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엄벌제도가 아니라 ‘법의 확실성’이다[플랫]
무차별 흉기난동을 비롯한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강력한 처벌로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런데 엄벌만 하면 범죄예방이 될까.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김지선 선임연구위원을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엄벌로는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같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범죄자는 100% 처벌받는다는 법의 확실성”이라고 말했다. 법관 재량으로 형량을 깎아주는 ‘작량감경(酌量減輕)’은 “최소 양형기준제 적용 범죄에는 적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 ‘흉악범죄 줄이려면 사형을 다시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는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2007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이 된 한국은 관련 실증연구가 거의 없고, 미국은 결과가 제각각입니다. 저는 살인범죄에 대한 사형은 범죄억제 효과가 거의 없다고 판단합니다. 범죄자의 재범을 막는 ‘특별예방’ 측면에서 본다면 당사자 자체가 사라지니 무의미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법을 지키도록 하는 ‘일반예방’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상황의 개인이라면 사형당할 가능성이 무서워서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지만, 극도의 분노나 원한 같은 감정 때문에 폭발하는 ‘표출범죄’는 이 같은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 법무부에서는 사형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검토 중입니다.
“사형이 범죄자를 죽여 무력화하는 것이라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완전 격리시켜서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연간 400건 정도 발생하는 ‘살인’이 이에 해당될 범죄 유형인데, 범인들은 정신질환자·반사회적 인격자·현실불만형이 많아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무서워 범죄 저지르기 전에 다시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교정관리 측면에서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가석방’은 수감자들이 교도소 질서와 규율을 지키고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도록 교화하는 ‘당근’인데, 이 같은 희망이 없다면 자포자기하고 교도관과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당정이 그래서 ‘흉악범 전담 교도소’를 만들겠다고 하는 걸까요.
“일반 수용자와 분리해 재소자들이 새 범죄 수법을 배우는 ‘악풍감염’을 막자는 관리 차원의 접근이겠죠. 우리나라 교정시설의 4단계 경비등급에 이 같은 개념이 이미 반영돼 있습니다. 가장 낮은 ‘개방시설’은 울타리가 낮고 수감자가 외부에 나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간이 ‘일반경비시설’과 ‘완화경비시설’입니다. 가장 높은 ‘중경비시설’이 사실상 흉악범 전담 교도소입니다. 구체적인 안이 아직 나오지 않아 단언하기 어렵지만 흉악범을 위한 혁신적인 교정 프로그램을 도입하지 않는 한, 형식만 보면 이미 있는 제도인 셈입니다.”
- 워낙 강력사건이 잇따르니 시민들은 ‘어찌 됐든 범죄자들을 격리하면 사회가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입원제’ 역시 이 같은 흐름에서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의사가 아닌 법원이 판단하도록 하자는 건데, 판사가 판단하더라도 결국 전문가인 의사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형식상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법입원제보다는 범죄 경력이 있는 정신질환자들의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게 더 시급합니다. 조현증 등은 치료받으면 증상이 개선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럼에도 교정·보호시설에서 소년범부터 성인범에 이르기까지 정신질환 환자 또는 의심환자가 많아 관리가 안 된다는 아우성이 나옵니다. 서울 신림동 무차별 흉기난동 피의자인 조선의 경우 종전 전과들이 정신질환 문제였을 수 있는데, 경찰 단계에서 파악을 못했을 가능성이 있죠. 정신질환 범죄자의 재범을 예방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중단 없는 치료를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업무 포화 상태인 기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맡겨선 대응이 어렵습니다. 무료로 치료받는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과 달리 집행유예 이하에 내려지는 ‘치료명령’은 자비 부담이 원칙이라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에게 부담이 되는 점도 살펴봐야 합니다.”
-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엄벌주의’ 대책의 실효성이 걱정스럽군요.
