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현순 두산 고문, '장기 투자로 핵심기술 확보 전력투구할 때…산학협력이 원동력 될 것'

2023. 9. 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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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순 과학기술유공자

“조금이라도 빨리 앞으로 세계를 선도할 핵심기술 즉, '코어테크놀로지'에 투자를 집중해야 합니다. 5년, 10년은 짧습니다. 정권과 상관없이 20년, 30년은 투자를 아끼지 말고 끌고 갈 각오를 다져야 미래에 우리나라가 세계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가게 됩니다.”

세계를 이긴 우리 자동차 엔진의 아버지, 과학기술유공자이기도 한 이현순 두산그룹 고문은 뚝심있는 미래 핵심기술 투자만이 끊임없는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어줍잖게 남을 따라가는 것도, 외국의 힘을 빌리는 것도 효과가 없다고 단언했다. 남들이 아직 신경쓰지 못하는 기술영역이나 가능성있는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했다.

이 고문은 “기술 패권경쟁, 국가 외교와 비즈니스의 우위도 모두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기술력에서 온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과기유공자로서 국가와 업종, 지역이 함께하는 산학연정 협력 생태계 구축 정책을 제안하기도 한 이 고문은 이런 생태계가 미래 핵심 기술이 피어나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동안 무성했던 구호에 비해 그 실천이나 지원은 미미했던 산학협력을 다시 돌아보고 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상황이 밝지 않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은 가속화되는데, 활로는 지극히 좁고 험난해 보인다. 오랜 경험, 경륜이 담긴 이 고문의 인사이트에서 현 상황의 타개책을 찾아봤다.

대담=최정훈 전국총괄국장

-우리나라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는 우려가 만연해 있다. 성장동력 마련의 문제가 큰 듯하다.

▲국가 연구개발(R&D)을 강화해야 우리나라 앞날을 밝힐 수 있을 것 같다. 정부 주도, 대형과제 위주로 끌고 가야한다고 본다. 사실 그렇게 해 왔을 때 정부 R&D가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G7 프로젝트(1990년대 초 국내 과학기술을 G7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로 추진한 초대형 국책사업)'과 같은 시도가 그렇다.

기회가 될 때마다 현 정부에도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진짜 코어테크놀로지에 20년 이상 장기 집중 투자를 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이다.

이현순 과학기술유공자

-결국은 뚝심이 중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그렇다. 예전 일화를 얘기하자면, 내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다니다 귀국해 현대차에서 엔진을 개발할 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와 상관들은 독자기술을 만들자는 나를 사기꾼 취급하기도 했고, 공공의 적이 돼 해임 당하기도 했지만 고 정주영 회장이 보호해줘 다시 엔진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당시 정 회장이 나에게 당장의 돈을 벌고자 자체 엔진 개발에 나선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꼭 성공 해야 돼”라고 당부했다. 지금 바로 이익을 주지 않아도 국가기반산업이 될 수 있기에 10년, 20년이 걸려도 투자한다고 했다.

첫 번째 알파엔진 이후 베타, 감마 등 여러 엔진을 성공하고 10년 후에 설계한 세타 엔진을 미국 다임러크라이슬러, 일본 미쓰비시에 기술 수출했다. 성공 이상의 성과를 낸 것이다. 정 회장의 뚝심으로 이뤄낸 것이고, 지금 다시 이런 뚝심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정부 주도 과제를 추진할 시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큰 덩어리로 5~6개 미래 기술에 전력투구 해야 한다. 정부 R&D 예산이 30조다. 그런데 지금은 '쪼개기'가 너무 심하다. 부처별로, 국별로, 과별로 쪼개 나눠먹기 식이 됐다. 결국은 중소기업 운영자금으로 대부분이 쓰인다.

평등의 가치는 중요하지만 대기업은 제외하고, 연구역량이 안 되는 중소기업에 예산 대부분이 간다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반도체를 예로 든다면 삼성전자를 빼놓고 R&D를 얘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기업들을 묶어서 삼성전자가 다른 기업의 가공기술, 소재기술, 장비기술을 수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최종 수요자는 대기업인데, 대기업은 빼고, 중소기업이 하고싶은 것 하라 그런다면 수요-공급 매치가 안 될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산업별 그룹핑으로 R&D가 이뤄져야 한다.

-전력투구할 분야는 무엇을 선정해야 할지.

▲남보다 한 발 빠른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남들이 앞서가고 우리가 좇게 되면 효과가 크지 않다. 후발주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가를 절감해야 하니 모 기업이 협력사를 쥐어짤 수밖에 없고, 결국 '조금 얻어먹는 식'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을 선점해야 수익률이 크고, 그 혜택이 국가 전역에 고루 미친다.

연구주제의 결정은 경험과 미래기술을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한 기술자의 몫이어야 한다. 기술자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기 바란다. 정치적인 부분은 없었으면 한다. 전 정부 당시 두산의 원전기술이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큰 피해를 본 일이 있다.

