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를까 더 내릴까" 부동산 가격 좌우하는 공포 [마켓톡톡]
평균값 근접한 韓 부동산 가격
부동산 수익 과대평가 경향
시장엔 만성적인 공포심리 존재
다른 시장참여자 동향 따라 거래
이창용 한은 총재 ‘신중론’ 설파
지난 8월 31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14개월 만에 동반 상승했지만, 최근 가격 상승을 주도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9개월 만에 하락했다. 그렇다면 향후 아파트 가격은 오를까 내릴까. 이 질문의 답을 부동산 가격을 움직이는 공포심리의 메커니즘을 통해 찾아봤다.
■ 집값의 일반론 = 부동산 가격을 전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산 시장에서 가격은 근본적인 문제가 없는 한 "오르면 올라서 사야 하고, 내리면 내려서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을 전망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첫째, 부동산 가격은 단기적으로 급등과 급락을 하지만, 우상향하더라도 평균으로 회귀(regression toward the mean)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의 1975~2023년 한국 부동산 가격 그래프를 보면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2000년 이후 대체로 우상향했다. 다만, 경기침체, 재난, 외부요인이 작용할 때는 역사적 관점에서도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BIS 자료에 따르면, 한국 부동산의 첫 하락기인 1978~1982년 주택 가격은 50% 이상 하락했고, 이전 고점을 회복하는 데 4년이 걸렸다. 1991~2001년에도 전국 기준으로 주택 가격은 떨어졌다.
집값은 2021년 4분기~2023년 1분기에도 급락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다시 상승하고 있는 것은 맞다. 다만, 어떤 시장에서도 평균값은 구해진다. 데이터는 평균값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서 지금 부동산 가격이 평균값에 근접했다고, 가격 변동이 멈추진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부동산의 수익률은 과장된 것일 수 있다. 15년 동안 집값이 4배 올랐다고, 수익률이 400%가 아니라는 말이다.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자가 팀을 이룬 캐나다의 경영 컨설팅 회사 비웍스는 2021년 '행동 편향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사람들은 주택담보대출 비용, 임대 비용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자신의 부동산 수익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 토론토의 평균 주택 가격은 2006년 36만6962달러에서 2021년 114만 달러로 상승했다. 언뜻 4배 가까이 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15년간 복리 수익률로 표현하면 연 7.8%이고, 세금과 거래비용을 제외한 수익률로는 연 6.8%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 지수의 연수익률은 10.6%로 토론토 부동산 수익률보다 3.8%포인트 높았다.
셋째, 매물의 본질적인 가치에는 한계가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향후 창출할 수 있는 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의 금리만큼 할인해 내재가치를 계산한다. 시장의 금리가 높으면 내재가치가 줄어든다. 부동산 시장에서 금리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대출 비용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미래의 현금 창출 능력을 제한하고 전체 투자의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근본적인 가치를 좌우하는 매물의 위치도 '강남은 오르고, 수도권은 떨어지고'와 같은 식으로 단순하게 평가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위치, 장기적으로는 인구 구조와도 연결돼 있다. 단적인 예로 인구가 실제로 줄기 시작하면, 우리 아파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학군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 공포심리의 메커니즘 = 극히 일부 사람을 제외하면 주택 구매자들은 만성적으로 두가지 공포심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자산 시장에서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FOMOㆍfear of missing out)'와 '과잉 지출을 했을지 모른다는 공포(FOOPㆍthe fear of overpaying)'다. 자산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은 근본적인 가치와 거래량인데, 기회 상실과 과잉 지출을 향한 공포가 거래량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공포는 일반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공포다. FOMO도 FOOP도 외부와의 비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국 부동산 투자회사 옵스 파트너스는 지난 2022년 8월 보고서에서 "인간은 숫자·사실이 아닌 감정적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끔찍한 투자자"라며 "주택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는 주된 이유는 투자자들이 시장의 다른 참여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서 부동산 거래에 나서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옵스는 경기 순환이론에서 경기호황기에 FOMO가 발생하고, 경기침체기에 FOOP가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 대표를 지낸 A씨는 2021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경제학자들 말을 믿는 거다. 경제학자들은 항상 공포를 얘기한다. 10년 동안 나쁘다고 하면 한 번은 맞는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됐을 때는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지난 8월 24일 투자회사 대표인 B씨도 공포를 언급했다. "이미 부동산 시장은 반등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내년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전셋값이 매매가격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두 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곳은 가격 상승이 더 가파를 것이다."
하지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24일 부동산 투자를 신중히 할 것을 주문했다. "걱정스러운 건 집값이 바닥이라는 인식으로 이자율이 낮아질 것으로 생각해 투자하는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경험하지 못해서 다시 낮은 금리로 갈 것으로 생각하고 집을 샀다면 조심해야 한다. 불황이 오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대출 내주고 부동산 띄우고 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공포를 언급한 A씨와 B씨, 그리고 FOOP를 연상시킨 이창용 총재 중에서 지금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누구의 말을 믿고 있는 걸까.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2022년 4월 보고서에서 "FOMO가 일으키는 '스노볼 효과(작은 눈덩이도 굴리면 크게 되는 현상)'를 방치하면,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부동산 시장 거품은 잘못된 경제 자원 배분, 파산, 성장이나 고용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에도 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의 켄 존슨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마이애미의 부동산 시장 붕괴의 원인을 공포심에서 찾았다. 존슨 교수는 "2005년 마이애미에서는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집을 사들였다"며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공포심(FOMO)이 그중 주목할 만한 이유였다"고 말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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