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찾은 첫 외과전문의 러들로 박사 책상, 80여 년만에 귀환한 사연

안경진 기자 2023. 9. 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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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한국을 찾은 첫 외과전문의로서 2000명이 넘는 환자의 수술을 담당했던 미국인 외과의사 알프레드 어빙 러들로(Alfred Irving Ludlow) 박사가 국내에서 쓰던 책상이 80여 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연세의료원은 러들로 박사의 유족으로부터 박사가 한반도에 활동하던 당시 사용하던 책상을 지난달 31일 기증받았다고 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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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세브란스병원에 헌신하며 한국인 15만 여명 진료
미국 돌아갈 때 가져갈 정도로 애착 컸던 '커스터마이징' 책상
알프레드 어빙 러들로 박사. 사진 제공=연세의료원
[서울경제]

일제 강점기에 한국을 찾은 첫 외과전문의로서 2000명이 넘는 환자의 수술을 담당했던 미국인 외과의사 알프레드 어빙 러들로(Alfred Irving Ludlow) 박사가 국내에서 쓰던 책상이 80여 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연세의료원은 러들로 박사의 유족으로부터 박사가 한반도에 활동하던 당시 사용하던 책상을 지난달 31일 기증받았다고 4일 밝혔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외과의인 러들로 박사는 세계적 자선사업가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의 주치의 자격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3개월간 머무르며 의료선교사들의 헌신에 감동을 받아 1912년 한국 선교에 자원했고, 이후 26년 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와 세브란스병원 외과의사로 헌신하다 1938년 퇴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을 찾은 최초의 외과 전문의로서 한국에 활동하는 동안 15만 명이 넘는 한국인 환자를 진료하며 초창기 한국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해진다.

문이 반만 열리게 지지대를 덧댄 모습. 러들로 박사는 문 안쪽을 책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제공=연세의료원

유족이 기증한 책상은 앞면 반을 문으로 만들어 여닫는 형태에 화사한 문양이 특징인 경기반닫이 목가구다. 하단에 서랍을 추가로 설치하고 문을 내리면 책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지지대를 덧대는 등 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해 커스터마이징한 점이 특징인데 러들로 박사가 퇴임 이후 고향으로 가져갔을 정도로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증자는 러들로 박사의 생애 마지막 10년간 한집에서 살았던 종손녀 낸시 러들로 야흐라우스 여사다. 낸시 여사가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책상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인 임수하 박사가 연세대의료원이 소장하는 편이 유물의 의미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연세대의료원은 "임 박사가 지난 5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기증 의사를 전달했다"며 "유족과 숨은 조력자들의 노력으로 국외 소재 문화재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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