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선명성’ 외치는 정부, 오염수 방류엔 “전략적 모호성” 왜
방류 문제 없다며 “찬성·지지하는 건 아니다”
거센 반대여론 의식···여론조사 결과에 민감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국제법 상 금지된 ‘투기’인지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국익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외교 전략의 모호성을 배제한다는 윤석열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응을 두고는 모호성을 강조는 모습이다. 국민 다수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오염수 방류 관련 정부 일일브리핑에서 ‘야당이 오염수 방류가 런던협약 위반이라며 가입국들에 친서를 발송한다는데 정부 입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 “1972년 런던협약을 개정해 1996년 체결된 런던의정서는 핵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완전히 금지했다”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는 런던의정서 위반에 해당한다”는 서한을 공개했다. 의정서 가입 88개국 정부에 이러한 내용의 서한을 보내 올해 10월 런던의정서 제18차 당사국총회에서 오염수 방류의 위법 문제를 논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지난 정부에서도 (오염수 방류가) 투기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며 “우리가 투기인지 아닌지 따지기보다 런던협약과 런던의정서에서 규정된 대로 해양환경 보전에 얼마만큼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류에) 위반 사항이 발생할 경우 강력히 우리 정부 목소리를 내고 국제 중재 절차를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국익에 도움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오염수 방류가 런던의정서라는 국제법에 반하는 투기인지 판단을 유보하며 전략적 모호성을 주장한 것이다. 선명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토대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급속히 강화하는 등 전략적 모호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현 정부 외교정책의 핵심 기조와 대조되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외교 노선의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한다”며 “상대에게 예측 가능성을 주지 못하는 외교는 신뢰도 국익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라고 외교적 선명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 문제에서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계획상의 과학·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면서도 “다만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님은 분명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찬반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상당수의 국내 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지만 비판 여론을 의식해 찬성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난감한 처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다수의 민간 여론조사에서 방류 반대·우려 응답이 70%를 상회했다. 정부는 여론조사 문항이 객관적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며 민감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309011912001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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