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라 극명하게 대립한 ‘단군 이래 최대 역사’, 새만금 사업
환경단체 “중지”-전북도 “강행”
청와대 수석들끼리도 의견 갈려
대선 때 재검토 공약했던 사안
최근 새만금에서 열렸던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준비 부족, 폭염, 시설 미비 등으로 각국 대표단이 조기 철수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뉴스 화면에 비친 새만금은 넓은 야영터에 문자 그대로 나무 한그루 없었다. 저런 곳에서 수만명이 야영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로 보였다. 20년 전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논쟁이 떠올라 여기에 기록해둔다.
새만금은 서해안 만경강, 동진강 물길을 막는 방조제(33.9㎞, 세계 최장)를 설치해 40.1㎢(1억2천만평, 서울 면적의 2/3)의 간척지를 확보하는 사업이다. 노태우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시작됐으나 참여정부 때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2003년 5월9일(금) 오후 한명숙 환경부 장관의 대통령 보고에 배석했다. 경유승용차, 오염총량제, 물 관리, 댐 문제, 그리고 새만금 문제를 토론했다. 한 장관은 말했다. “새만금 사업은 전주의 그린벨트 해제 보류, 익산의 돼지농가 폐수 없애기 등 21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전임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기는 어려우나 정부가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농업기반공사와 농업진흥공사가 주관해서 10년 뒤 농지부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새만금 신구상기획단에서 바닷물 유통 여부를 포함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합리적 토론을 거쳐야 할 국가사업을 개인의 고행으로 막을 수는 없다.” 2003년 3월부터 새만금에서 출발해서 서울을 향한 환경단체의 새만금 사업 반대 3보1배를 비판한 발언이었다.
사실 노 대통령은 대선 때 경인운하, 북한산 관통도로 등과 더불어 새만금 사업도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도 새 정부에서 그대로 진행되자 환경단체에서는 광화문에 텐트 치고 항의 농성을 벌였다. 5월12일(월) 오후 환경정의시민연대 대표 5명이 나를 찾아왔다. 수도권 대기질 특별법, 경유차 문제, 핵폐기장, 새만금,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설치, 물 관리 등을 이야기하면서 참여정부가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항의했다. 바로 한명숙 장관에게 전화해 새만금 문제를 국무회의에 상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5월15일(목) 오후 청와대 정책실에서 새만금 의제 국무회의 상정 문제를 토론했다. 이튿날 오전 농림부 차관과 국장이 새만금 사업을 보고했는데 유인태, 문재인 수석도 참석해 같이 의논했다. 이날 오후 새만금반대연대 6명이 찾아와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갔다.
5월22일(목) 오후 대통령 집무실에서 권오규 정책수석이 2년 전 새만금 현장을 방문했을 때 가슴 벅참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해양부 장관 같으면 갯벌이 아까울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나는 애당초 정치적 목적으로 잘못 시작한 사업이므로 지금이라도 중단하고 전북도민을 위해 더 필요한 대안적 사업을 하는 게 옳다고 건의했다. 농지로 쓰려면 토양에 염분이 빠질 때까지 20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산업용지로 쓰려 해도 복토비용이 2조원이나 드니 어느 모로 보나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5월29일(목) 오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가 불쑥 찾아와 새만금 사업 강행, 확장을 주장하는데 동의하기 어려웠다. 국회에서 이부영 의원 발의로 의원 145명이 새만금 공사 중단에 서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획단에 차관들·정책실 참여
천하 뒤집혀도 제대로 결정해야”
노 대통령, 수석회의에서 지시
6월5일(목) 대통령 주재 수석회의에서 새만금을 논의했다.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만금 신구상기획단에 농림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행자부, 기획예산처, 산자부, 문광부 차관이 참석하도록 하라. 정책실에서도 수석 또는 비서관이 참석하라. 먼저 담수호냐 해수 유통이냐를 시급히 결정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기술적 검토를 해야 한다. 물길을 막고 난 뒤에 무슨 신구상이 있겠느냐. 새만금에 대한 전북도민의 간절한 소망은 잘 알지만 갑문이냐 다리냐 등 기술적 검토가 필요하고, 공사속도 조절도 필요하다. 천하가 뒤집히더라도 제대로 결정해야 한다.”
6월 10일(화) 9시 수석회의에서 유인태 정무수석이 보고했다. “새만금 공사가 이제 딱 2개만 남아 오늘 완공한다. 김영진 농림부 장관이 얼마 전 관저 조찬에서 ‘유속이 빨라 공사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문제가 된 만경강 쪽 4공구는 지반이 약해서 갑문 설치가 불가능하므로 대안은 원래 갑문 자리(신시도)를 넓히는 방안을 포함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권오규 정책수석은 3개 연구기관이 시뮬레이션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말했다. “정보 부족을 통감한다. 사태는 복잡한데 토론 한번 못한 점이 유감이다. ‘농지 포기’가 단서다. 우리 국정운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 진상에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이날 낮 6·10항쟁 주역 대통령 초청 오찬이 있었다(충무실). 박형규, 이돈명, 박용길, 이소선, 고은, 유시춘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최열 환경연합 대표가 새만금을 질문하니 노 대통령은 농지 확보가 아니고 환경친화적 개발이 목표라고 답했다. 배종렬 전농 대표가 농가부채 문제를 묻자 노 대통령은, “농민들은 하나 들어주면 또 하나 들고 오고 끝없이 요구만 한다”고 답해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6월16일(월) 오후 6시 농림부 차관과 정명채, 정태인 비서관과 함께 새만금 문제를 의논했다. 왜 대통령 지시에도 불구하고 4공구(만경강 쪽) 공사를 앞당겨 물막이 공사를 완료했는지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농림부에서는 빠른 유속과 약한 지반이 이유라고 답했다.
정책실 3명 비서관
소방헬기 이용 알려지면서 ‘발칵’
대통령 “어쩔 수 없다” 사표수리
새만금 사업이 한창 시끄러울 때 청와대 비서관 3명(장명채 농업, 박태주 노동, 조재희 정책관리)이 6월6일 현충일 새만금을 방문해 소방헬기를 탄 사건이 터졌다. 전북도에서 청와대 비서관들이 오니 새만금 사업을 홍보할 좋은 기회라고 여겨 소방헬기를 내줘 현장을 둘러보도록 배려했는데 독배가 돼버렸다. 6월25일(수) 모든 언론에서 기사화해 벌집을 쑤신 형국이 됐다. 3명은 바로 사표를 썼다. 매일 만나 의논하는 동료들이라 이들 사표에 내 사표까지 써서 대통령 관저로 갔다. 3명 비서관 사표에 노 대통령은 사정은 이해하지만 수리할 수밖에 없다고 읍참마속의 심정을 말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동해 방문 때 헬기 타라는 권유를 사양한 적이 있는데 헬기는 조심해야 한다며 “선 하나 차이” “운수 소관”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내 사표를 제출하니 노 대통령이 “불만과 항의 표시입니까?”라고 물었다. 지휘통솔 책임이라고 하자 “도로 집어넣으세요. 일 키우고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계속 도와주세요”라고 해서 내 사표는 반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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