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살고 黨은 폐족 만드는 죄[오승훈의 시론]
원내1당 당수 단식은 명분 없어
사법리스크 속일 치트키일 뿐
당권 유지와 총선 영향력 속셈
당은 방탄 늪 속 사당화는 가속
팬덤 맹위와 내홍 반복이 현실
수권정당 망치는 李 책임 위중
집권 가능성이 있는 야당을 수권(受權)정당이라고도 한다. 타당한 국정 대안을 제시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지향한다.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이 이동하는 민주주의 제도에선 그런 가능성을 입증하는 게 야당의 책무다.
지난달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1주년을 맞아 꺼낸 건 ‘무기한 단식 농성’이다. 내년 4·10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뭔가 집권 전략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자해 전략’이 전부였다. 명분은 정치 쟁점들을 아전인수로 뭉뚱그려 놓고 대통령 사과와 개각을 요구하는 것뿐이었다. 자신도 약하다 싶었는지 단식 중단 조건을 묻자 “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겪고 계신 절망과 어려움에 함께하겠단 뜻”이라고 했다. 민주화 조치를 내걸어 진영을 단합시킨 김영삼, 지방자치 실시를 끌어낸 김대중처럼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꾼 단식과는 함께 거론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단식투쟁은 생명을 건 극단의 시위 방식이다. 소수파로, 중대한 국가 사안에 다른 해결 방법이 없을 때라면 또 모를 일이다. 현안마다 여야 간에 찬반 갈등이 있고 대통령의 말과 프로세스에 거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지금이 객관적으로 ‘국민 항쟁’ 운운할 상황인가. 더욱이 그는 168석을 가진 국회 제1당의 당수(黨首)다. 숫자를 앞세워 절대적 입법 권력을 휘둘러왔고, 얼마든지 상임위원회 활동을 주도하며 국정을 견제할 수 있다. 유권자를 빼놓곤 누구에게도 굽신할 필요가 없는 위상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런 유력자의 단식에 공감할 사람이 ‘개딸’을 빼면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리 따져봐도 이 대표가 결심한 이유로는 단식의 다른 쓸모밖엔 없다. 당면한 검찰 소환 조사(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사건)와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응할 묘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단식 이틀째 이 대표가 ‘2시간짜리 조사’를 고집하면서 속내의 일단이 드러났다. 검찰이 수용하지 않아 무산됐지만, 앞으로 ‘단식 중’이라는 핑계는 사법 절차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 치트키(cheat key)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머그샷 효과’를 벤치마킹했을지도 모른다. 미국 사상 초유로 전직 대통령이 범죄인 기록 사진을 찍었는데 지지율이 올라갔다. 단식카드도 수사의 정치적 피해자로 인식시켜 동정 여론을 얻게 해 줄 수 있다. 재판까지 지연시킨다면, 당 대표직 유지는 물론 내년 총선에서 설욕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대표가 사는 길이 민주당은 죽는 길이었다. 당이 윤리·도덕성 위기와 내로남불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 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였다. 대선 패배자가 국회에 입성하고,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등극한 이후 1년이 그러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돈봉투, 김남국 코인, 김은경 파동 등에 휘말릴 때마다 자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대표가 만든 프레임 ‘정치검찰의 야당 죽이기’에 따라야 했다. 우두머리가 범죄자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그 일파가 도덕성을 바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장외투쟁과 강경 투쟁은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강도를 높일 때 나왔다. 2, 4, 6월에만 있는 임시국회를 상시 국회로 만든 것도, 국회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해 개딸의 문자 폭탄과 분당 직전의 내홍을 겪게 한 것도 그였다. ‘방탄·사당화’에 휩싸인 동안 당 지지율은 여권의 실책에도 반등 고삐를 잡지 못했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7%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혁신은 고사하고 팬덤정치만 날뛰며 내분 위기가 반복되는 정당, 그게 민주당의 현주소다.
수권정당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정당은 존립의 이유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은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하자 “친노라고 표현돼 온 우리는 폐족(廢族)”이라고 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으니 조상이 큰 죄를 지어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폐족과 같다는 것이다. 유인태 전 의원이 이재명체제 1년에 대해 “대표로 나와선 안 됐다”고 한 게 단지 그만의 탄식은 아닐 듯하다. 실정법을 어긴 죄는 판사가 가리고, 부도덕함은 유권자가 심판한다. 당을 폐족의 위기에 빠뜨린 것도 민주당엔 중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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