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마약 커피’ 먹인 강도범…이균용 “진지한 반성” 감형

백인성 2023. 9. 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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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출장 마사지를 나온 여성들에게 마약과 수면제가 섞인 커피 등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여러 차례 강도 범행을 저지른 남성을 항소심에서 감형해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후보자는 남성이 범행 당시 심신장애 상태는 아니었다면서도, 알콜 사용 장애 등 건강상의 이유와 진지한 반성 등을 이유로 형을 줄였습니다.

오늘(4일) KBS가 입수한 서울고법 판결문을 보면, 2019년 이 후보자는 강도·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남성 A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 향정신성 알약 가루로 만들어 여성 커피에…나흘간 세 차례 강도

A 씨는 2017년 8월 상습사기죄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습니다. A 씨는 이후 또다른 사기 범행을 저질러 2018년 6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8월 형이 확정됐습니다.

A 씨는 사기죄 유죄 선고를 받은 지 나흘 후인 6월 12일, 대구 수성구의 한 모텔에서 여성 출장 마사지사를 불렀습니다.

A 씨는 방으로 들어온 여성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향정신성의약품 7알을 으깨 가루로 만든 후 몰래 커피에 섞어 먹였고, 여성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현금 15만 원을 가지고 도주했습니다.

이후 A 씨는 대구 일대 모텔을 돌며 비슷한 수법으로 출장 마사지사로 방문한 여성들에게 수면제와 향정신성의약품을 섞은 커피를 마시게 했고, 여성들이 정신을 잃어 반항할 수 없게 만든 후 휴대폰과 금목걸이, 현금 등을 훔쳐 달아나는 등 나흘 사이 세 차례에 걸쳐 강도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A 씨는 누범 기간 중이었고, 선고 당시까지 여성들과 합의하거나 피해 회복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곧 붙잡혀 강도 혐의와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형법 제333조(강도)
폭행 또는 협박으로 타인의 재물을 강취하거나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4조(마약류취급자가 아닌 자의 마약류 취급 금지)
① 마약류취급자가 아니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소지, 소유, 사용, 운반, 관리, 수입, 수출, 제조, 조제, 투약, 수수, 매매, 매매의 알선 또는 제공하는 행위

1심 법원은 A 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중등도의 알코올 사용 장애를 앓고 있는 점, 사기죄 범행이 함께 판단받았을 경우의 형량 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불과 4일 만에 3회에 걸쳐 마사지사인 피해자들에게 약품이 담긴 커피를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금품을 강취해 범행 대상이나 횟수, 방법에 있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누범 기간 중의 범행이고 피해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합의나 피해 회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에게 장기간 실형 선고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자신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했다며 심신장애를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범행 당시 알코올 사용장애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정신과적인 문제가 없고, 심신상실 내지 심신미약으로 볼 수 없다"고 본 감정의 판단 등을 근거로 A 씨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 혐의 인정했지만…"진지한 반성…범인 갱생에 양형이 도움돼야"

항소심을 맡은 이 후보자는 1심과 마찬가지로 A 씨의 공소사실 자체는 모두 인정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A 씨는 상습사기죄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형의 집행을 마친 누범기간 중 3회에 걸쳐 출장 마사지업무에 종사하는 피해자들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이나 수면제를 몰래 섞은 커피를 마시도록 해 혼수상태로 만들어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그 범행 수법이 지능적이고 죄질이 나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A 씨의 강도 범행에 따른 충격으로 피해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으로 계속해서 정상적인 출장 마사지 업무에 종사함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범행 인정과 반성 등의 사유를 들어 A 씨의 형을 징역 3년으로 감형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A 씨는 중등도 알코올 사용 장애와 성장 과정 및 가정환경 등에서 비롯된 만성적인 분노 등으로 정서 조절 능력이 취약하고 감정이 불안정한 상태"라며 "알코올 의존성 증후군으로 군에서 중도 전역하는 등 정신과 진료를 받아왔으며, 범행 당시에도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있었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범행에 쓰인 약물을 준비한 게 아니라 본인이 처방받은 약물이었던 점 △A 씨가 범행을 인정한 점 △진지한 반성 등을 감형 사유로 설명했습니다.

형은 피고인의 책임에 따라 양정되어야 하므로 이 사건 범행이 확정판결이 있었던 판시 사기죄와 형법 37조 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어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 형평을 고려하여야 하는 사정에다가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경력과 환경, 범행의 동기와 방법, 결과와 사회적 영향, 범죄 후의 범인의 태도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의 조건을 참작하고 범죄의 억제와 범인의 개선 갱생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양형에 있어서의 목적에 비추어 보면, 앞서 본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을 고려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한 제1심의 형은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된다.

해당 판결은 검사와 피고인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2심에서 확정됐습니다.

■ 아내 밟아 숨지게 한 남편도 감형…여성단체 지명 철회 촉구

이 외에도 이 후보자는 평소 가정폭력을 일삼다 아내의 배를 여러 차례 발로 밟아 사망하게 한 남편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7년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B 씨는 2019년 2월 새벽 자신의 집에 누워있던 아내의 복부를 발로 여러 차례 밟아 그 자리에서 복부 손상 등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은 A 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했지만, 이 후보자는 살인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예비적 공소사실인 상해치사 혐의만을 인정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남편이 아내에게 상해를 가하려는 고의를 넘어, 살해하기까지 하겠다는 고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을 파기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범행을 저지르면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를) 죽여 버리겠다"는 남편의 발언도 과격한 표현일 뿐, 살인하겠다고 마음먹은 증거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평소에도 피해자를 폭행해왔으므로, 이번에만 특별히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한편 지난달 30일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등 57개 여성단체는 성명을 내고 이 후보자에 대해 "과거 재판 과정에서 성차별을 외면하고, 여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등 여성 인권을 퇴행시키는 판결을 해왔다"며 지명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 이 후보자 "권고형 범위 내에서 형량 정해…형량 높인 사례도 다수"

이 후보자는 2020년 12살 아동을 세 차례 성폭행하고 가학적인 성행위(미성년자의제강간·아동복지법 위반)를 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7년으로 감형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 쪽은 입장문을 내고 “하급심의 양형 편차를 최소화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양형기준을 참고해 적절한 형을 선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고형의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형량을 정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과거 성범죄를 포함한 강력범죄 등에 대하여 엄정한 판단과 형을 선고한 다수의 판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형한 일부 판결들만이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며, 후보자가 법관 재직 기간 동안 선고했던 판결 전체에 대하여 균형 있게 살펴봐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한 2020년 11월, 결별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7시간 넘게 감금하고 강간을 시도한 남성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한 사례와, 비슷한 시기 17살의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남성에게 1심의 징역 8개월보다 무거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판결 등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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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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