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규칙 묻지 마?…배민, ‘배차 취소’ 라이더 무더기 계약해지

조해람 기자 2023. 9. 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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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배차 취소’ 기능 새로 도입
취소 라이더, 무더기 ‘계정 정지’
“기준도 안 알려줘”…부글부글
“플랫폼 전형적 노동통제” 지적
서울의 한 배달노동자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 서비스 업체 ‘배달의민족’이 배달노동자 전용 앱(애플리케이션)의 ‘배차취소’ 기능을 이용한 노동자들에게 정확한 설명 없이 ‘계정 정지(계약해지)’ 조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차취소 기능은 지난 7월 배달노동자들의 요청으로 앱에 추가됐다. 노동자들은 배달의민족이 관련 기준을 안내하지 않고 계정 정지부터 했다며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배달의민족은 배차취소 기능을 이용한 배달노동자들에게 지난달 중순쯤 무더기로 계정 정지 조치를 내렸다. 네이버 카페 ‘배달세상’ 등 배달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배달의민족에서 계정 정지를 당했다는 글이 쏟아졌다.

배차취소는 배차가 완료됐지만 날씨나 교통상황, 음식점의 사정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배달이 어려울 때 배달노동자가 배차를 취소할 수 있는 기능이다. 배달의민족은 배달노동자들의 요청으로 지난 7월13일 해당 기능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배달노동자가 배달의민족 지원센터에 직접 연락해 배차를 취소해야 했다. 경쟁사인 쿠팡이츠는 배달의민족에 앞서 비슷한 기능을 도입했다.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서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배달노동자들은 배달의민족이 명확한 계정 정지 기준을 안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배달의민족은 배차취소 도입 당시 “반복적이고 무분별한 배차취소는 약관 위반으로 판단돼 최대 ‘계약 종료’ 조치가 진행될 수 있다”고 공지했는데, 하루 몇 건의 배차취소가 계약 종료 조건인지는 알리지 않았다. 배달의민족은 배차취소가 반복된다고 판단한 배달노동자들에게 보낸 경고 문자메시지에서도 관련 기준을 안내하지 않았다.

계정 정지를 당했다는 배달노동자 A씨는 “누구는 1번 받고 잘리고, 누구는 3번 받아도 안 잘리는 등 기준이 아예 없는 것 같다”며 “(계정 정지 후) 배달의민족에 지침이 있는지 알려달라고, 그걸 알아야 우리도 조심한다고 했지만 ‘내부규정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계정 정지를 당한 다른 배달노동자 B씨는 “처음부터 기준을 확실하게 세워줬으면 아마 사람들이 좀 더 고생하더라도 배차를 (기준 이상으로) 취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배달의민족 측은 “배차를 제안하는 단계에서 수락 여부 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이미 수락한 배차를 지나치게 취소하는 경우는 약관상의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면서도 “구체적인 기준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배달의민족은 이달부터 해당 노동자들의 계정 정지 조치를 푼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의민족 측은 “배차 제안 단계에서 수락·거절하는 것에 대한 패널티는 없다”고 했다.

플랫폼 노동 전문가들은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계정이 정지된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똥콜(형편없는 주문)’이 분명한 콜도 거부하면 계정 정지를 당할까 봐 걱정하게 되면서 완전히 (노동자가) 통제된다”며 “일각에서는 플랫폼 노동자가 프리랜서라고 하는데, 자유롭게 일감을 거절할 권리가 없는데 어떻게 프리랜서인가”라고 했다.

구교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일하는 규칙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포괄적으로 규정을 만들고 사측의 필요에 따라 임의대로 적용하면 노동자는 회사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강하게 만들고 노동자가 회사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조정을 요구하기 매우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외에서는 배달 노동자에게 배차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스페인은 ‘라이더법’을 통해 플랫폼 기업이 라이더들에게 알고리즘 내용을 설명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지난 4월 네덜란드 법원은 ‘우버’와 ‘올라’가 노동자에게 알고리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6월 이탈리아 팔레르모 지역 법원은 음식 배달 앱 ‘글로보’가 노동자들에게 알고리즘을 설명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의 단체협약에 “회사는 배정정책과 관련해 조합에 주요 내용을 설명한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오 집행책임자는 “플랫폼 알고리즘의 원리가 알려지면 (사용자의 지시·통제 등) 노동자성이 분명해지므로, 플랫폼들은 사용자 책임 회피를 위해 알고리즘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며 “독점을 원하면서도 사용자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 건 문제”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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