두산이 오래전부터 원전을 연구해 세계에서 제일 앞선 원자력 에너지 기술을 갖췄는데, 정치권의 잘못된 소신에 밀려 큰 피해를 보았다. 우리 정부가 인정 안하는데, 어떻게 해외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나. 기술을 연구하고 구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앞으로는 정치권의 의사에 국가의 최고 자산인 기술이 좌지우지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현순 과학기술유공자

-현 정부가 글로벌 협력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

▲전기차·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 당시 일본 기업과 협력해 기술 개발 활로를 찾고자 한 일이 있었다.

국내에 배터리와 모터 생산 업체가 없어 일본 기업(파나소닉·히타치)과 계약을 맺고 3년을 개발했는데 토요타와의 관계 때문에 끝내 공급 거부 연락이 왔다. 결국 SK가 전기차 배터리, LG가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만들고 모터는 자체 설계개발로 끌고 갔다.

힘들어도 국내에서 해결했으면 3년 손해를 보지 않았고 해당 분야 지위도 더 공고했을 것이다. 그만큼 국제 협력은 비정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주고 받는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국제 공동연구를 한다면 누군가는 배우는 쪽이 생긴다. 우리가 강세인 영역이라면 우리가 많은 노하우를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경쟁우위를 가져가야 할 반도체나 조선, 철강, 가전, 기계, 통신장비 등에서 국제협력을 한다면 경쟁자를 키워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분야의 선행 기술 개발은 국내에서 해야 한다.

반면에 우리가 모자른 기초과학 영역에서는 협력으로 얻는 것이 많다. 이런 쪽에서의 국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해에 산학연정 협력 생태계 구축 정책을 제안했다. 사실 이런 산학협력은 많이들 얘기되는 내용인데 새로울 것이 있을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이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했고, 산학협력이 제대로만 된다면 우리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문처럼 산학협력은 많이들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은 무성한데 된 것이 별로 없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새로운 시대에 발맞춘 산학협력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산학협력이 보통 기업이 교수 개인에게 프로젝트를 주고, 그 성과와 학생을 데려가는 식인데 지금의 융복합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을 개발하려면 예전에는 기계공학 분야 하나면 됐지만, 지금은 통신, 소프트웨어(SW), 배터리 등 다양한 영역이 함께 해야 한다. 미국은 다양한 학문 배경의 교수들이 묶여 팀으로 활동한다. 옆 방 동료 교수들이 뭘하는지 잘 모르는 우리나라 교수들은 각성이 필요하다.

또 기업과 학교만의 문제로는 산학협력의 효과를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더 많은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이현순 과학기술유공자

-어떤 형태를 이상적인 산학 협력 생태계로 보는지.

▲대학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모이는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이다. UNIST의 경우 주변 기업의 각종 데이터를 UNIST 플랫폼에 얹어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인근에서 활용토록 한다.

그렇게 기업과 학교간 연계를 이루고,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닌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는 산학협력을 이룬다.

여기에 2가지 요소를 더한다. 바로 지자체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지방분소다. 지자체의 투자로 판을 키우고, 출연연이 연구역량을 더하면 미래 산업 성공패턴을 만들 수 있지않을까 생각했다.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인듯 하다.

▲기업, 대학, 연구소, 학생, 정부, 지자체 등 모두가 특정 집단이 아닌 국가 공동체 전반의 상생을 도모하는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기반 정책이 필요하다.

클러스터 내 정주, 창업 환경 구축을 위한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하고 입주 연구소와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공돼야 한다.

대학의 플랫폼 구축과 활용을 장려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도 역시 필요하다.

게다가 산학협력 거버넌스를 손보는 것도 중요하다. 단기성과 위주 사업을 손보는 한편,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의의 정책, 조직, 인력을 효율화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이 산학협력의 근간인 인력양성 부분인데, 인력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는 기업이나 대학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범부처적으로 국가 산업과 과학기술 수요에 근거한 인력양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들 정책적인 기반이 마련되고 산학협력 주체들이 힘을 모은다면, 새로운 미래 코어 테크놀로지 개발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정리=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이현순 고문은...

이현순 두산그룹 고문은 국산 자동차 엔진 개발을 선도한 대표 공학자다. 1973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얻었다. 그 후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자동차연구소에서 엔진 개발 업무를 맡았고, 고 정주영 회장 요청으로 1984년 현대자동차에서 국산 엔진 개발을 진행했다. 1991년 알파엔진을 개발을 시작으로 국산 엔진 시대를 열었다. 현대자동차에서 연구개발총괄 사장, 연구개발총괄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이후 두산에서도 경영혁신부문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신기술 개발을 지휘했다. 이밖에 한국자동차공학회 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등 이력도 있으며 2015년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사장에 취임해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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