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 신고 포상금 40억 준다더니...예산 2억 편성한 금융위
신고 포상제 활성화 안 된 탓… 2016년 이후 1년 최고 포상금 1.2억
라덕연 일당의 주가 조작으로 무더기 하한가 사태를 겪은 정부가 불공정거래 신고 포상금 최고 한도를 기존 20억원에서 40억원으로 올리면서도 내년도 해당 사업 예산을 고작 2억원으로 편성해 주목된다.
포상금 산정 기준이 까다로운 탓에 최근 수년간 지급된 한 해 포상금이 2억원 안팎인 수준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최고 한도의 5%만 예산으로 잡은 것은 신고 포상금 제도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사실상 미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년 예산을 계획하면서 ‘불공정거래 신고 포상 사업’에 대한 비용을 2억원으로 책정했다. 이를 포함한 금융위 예산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의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심사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앞선 5월 정부와 여당은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현행 최고 20억원인 불공정거래 신고 포상금 한도를 40억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금융위의 의견도 반영된 대책이었다. 당정이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라덕연 사태의 전모가 내부자의 신고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라덕연 일당이 3년 이상의 시간을 들이고 다단계 구조로 수백명을 동원해 주가를 끌어올린 탓에 금융당국은 이들의 불공정거래를 포착하지 못했다. 일당 중 한 명이 금융위에 제보한 덕분에 이들의 비위 행위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 제보자는 불공정거래 신고에 따른 포상금을 노리고 금융당국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덕연 사태에서 보듯 금융당국은 제보가 없는 이상 작정하고 시장 감시 체계를 회피한 이들을 인지하기 어렵다.
주가 조작을 뿌리뽑기 위해 내부자의 제보를 독려하려면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줘야 한다. 이 내용에 금융위도 공감하지만, 해당 사업의 예산을 2억원만 편성한 이유는 그간 실적을 고려해서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불공정거래 신고에 따라 지급된 포상금은 2억원을 넘긴 적이 단 한 해도 없다. 2020년이 1억2400만원(5건)으로 가장 많은 포상액이 지급됐다. 당시 최고 포상금 한도는 20억원이나 이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지급 건수 자체도 적은 데다가 포상금 산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신고를 통해 불공정거래 일당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치가 이뤄졌다고 해도 신고의 구체성이 부족하거나 실제 적발 내용과 일치하는 정도가 낮으면 포상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포상 금액은 기준금액과 기여율의 곱으로 산정되는데, 앞 사례에서 운이 좋게 지급 대상에 선정되더라도 기여도가 낮으면 많은 포상금을 받기 어렵다.
포상금을 많이 받으려면 주가 조작에 동원된 종목의 자산총액, 일평균 거래 금액이 커야 하고 적발된 중대 위반 행위와 검찰에 고발된 인원이 많아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은 탓에 2016년부터 현재까지 단일 건수로 가장 많이 지급된 포상금액은 5920만원에 그쳤다. 1억원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최고 포상금 한도를 높인 만큼 내년 포상금 사업에 금융위가 편성한 2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면 금융위는 기획재정부에 예비비(예측할 수 없는 예산 지출로 인한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세입·세출 예산에 계상된 비용) 또는 추가경정예산을 요청해야 한다. 예비비는 사회적 재난이 있어야 받을 수 있고, 추경은 여야가 합의가 필요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업 비용이 부족할 경우) 이론적으로 예비비 요청이나 추경을 할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대안으로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얻은 부당 이익을 환수해 포상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선 부당 이득 금액을 계산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재 이 과정도 매끄럽진 않다. 금융위는 부당 이득 산정 기준을 위반 행위로 얻은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법안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가 지난달 21일 관계부처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돌연 취소했다. 금융위는 이달 중으로 최종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금융위는 불공정거래 신고 포상 사업을 2억원으로 편성한 것은 정부의 재정으로 해당 사업을 집행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금감원의 재원, 즉 민간 재원인 금융회사의 감독 분담금을 포상금의 재원으로 활용했으나 이번에 정부 재정으로 전환한 것이다. 금융위는 재원 조달처를 변경한 이유에 대해 “포상금 지급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역대급 모금에도 수백억 원 빚… 선거 후폭풍 직면한 해리스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머스크 시대’ 올 것 알았나… 스페이스X에 4000억 베팅한 박현주 선구안
- 4만전자 코 앞인데... “지금이라도 트럼프 리스크 있는 종목 피하라”
- 국산 배터리 심은 벤츠 전기차, 아파트 주차장서 불에 타
- [단독] 신세계, 95年 역사 본점 손본다... 식당가 대대적 리뉴얼
- [그린벨트 해제後]② 베드타운 넘어 자족기능 갖출 수 있을까... 기업유치·교통 등 난제 수두룩
- 홍콩 부동산 침체 가속화?… 호화 주택 내던지는 부자들
- 계열사가 “불매 운동하자”… 성과급에 분열된 현대차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