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LK-99와 상관없이 초전도체는 과학 혁명...개선 연구 필요”

이병철 기자 2023. 9. 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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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초전도체 자기장, 전류 특성 개선 중요”
초전도 과학·산업 응용하려면 임계자기장 성능 높여야
임계온도가 비용이라면 자기장, 전류는 성능
“LK-99 논란, 초전도 연구 새로운 바람 기대”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위)'와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한 물질(왼쪽 아래), 국내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는 납 기반 물질 'LK-99(오른쪽 아래)'의 모습. 최근 LK-99가 과학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면서 초전도체의 임계온도가 주목을 받고 있으나, 실제 양자컴퓨터 같은 분야에 응용을 위해서는 임계자기장, 임계전류 같은 특성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구글, 김현탁

국내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라고 주장한 ‘LK-99’가 전 세계 과학계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LK-99는 과학계뿐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도 한 몸에 받았다. 그만큼 상온 초전도체가 과학계 뿐만 아니라 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LK-99가 일으킨 거센 파도가 잠잠해지는 지금, 과학계는 과연 상온 초전도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네이처는 지난 1일 LK-99 논란과 별개로 초전도체가 과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관련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기사를 냈다. 네이처는 “LK-99가 유발한 상온 초전도체 논란은 잠잠해졌으나 초전도체가 여전히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특히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임계온도뿐 아니라 다양한 특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저항이 ‘0′이 되며 손실 없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초전도 현상은 현재 특정 온도와 압력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려면 영하 270도에 가까운 극저온이나 일상에서 느끼는 압력의 수만배에 달하는 압력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인 퀀텀에너지연구소와 한양대 연구진은 지난 7월 납을 기반으로 만든 LK-99가 1기압에서 127도까지 초전도성을 갖는다며 상온 초전도체 개발을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초전도 관련 연구 결과를 뒤집는 엄청난 과학적 발견이었다. 하지만 퀀텀에너지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은 동료 검증을 거치지 않고 누구나 올릴 수 있는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에 올라왔다. 전 세계 연구진은 즉시 LK-99의 초전도성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전 세계 곳곳에서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LK-99는 해프닝처럼 지나가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과학계에서 상온 초전도체가 갖는 중요성은 크다. 실험실에서는 초전도성을 활용할 정도로 온도를 낮추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복잡한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운영하는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LHC 안에서는 양성자가 지름 27㎞에 달하는 원형 통로에 설치한 초전도 코일을 이용해 가속한다. 코일의 초전도성을 유지하기 위해 통로 전체를 영하 271도로 유지하는 데 96톤(t) 분량의 액체 헬륨을 사용하는 극저온 시스템이 필요하다. 만약 이를 상온 초전도체로 대체할 수 있다면 입자물리학 실험에 드는 비용과 설비를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다만 네이처는 “응용 분야에 따라 단지 초전도체를 나타내는 임계온도를 높이는 것 만으로는 과학계에 혁명을 빠르게 일으키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가령 초전도체를 활용한 장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개선하려면 임계 전류와 임계 자기장도 함께 개선해야 한다. 초전도 양자컴퓨터의 성능은 온도가 1도씩 올라가면서 크게 떨어진다. 이는 임계온도 이하에서도 마찬가지다.

큐비트의 온도가 높아지면 열진동으로 만들어진 ‘가짜 준입자’가 양자 계산의 정확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상온 초전도체가 개발되더라도 초전도 양자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극저온의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네이처는 “초전도성은 온도가 올라갈 때만이 아니라 일정량 이상의 전류가 흐르거나 높은 자기장에 노출되더라도 사라진다”며 “임계 온도가 높아지더라도 여전히 저온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온도가 아니라 자기장에 주목하는 초전도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국립고자기장연구소(NHMFL)는 2019년 45.5테슬라(T) 수준의 높은 자기장을 낼 수 있는 초전도체를 개발했다. 이는 지구 자기장의 90만 배에 달하는 수치로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에 활용한다면 기존보다 100배 높은 해상도의 진단 영상을 얻을 수 있다.

CERN도 자기장의 성능을 개선해 더 큰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하는 장치를 개발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16~18T의 자기장이 필요하지만, 현재 사용하는 니오븀-티타늄 초전도 자석은 8T 정도에 머무른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충돌기인 ‘원형 전자-양전자 충돌기(the Circular Electron–Positron Collider)’ 건설에도 초고자기장을 내는 초전도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루카 보투라 CERN 연구원은 “입자 가속기의 성능을 높이려면 새로운 초전도 재료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과학자들도 초전도와 관련한 연구가 ‘온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는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승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교수는 “초전도체의 응용은 크게 전류 운송과 고자기장 발생으로 나눌 수 있다”며 “특히 고자기장을 낼 수 있는 특성은 핵융합,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성능을 높이는 데 중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창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실제 초전도체 응용에는 주로 임계전류, 임계자기장 특성이 우수한 초전도체가 사용된다”며 “초전도체의 응용에 가장 중요한 특성을 꼽으라면 임계전류와 임계자기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우수한 특성의 초전도체를 찾기 위해 경쟁하는 와중에 LK-99 논란이 국내 초전도체 연구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한 교수는 “과학계에서는 LK-99가 연구 부정이나 데이터 조작이 아닌 새로운 시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방식의 초전도체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과학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LK-99와 관련해 조만간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퀀텀에너지연구소 관계자는 “LK-99의 초전도성에 대해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와 계속 의논 중”이라며 “조만간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달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검증위원회도 지난달 말 서울대와 포스텍 등 국내 연구기관 4곳에서 LK-99를 제조한 결과 초전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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