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Y] 런던에서 韓 영화 알리던 전 위원장이 부안에 간 이유

김지혜 2023. 9. 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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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무빙'(Moving)에 담긴 세 가지 의미가 변산반도의 노을과 만났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영화가 상영되고, 감동으로 물든 그 순간 'Pop-Up Cinema: Buan Moving'(팝업 시네마: 부안 무빙)이라는 영화 축제의 취지가 비로소 완성됐다.

런던아시아영화제(London East Asia Film Festival)를 이끌어온 전혜정 위원장이 지난 8월 25일부터 3일간 전북 부안에서 '팝업 시네마: 부안 무빙'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었다.

'부안 무빙'은 늦여름 저녁, 아름다운 노을로 물들어가는 변산의 바닷가에서 5편의 영화를 무료 상영하는 프로그램. 전북 부안군이 주최·주관하고 서울과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글로벌 무대에 영화를 비롯한 전시·공연 등 다양한 한국문화를 소개해온 기획사 '카다 크리에이티브 랩'(대표 전혜정)이 기획한 행사다.

전혜정 대표는 유럽 문화의 중심인 런던에서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를 만들어 한국 및 아시아 영화를 널리 알려온 인물이다.

전 위원장은 전북 부안시와 손잡고 약 1년 전부터 '부안 무빙'을 기획했다. 영화제 및 문화 관련 기획 전문가인 전 위원장은 '부안 무빙'을 위해 약 두 달 전부터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부안 무빙'은 영화제가 아니다. '팝업시네마'라는 타이틀에서 이 행사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전 위원장은 "'팝업시네마'라는 이름을 붙인 것 이 행사가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다른 도시에서도 열릴 수 있다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올해는 부안에서 했지만 내년에는 다른 도시에서 열 수도 있겠죠. 아름다운 자연과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면 움직일 거예요. 서해 일대를 돌면서 영화를 상영하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전 위원장은 지역 예산에 기대 진행되는 영화제들의 한계를 지켜보면서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영화 행사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움직이고 변화하면서 가치를 세우고 자연 앞에서 영화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부안 무빙을 기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전 위원장의 기획력과 추진력, 안목이 빛을 발했다. 변산해수욕장에 걸맞은 테마를 전하고, 공간을 디자인했다. 자연을 훼손하는 기획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기획이었다.

자연친화적인 행사다. 영화는 모두 변산 해수욕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됐으며, 관객을 위한 자리는 모래사장에 깔린 캠핑 의자로 대신했다. 야외 행사에서 문제가 되는 일회용품 사용도 하지 않았으며, 음식 부스 등도 배제했다.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모랫길 따라 해수욕장에 들러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행사 당일 아침까지도 비가 내려 관계자들의 발을 동동 굴리게 했지만 영화 상영을 앞둔 오후에는 기적처럼 비가 그쳤다. 그 유명한 변산 해수욕장의 주황빛 노을은 자연 조명 노릇을 톡톡히 했다. 도예가 이능호 작가의 설치 작품 '집' 34점이 해수욕장을 한켠을 채웠다. 몽돌 모양의 도예작품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었지만 행사를 찾는 관객들에게는 쉼터 역할도 했다.

여기에 서울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영화음악 연주, 5대의 패러글라이딩의 역동적인 비행 무대 등이 '부안 무빙'의 낭만을 더했다.

2박 3일간 상영된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변산',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 고봉수 감독의 '델타보이즈',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다. 다섯 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청춘'이다.

"청춘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사무엘 울만의 시구는 영화에도 적용된다. 영화는 늙지 않으며, 보는 이의 심상에 따라 다른 형상의 생명력을 발휘한다.

'부안 무빙'에서 소개된 영화들이 현시대의 청춘을 포착한 영화는 아니지만 모두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로 지금까지도 뜨거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주역들인 이준익 감독, 김성수 감독, 곽재용 감독, 배우 차태현, 배우 김충길, 백승환 등이 부안을 찾아 관객과 직접 만났다.

'부안 무빙'을 완성한 건 관객들이었다. '태양은 없다'의 팬덤들이 모였고, '엽기적인 그녀'를 인생 영화로 꼽은 관객들이 차태현, 곽재용 감독의 후일담에 박장대소했다.

전혜정 위원장은 "저희 행사는 여타 지역 영화제들과는 달리 인바운드 개념의 행사예요. 변산 밖의 사람들도 변산을 찾아오길 원했어요. 변산 해수욕장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몰랐다는 분들이 대다수였죠. 변산의 노을녘 아래에서 영화를 즐기고, 질문을 던진 관객들의 뜨거운 열정이 '부안 무빙'을 감동으로 완성시켜 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팝업시네마를 성공적으로 마친 전 대표는 오는 6일 런던으로 출국한다. 본업인 런던아시아영화제 위원장으로 복귀한다. 여덟 번째인 올해 영화제는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더한다. 한국 사회파 영화의 거장 정지영 감독의 회고전을 비롯해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전혜정 위원장은 "영국에서 한국문화는 확산과 흡수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소비하는 시기에 진입했다"며 "영화를 포함해 한국의 문화가 유럽에 안착할 수 있도록 올해는 여러 기획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bada@sbs.co.kr

<사진 = 김대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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