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신인가 외계인인가…미래 품은 무한 상상 세계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9. 4. 15:36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
이피 개인전 ‘미래 생물 발굴’
7일 ‘음식물의 환생’ 퍼포먼스
이피 개인전 ‘미래 생물 발굴’
7일 ‘음식물의 환생’ 퍼포먼스
결국 생명은 죽음에서 자란다. 고대 원시사회 벽화 같은 대형 그림과 정체를 도통 알 수 없이 괴기스러운 존재들이 실험실 표본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종의 존재가 뒤섞인 독자적 세계관을 발전시켜온 전방위 예술가 이피(42)의 개인전 ‘미래 생물 발굴’이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할머니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을 예술적으로 발전시킨 작가가 “구심력을 집중 발휘했다”는 작업물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세밀하고 빽빽한 이미지의 작품들은 괴기스러운 첫인상으로 압도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독특한 상상력에 귀여움도 풍긴다. 인간인지 동물인지, 외계인인지 로봇인지 구별이 힘든 존재들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인류사가 뒤섞인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일기 쓰듯 드로잉을 해왔다는 작가는 전시장 한가운데 거대한 테이블을 놓고 화려하지만 무거운 느낌의 잔칫상을 차렸다. 하얀 테이블과 하얗고 둥근 대형 조각 안에 피처럼 검붉은 빛깔 솔방울이나 알 같은 존재들이 쏟아질 듯 담겨져 있다. 애프터눈티 세트처럼 배치된 미니 종들은 물론 생물 표본처럼 유리 플라스크 안에 담긴 생명체 조각도 있다. 작은 존재들은 일일이 작가가 꿰매서 만든 또 다른 세상이자 우주다. 인간과 신, 동물 뒤섞인 원시 제의의 재현같고, 무한반복 순환 우주 속에 들어선 느낌이다. ‘서로등이붙은채서로를그리워하는한사람이된두사람’이나 ‘웅녀를비웃는머리가셋발이아홉용수철머리를가진샴삼쌍둥이웅녀’등 쉼 없이 길게 늘어진 개별 조각 제목마저 전시 전체 풍경과 닮아있다.
실크로드 여행 때 둔황 불화에서 깊은 영감을 얻고 돌아와 고려 불화를 본격 사사한 결과물은 접신하듯 충동적으로 올라온 색깔을 물감과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로 세밀하게 완성한 회화로 펼쳐졌다.
유명 시인과 극작가 부모(김혜순·이강백) 사이에서 외동딸로 어릴 때부터 독일 현대미술 전집이나 실험연극을 접했던 터라 총체적인 예술가로 운명지어진 것 같다. 국내서 고교과정을 마치고 도미해 시카고미술대학에서 조각, 동 대학원에서 키네틱을 전공했고 귀국 후 회화 작업을 매진했다. 타국에서의 이방인 경험에서 비롯된 오징어 연작은 “바다에서 똑똑하고 빛나는 존재인데 바다 밖에선 시체 썩는 냄새가 나서 혐오되는 것”을 은유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료보다는 형태로서 조각에 반영됐다.
시각예술평론가 이연숙은 “작가가 감각하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타자적인 것들’은 ‘이피’라는 이름의 기계 속에서 고유한 기호 체계와 시각적 논리를 따라 분쇄되고, 혼합되고, 재조립되는 과정을 거쳐 드로잉으로, 회화로, 조각으로, 퍼포먼스로 변형되어 재탄생한다”고 평했다.
오는 7일 작가는 전시와 연계된 ‘음식물의 환생’ 퍼포먼스도 벌인다. 먹는 행위를 통해 다른 몸의 죽음을 감각하고 타자의 희생을 느끼는 자리다. 작가는 “인간들의 먹는 행위와 탐욕이 지구 다른 생물종을 탄생, 변화시키고 지구를 점점 더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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