“일본은 형사사법 관련 제도나 프로그램을 하나 도입하기에 앞서 수년을 연구하고, 영국은 한정된 지역에서 시범 실시한 뒤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폐기합니다. 반면 한국은 독일법 체계가 바탕인데 영미법 체계 제도까지 도입한 뒤 관련 예산과 인력을 충분히 배정하지 않아서 실패하고는, 또다시 새로운 해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흉악범 전담 교도소’처럼 새로 포장하거나, 미국의 ‘제시카법’처럼 범죄예방 효과가 없다는 제도까지 들여오려 하는 거죠.”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형법도 문제다. 2010년 형법 개정을 통해 유기징역·유기금고 상한을 기존 15년에서 30년 이하로 높이고, 형벌 가중 시 상한도 25년에서 50년까지로 높였다. 상당한 엄벌 기조이지만 종이호랑이나 다름없다. 법정형을 높였지만 실제 집행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죄형법정주의를 창시한 범죄학자 베카리아는 범죄의 일반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형벌의 ‘엄격함’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이라고 했는데, 한국은 그 부분에서 문제가 많다.
- 특별법이 난립하면서 효과 없는 범죄예방 홍보에 그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례로, 형법에는 강간과 강제추행죄가 있는데 여성계 요구로 성폭력특별법이 2010년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제정 직후 바로 실제 처벌이 강화되진 않았습니다. 판검사들은 범죄에 위계가 있다고 여기는데, 형법 포퓰리즘으로 새로 만들어진 법들이 기존 위계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하면 법정형이 최고 무기징역인데, 그게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그만한 형량 선고가 안 나오는 거죠.”
📌[플랫]피해자 목소리 지우고 가해자의 ‘고의성’만 초점 둔 성범죄 판결
- 입법부는 국민 여론을 반영해 강력한 특별법을 만드는데, 사법부는 이를 중구난방으로 보는 거군요.
“조두순 사건의 경우 검사가 당초 법 적용을 잘못했습니다. 1년에 법이 몇번씩 바뀌니 헷갈릴 만도 하지요. 스토킹범죄처럼 기존 형법이 고려하지 못했던 행위는 특별법을 만들 필요도 있겠으나, 법정형 높이는 특별법만으로 범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법의 불신만 부추기죠. 정말 필요한 것은, 범죄자는 100% 적발되어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다는 ‘확실성’입니다.”
- 그런데 판사 따라 형량이 들쑥날쑥해서 문제로 지적됩니다.
“이는 양형기준제, 즉 법관이 형을 결정할 때 구속력은 없으나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도입하면서 어느 정도 완화됐습니다. 하지만 형량 자체가 낮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플랫]“성범죄 형량 줄여드립니다” 홍보 열 올리는 법무법인
- 이유가 뭔가요.
“권고형량의 범위를 정할 때 이전 판결의 70~80% 정도에 해당하는 형량을 평균으로 잡습니다. 성범죄의 경우 사회적 관심이 많다 보니 형량이 상향 조정됐다지만, 대체로 기존의 관대한 양형을 반복하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작량감경’입니다. ‘정상참작감경’이라고도 하는데, 법률상 감경 사유가 없더라도 판사가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에 비춰 형이 과중하다고 판단되면 형량을 2분의 1까지 깎아줄 수 있습니다. 무기징역이 구형돼도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합니다. 최소한 양형기준제가 적용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작량감경을 하지 않아야 된다고 봐요.”
양형기준은 현재 살인, 뇌물, 성범죄, 횡령·배임, 절도, 사기, 선거, 교통 등 44개 주요 범죄에 대해 시행 중이다.
- 집행유예가 남발되는 데 대해 국민들도 불만이 많습니다.
“가장 많은 건 ‘초범’이라는 이유인데, 재범 위험성이 높은 경우 집행유예를 줘선 안 됩니다. 그다음 많은 게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건데, 이 때문에 가해자가 합의를 강요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반성’해서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업무량 많은 판사들은 제출된 서류 외에 판단할 방법이 현재 없습니다. 양형조사를 철저하게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합니다.”
