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기안84와 김대호에게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걸까('나혼산')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대담하며, 부, 취향, 선호 등등 여러모로 과시를 내세운 스트리트패션의 시대를 지나 올드머니 패션이 유행이다.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로고 플레이를 극도로 지양하고, 좋은 소재와 스타일,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왔던 브랜드를 소비한다. 물론, 이 또한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는 패션 업계의 흐름이자 또 하나의 유행이지만, 포인트는 시류나 타인의 시선에 딱히 좌우되지 않는 자존감을 은은하게 표현하는 데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분위기는 우리 예능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일대일 대입이 완벽하진 않지만 MBC <나 혼자 산다>를 위시한 장수 TV예능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고, 200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올드보이 탁재훈과 김종국을 비롯해 <나혼산>의 중추인 기안84 등이 웹과 방송을 넘나들며 불호가 사라진 사랑을 받는 중이다.
최근, 일반인 출연 콘텐츠를 제외하고 가장 화제를 꾸준히 많이 만들어내는 예능 프로그램은 단연 TV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올드하다는 지상파의 TV예능 <나 혼자 산다>이다. 올해 4월부터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경쟁력을 검증한 김대호 아나운서가 합류하고 기안84가 광폭의 활약을 이어가면서 가장 핫한 예능으로 올라섰다. 이 둘의 합류로 인해 다시 한 번 <나혼산>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정서적 콘텐츠로 돌아왔다.
이 둘은 나이도, 캐릭터도 여러모로 비슷하다. 익숙한 삶의 궤도를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각자 번듯한 직장 혹은 커리어, 재력을 갖고 있지만 소시민적인 감수성과 다소 기인 같은 삶의 태도를 추구하며 세상을 자기 방식과 속도로 산다.
기안84는 <나혼산>을 지켜온 긴 시간 동안, 여러 동료, 출연자들이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했다. 그런데 그는 네이버에서 노숙하던 시절 촬영한 <나혼산>의 첫 등장부터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시리즈의 프론트맨이 된 지금까지 자기의 감정과 영감, 만족에 충실할 뿐이다. 자리한 위치나 자산의 규모와 상관없이 '태어난 김에 사는' 키워드를 유지하면서 이른바 진정성을 더욱 굳혀가고 있다.
김대호 아나운서 또한 흔하지 않은 나다운 삶의 구축을 통해 흡입력 있는 브랜드를 만든 사례다. 그가 방송 밖에서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모습과 지향까지, 아나운서라는 자존감 높은 전문직이자 번듯하고 도회적인 이너서클의 이미지와는 모든 것이 반대다. 칼퇴 후 캠핑에 행복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유명세 대신 휴식을, 원서가 아닌 만화책을, 와인보단 막걸리에 감동한다. 대기업 차장급이 탈만한 좋은 차 대신 다마스를, 강남 아파트 대신 홍제동 개미마을에 작지만 아늑한 단독을 마련했다.
이제 아나운서국의 유튜브를 넘어서 MBC 예능을 견인할 정도로 '떡상'했으나 '영끌' 대출에도 불구하고, 선배 아나운서들의 여러 성공사례를 보고서도, 프리선언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큰 사랑에 감사하지만 지금까지 추구해온 삶의 가치관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예능 소비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진정성으로 연결된다.
MBC 예능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 두 인물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다소 기인 같은 캐릭터나 독특한 삶의 양식이 재밌어 보이기 때문이 전부가 아니다. 단순히 특이하다를 넘어서 그 재미의 근저에는 나다움을 지키기 힘든 오늘날의 시대상이 투영되어 있다. 삶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 타인과의 비교나 시선, 사회적 기준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구축해나가는 자유로움에서 느껴지는 해방감이 이들 캐릭터와 콘텐츠의 핵심이다.
유로움에서 느껴지는 해방감이 이들 캐릭터와 콘텐츠의 핵심이다.
그래서 최근 마라톤에 본격 도전한 기안84의 이야기들이 방송이 메가트렌드인 달리기를 '캐치'했다기보다, 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새롭게 제안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울릉도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겠다는 꿈을 갖고 임장 차 떠난 여객선 매점에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 걸치는 김대호 아나운서 여정은 일상적인 풍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흔한 방송 에피소드가 아니라 진짜 집을 구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처럼 몰입을 하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건 기안84는 첫 등장부터 변함없이 쭉 '찐'이었는데, 지금 다시 '진짜'라는 이유로 새삼스럽게 각광받고 있다는 점이다. 때때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열렬한 환호 일색이다. 이는 시간이 쌓인 진정성의 복리가 만든 결과이자, 오늘날 우리 시대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기안84의 캐릭터에서 다시금 찾아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한 김대호 아나운서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 또한 집을 사고 파는 투자의 개념이 아니라 사는 공간으로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현실적인 계산을 할 수밖에 없는 13년차 직장인이라는 데 있다. 시청자와 같은 땅을 밟고 서 있다는 데서 그가 자아내는 로망이 멀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의 로고플레이가 두드러진 옷과 대척점에 있는 올드머니 패션은 보여주기 위한 삶과 보여지는 데서 얻는 만족과 비교의 위안 대신, 보다 자존감과 주체적인 기준이 강하게 작용되는 스타일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웹예능 코미디, 더욱 선을 넘어선 캐릭터와 수위에 대해 도전이 다소 소강상태인 오늘날,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또 다른 기준과 가능성이 존재함을 알려준 <나혼산>은 늘 그랬듯 언제나 금요일 밤 같은 자리에서 가장 잘해온 방식으로 또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나혼산>은 전현무, 박나래를 중심으로 캐릭터쇼 스토리라인도 한창인 가운데, 한편에선 기안84와 김대호 아나운서와 같은 인물들이 다소 엉뚱하고 독특해보일지라도 나만의 기준을 갖고도 잘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들이 보여주는 '재미난' 삶은 경주마처럼 좁아진 우리의 시신경을 트이게 해준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길을 소신 있게 걷는 로망과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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