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 1년 포항, 200년 빈도 냉천 등 치수 새 판 짠다

김정혜 2023. 9. 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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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빈도 80년→200년 상향
물 흐름 방해 구조물 걷어내고
다리까지 들어올려...치수에 올인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 때 포항제철소 침수의 발단이 된 하천 냉천의 냉천교 아래서 지난달 31일 재해복구 사업으로 강 바닥을 퍼내는 준설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지난해 9월 6일 새벽,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집중호우로 범람해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에서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포항의 하천 ‘냉천’. 서울 여의도 면적 3배의 포스코 포항제철소까지 집어 삼킨 이 하천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토사를 퍼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냉천 관리자인 경북도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 어느 재해 현장보다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복구가 끝나지 않은 하천을 바라보는 주민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산책로까지 몽땅 걷어내고 물만 흐르게

태풍 힌남노 재해복구사업을 본격 추진 중인 경북도는 포항 냉천에서 지난 6월부터 3개월 간 무려 21만㎥의 흙과 돌을 퍼냈다. 토사를 실어 나르기 위해 동원된 덤프트럭만 해도 25톤짜리로 1만2,000대가 넘는다. 공휴일과 기상악화로 작업을 중단한 날을 빼면, 매일 150대 이상 투입된 셈이다. 그런데도 경북도는 이보다 두 배 더 많은 44만㎥의 토사를 퍼낸다. 강폭이 급격히 좁아지는 포항제철소 앞 냉천교를 중심으로 대거 긁어내 극한호우에도 범람하지 않는 광폭의 통수면적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설계 때 이미 예상 강우량을 80년에 한 번 쏟아지는 양에서 200년에 한 번 올 정도로 대폭 상향했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일대를 흐르는 지방하천 냉천 한 지점에 지난달 31일 개선복구사업이 진행 중임을 알리는 공사 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작업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이뿐만 아니다. 경북도는 냉천 12.87㎞ 구간에 ‘친수공간’이란 이름으로 설치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등 각종 구조물을 싹 다 걷어낸다. 시설물 대부분은 태풍 힌남노 때 파손됐지만, 복구하지 않고 모두 폐기물로 처리한다. 미관은 뒤로하고 오로지 치수 관리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폐기물로 처리된 구조물은 1만8,454톤에 달한다. 앞으로 2만5,330톤을 더 걷어낸다. 여기에 하천과 붙어 있다시피 한 냉천교와 인덕교 등 교량 2곳은 불어난 물도 곧장 흐를 수 있게 다리 전체를 들어 올려 다시 놓는다. 박동엽 경북도 건설도시국장은 “매일 하천 구간마다 수십 대의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작업을 하고 있어 복구 작업이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현장보다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힌남노와 같은 피해가 없도록 모든 자원과 역량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차수벽 세우고 대비 매뉴얼 모두 바꾼 포스코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 건립 49년 만에 용광로 3기의 불을 모두 꺼뜨리고 전 공장을 멈춰 세운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제철소는 물론이고 그룹사와 협력사 임직원까지 연인원 140만 명을 동원해 복구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침수 135일 만에 정상화를 이뤄내는 기적을 보여줬다.

그러나 기존 대비 매뉴얼로는 기후변화로 급변하는 재난에 대응하기 어렵다 판단하고, 전면 수정에 들어갔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관계자는 “기존 경보발령 기준은 일 강우량만 해도 150㎜와 200㎜ 이상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눠 대응했지만 지난해 힌남노 때 500㎜의 극한호우를 겪고 나서는, 500㎜에다 750㎜까지 추가해 4단계로 세분화하고 매뉴얼을 전부 개편했다”며 “냉천과 형산강의 수위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비를 구축하고 재난이 예고됐을 때는 포항시와 농어촌공사 등 각종 시설물을 관리하는 유관기관과 즉각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도 갖췄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태풍 힌남노 이후 집중호우에 대비해 포항제철소에 설치한 차수벽. 포스코 제공

포스코는 냉천이 범람하더라도 공장 안까지 바로 들이닥칠 수 없도록 냉천교 앞 3문에서 정문까지 길이 1.9㎞의 거대 콘크리트 차수벽을 설치했다. 또 제철소 공장 바로 옆을 흘러 동해와 합류하는 냉천 하류 구간에는 1.65㎞의 제방을 보강했다. 여기에 지난해 물이 들어차면서 전기가 차단되는 바람에 공장 내 배수펌프 설비를 멈추게 한 변전소와 발전소, 원정수설비 등 핵심시설에는 쓰나미처럼 물이 밀려들어도 끄떡없는 차수시설을 설치했다.


예산부족·소통부재로 꽉 막힌 지류 소하천

냉천은 대대적인 개량복구 사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지류 소하천들은 힌남노 이전으로 원상복구하는 작업도 더디기만 하다. 실례로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2리를 가로질러 냉천과 합류하는 용산천은 힌남노 때 범람해 많은 피해를 냈지만, 마을 저지대를 중심으로 높이 60㎝의 홍수방어벽 설치하는데도 주민 반발을 사고 있다. 포항시가 마을을 지나 직선으로 흐르는 용산천에 대단지 아파트 건설을 허가하면서 물길을 단지 바깥으로 꺾어 흐르도록 했고, 마을주민들은 시의 무리한 유로변경으로 수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포항시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고 날을 세우고 있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산천 위치도. 아파트 공사로 직선으로 흐르던 물길 일부 구간(붉은색 선)이 꺾였다. 출처 포항시 홈페이지

냉천과 상류에서 만나는 신광천의 발원지 '오어저수지'를 둘러싼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주민들은 힌남노 이후 농어촌공사에 “25년 넘게 저수지를 준설하지 않아 상당한 양의 퇴적토가 쌓여 있으니, 게릴라성 폭우에 대처할 수 있게 저류공간을 확보해달라", "태풍 힌남노로 큰 수해를 입은 만큼 많은 비가 온다는 특보 발표에는 최소한으로 저수율을 낮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저수지를 관리하는 농어촌공사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오어지는 농업용 저수지로 6개 읍·면에 물을 공급해 대책없이 물을 빼고 준설하기 어렵다"며 "본래 용도와 기능에 맞춰 수위조절을 하고 있는데 자꾸 댐과 같은 요구를 하니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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