV홈쇼핑사업자들이 일부 지역 케이블TV방송사들을 상대로 송출 수수료로 줄다리기를 하다가 급기야 채널 송출 중단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홈쇼핑들은 케이블TV의 채널을 확보해 상품 판매를 위한 일종의 매장으로 활용한다. 드라마, 종편 같은 시청률 높은 채널 옆 번호는 송출 수수료 즉 임대료를 많이 내는 구조다. 수 년에 걸친 협상의 데이터가 쌓여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그런데 매장 임대료와 같은 송출 수수료 협상을 하다가 장사가 잘 안되니 매장을 철수하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품 매장은 철수한 사업자 대신 다른 사업자로 교체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홈쇼핑 채널은 승인 채널이어서 진입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다. 철수를 해버리면 케이블TV로서는 대체 홈쇼핑 채널을 찾을 수가 없다. 보다 정확하게는 대체 수익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케이블TV는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가입자당 월 사용료가 터무니없이 낮아졌다. 1995년 케이블TV 출범당시 아날로그 20여개의 채널만으로도 1만 7000원 월 사용료를 받던 것이 지금은 디지털채널 200여 개가 넘는 서비스를 하고도 평균 사용료가 월 9000원 대에 그칠 정도로 수신료 수입이 곤두박질쳐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그동안 디지털 전환과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제작비를 무엇으로 감당했을까?
바로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 우리나라 홈쇼핑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높은 성장을 해왔다. 디지털 전환 등의 시점에서 홈쇼핑 채널이 추가로 승인되면서 수수료 규모도 커졌다.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가입자당 월 사용료를 대신해 유료방송 성장의 밑거름이 돼 왔던 것이다. 유료방송의 생태계가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이는 홈쇼핑이 유료방송에 미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면서 한편으로 국내 유료방송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이렇듯 유료방송의 생태계에서 홈쇼핑 송출 수수료는 기형적이지만 큰 몫을 담당하고 있고 대체 불가능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걸 하루아침에 송출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것이고, 바꿔 말하면 송출 수수료 전액을 삭감하겠다는 통보에 다름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홈쇼핑 채널은 진입규제로 인해 채널 수가 정해져있고 채널을 빼면 대체할 홈쇼핑채널이 없다.
한편으로 TV홈쇼핑의 경우 당장의 수익감소를 이유로 팔아도 남지 않는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송출을 중단하면, 이익이 늘어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서는 것이다. 송출중단으로 상품 노출이 줄고 노출이 줄면 매출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홈쇼핑과 케이블TV는 생태계로 묶인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홈쇼핑이 케이블에서 채널을 빼면 다른 데 송출이 가능하고 커버리지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송출 중단은 서로 공멸하는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케이블TV와 홈쇼핑은 성장의 시대에 한 가족처럼 좋은 관계로 협업에 열성이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서로 어려운 시기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로 탓을 하고 산업 데이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여론전을 펼치며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청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는 뜻에서 케이블TV와 홈쇼핑은 엄격한 심사로 승인 사업자로 분류돼 있고 진입 또한 자유롭지 않다. 그런 사업자들이 시청자 불편과 피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정부와 머리를 맞대서 산업발전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가 있다면 개선에 속도를 냈으면 좋겠다. 특히 홈쇼핑 업계가 절실히 원하는 개혁 사항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 풀어갔으면 한다. 이번 사태는 생태계 전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빅픽처(큰 그림)가 절실함을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케이블TV와 홈쇼핑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서로 의지하고 있어서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쪽도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관계”가 아닌가?
이래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필자〉이래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연합뉴스에 입사해 뉴욕특파원, 경제분야 에디터, 편집국장을 거쳐 연합뉴스TV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에는 2년간 국회방송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2009년 관훈클럽 감사로 활동했다. 2021년 3월 제 12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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