- 교정시설 과밀 때문에 집행유예로 수감 인원을 줄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국 교정시설 54곳 중 33곳이 정원 초과 상태입니다.
“과밀 해결책으로 실형 선고를 줄이는 정문방식 또는 가석방을 확대하는 후문방식이 있습니다. 최근에 조금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은 형기를 90%가량 채워야 가석방 심의 대상이 됩니다. 기결수가 수감되는 교도소가 피의자를 수용하는 구치소 역할까지 하면서 과밀화된 부분도 있죠.”
- 전자감독은 재범 억제에 얼마나 효과가 있습니까.
“성범죄자용 ‘전자발찌’가 대표적인 전자감시는 최대 50년까지 착용을 명령할 수 있는데, 연구 결과 재범률이 2%로 상당히 낮습니다. 최근에는 치료감호소에서 가출소한 정신질환자들에게도 채우는데, 오히려 공격성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확대 적용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 신상정보 공개는 효과가 있나요.
“주민들에게 막연한 정보를 제공해 불안감만 높이고, 실질적인 범죄예방 효과는 낮을뿐더러 역효과가 심각합니다. 지역사회에서 낙인찍힌 범죄자는 재범의 길에 빠지고, 본인은 물론 자녀들이 자살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범죄자의 인권도 헌법에서 보장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 엄벌주의 추세에 미디어의 책임이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되네요.
“미디어만 보면 범죄가 폭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살인·강도를 비롯한 강력범죄는 지난 10년간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입니다. 성범죄가 유일하게 늘고 있는데, 불법촬영처럼 신체 접촉이 없는 비율이 더 높습니다. 미디어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나마 전통 미디어는 자정기능이 있지만, ‘유튜브 자경단’을 비롯한 최근 1인 미디어들은 문제라고 봅니다. 가해자 신상털기를 하면서 사적 제재를 하고, 순수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들어맞는 피해자에게만 선택적으로 공감하게 합니다.”
- 종합해보자면, 무조건 억제만 해서는 범죄를 막을 수 없는 셈이군요.
“범죄자를 잘 교화해 사회에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주류의 가치여야지, ‘응보’를 앞세우면 미개사회로 가는 겁니다.”
■ 김지선 형사정책 선임연구위원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범죄통계 및 피해조사, 소년범죄와 관련 사법제도,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보안처분 등을 연구해왔다. 이화여대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현재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위원회 위원과 청원심의회 위원, 한국형사정책학회 부회장을 역임 중이다. 공저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중형주의 형사제재의 실효성에 관한 평가연구> 등이 있다.
엄벌주의(중형주의)는 신자유주의 확산과 관련 있다고 프랑스 사회학자 로익 바캉은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사회보장 축소와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보수성향 싱크탱크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하층민 때문에 치안이 불안해졌다는 담론을 미디어를 통해 확산시켰고, 시장친화적인 정부가 그에 응답했다는 것이다. 엄벌의 대상이 된 이들은 주로 하층민인 복지수혜자, 비혼모, 불법이민자 등이었다.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법과 질서가 강조된 것이다. 반면 사민주의가 강한 북유럽 국가에서는 범죄자의 재사회화에 더 무게를 둔다. 조합주의 전통이 강한 독일·프랑스 등도 비슷하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미국발 무관용 처벌정책의 세계화’가 뚜렷하다. 2000년대 들어 엄벌주의가 두드러지면서 성폭력·아동학대를 비롯한 강력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잇따라 도입됐다. 아동 양육의 1차적 책임을 가족에게 묻는 규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사회 양극화와 경제적 궁핍, 가족·지역사회 해체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사회안전망 강화보다는 범죄자 개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반면 피해자 지원은 충분치 않다. 범죄자들 벌금에서 8%를 떼어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을 충당하는데, 올해 예산 1133억4700만원 중 피해자 직접지원비는 25%에 불과하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김지선 선임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을 통해 종결감을 얻기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피해로부터 빨리 복구돼 평온한 삶을 다시 누리는 것”이라며 “정부가 충분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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