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로맨스물 리메이크 잇따라…‘상견니’가 ‘너의 시간 속으로’
규모 키운 한국 작품 속 풋풋한 로맨스 눈길
‘상친자’를 아는가. 대만드라마 ‘상견니’(CTV)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방탄소년단(BTS) 팬을 ‘아미’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드라마 팬을 지칭하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로 ‘상견니’는 2019~2020년 대만에서 방영돼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주인공들이 내한해 한국의 ‘상친자’들도 만났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의 소녀시대’ 같은 대만 영화가 사랑받은 적은 있지만, 대만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은 이례적이다.
아시아에 대만 드라마 열풍을 몰고 온 ‘상견니’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오는 8일 공개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김진원 감독∙12부작)로 시간 여행이라는 기본 설정은 같다. 1년 전 연인 연준(안효섭)을 떠나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준희(전여빈) 의문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소포로 받게 된다. 재생하는 순간 1998년을 사는 민주(전여빈)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연준과 닮은 시헌(안효섭)과 친구 인규(강훈)를 만난 뒤 이후 여러 번 현재와 1998년을 오간다. 김진원 감독은 “연출 제안을 받고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인물들의 여러 감정선에 끌렸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힘에 끌렸다”고 했다.
안효섭, 전여빈, 강훈이 원작의 쉬광한(허광한), 커자옌(가가연), 스보위(시백우)가 연기한 인물을 맡는다. 로맨스물이지만, 미스터리가 섞였고, 시간을 초월하는 1인 2역으로 연기가 쉽지 않다. 배우들은 고등학생인 10대부터, 20대, 30대까지 연기한다. 2023년과 1998년의 서로 다른 분위기와, 또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4일 제작발표회에서 안효섭은 “그래서 일부러 원작을 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 드라마가 공개되고 나면 ‘상견니’를 보면서 비교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강훈은 오디션을 봤다. 감독은 강훈이 첫 대사를 읊는 순간 “이 사람이 인규다” 싶어 그 자리에서 바로 출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연준과 닮은 사람을 본 뒤 그에게 한참을 얘기하다가 그게 허상인 걸 알고 오열하는 등 전여빈의 감정 연기가 눈길을 끈다. 전여빈은 “아예 다른 인물이라 생각하고 각자의 서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대만 로맨스 열풍의 시작이 된 2007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도 한국에서 영화로 리메이크했다. 지난해 촬영을 마쳤고 내년 개봉 예정이다. 도경수와 원진아가 저우제룬(주걸륜)과 구이룬메이(계륜미)가 연기한 역할을 맡았다. 피아노 천재인 음대생 유준이 학교 내 오래된 연습실에서 정아를 만난 뒤 시작되는 판타지 로맨스다. 2008년 한국 개봉 당시 역대 대만 영화 중 가장 흥행했다.
2010년 개봉한 대만 영화 ‘청설’도 한국에서 영화로 리메이크된다. ‘청설’은 청각장애가 있는 언니를 보살펴온 양양과 그에게 반한 티엔커의 사랑이야기다. 대만에서 개봉 당시 배우들의 풍부한 표정 연기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수어 연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리메이크작에서는 드라마 ‘약한영웅 클래스1’(웨이브)에 나온 홍경과 ‘우리들의 블루스’(tvN) 등에 나온 노윤서가 물망에 올랐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는 대만 로맨스물은 풋풋하고 감성적인 사랑을 이어가는 특징이 있다. ‘상견니’는 시간 여행을 매개로 사랑했던 연인과 닮은 사람을 만난다. 또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면 다른 시간 속으로 가는 설정도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익숙한 장치다. ‘너의 시간 속으로’에는 뉴진스가 부르는 ‘아름다운 구속’을 중심으로 림킴 ‘벌써 1년’ 등 추억을 샘솟게 하는 옛 음악이 즐비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도 피아노라는 음악을 계기로 두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담는다. 김진원 감독은 “음악이 들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 어떤 음악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작품 톤이 달라진다. 작품에서 음악이 주는 힘은 크다”고 말했다.
대만 로맨스물은 사람의 진심을 건드리는 정서가 있다. 김진원 감독은 최근 대만 로맨스물 리메이크가 이어지는 것도 “그런 정서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콘텐츠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잔잔한 멜로가 줄고 대부분 거액을 투자한 장르물에 집중하는 분위기도 원인이다. 역으로 잔잔하고 풋풋한 로맨스물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대만 로맨스물이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대만 로맨스물 리메이크 작업에 관여 중인 한 제작사 관계자는 “대만 로맨스물은 확실한 팬층이 있고, 영화에 이어 이제는 드라마까지 인기를 얻고 있어서, 리메이크 작업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숨진 60살 교사, 학부모 고소에 경찰 수사·교육청 감사 앞두고…
- ‘고발사주’ 손준성 검사장 승진, 충성하면 보상하나 [사설]
- 국책연구기관 4곳 “오염수, 국민건강 위협”…정부는 비공개
- [사진첩] 교문 밖 200m 추모 행렬…학생이 그린 꽃과 손편지엔
- 해방 뒤 10년 육군총장 모두 친일…‘육사 뿌리’가 광복군 거부
- ‘고발 사주’ 재판 받는 손준성, 검사장 승진했다
- 교사들, 징계 각오하고 거리로…“동료 죽음이 벌보다 두렵다”
- ‘해트트릭’ 손흥민, BBC 베스트11 올라
- 국방장관 “홍범도함 명칭 검토 필요”…오락가락 역풍 자초
- “국민 자존심 지켜준 양금덕 어르신께”…청소노동자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