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을 사랑했던 중국, 비슷한 듯 달라진 현재 [베스트 애널리스트 투자 전략]
[베스트 애널리스트 투자 전략]
작년 12월과 올해 3월 두 차례 발급된 외자 판호(외국 게임사의 중국 내 서비스 허가권)로 한국산 게임들이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을 충분히 검토한 덕분도 있지만 중국 정부의 게임 산업 규제 시기를 꽤 오래 겪으며 실적과 재무 상태가 악화된 중국 퍼블리셔들의 신작 출시 의지도 엄청나다.
한국 게임 중 ‘로스트아크’와 ‘에픽세븐’, ‘블루아카이브’는 판호를 발급 받은 지 각각 7, 6, 5개월 만에 출시됐다. 이는 과거 중국 퍼블리셔들이 게임을 출시할 때 사전 예약만 1년 이상 진행하거나 비공개 베타 서비스(CBT)를 수차례 진행하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이고 그만큼 현재 퍼블리셔들은 정부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 속도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작품 중 넥슨게임즈의 ‘블루아카이브’는 일본과 한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출시 초기 대비 역주행을 달리고 있었던 것과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이 한국산 서브 컬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최고 매출 순위 9위까지 기록했던 것에 비해 부진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블루아카이브’의 부진한 성과로 중국 시장에서 한국 게임의 경쟁력과 흥행 가능성에 대해 기대감이 낮아졌다. 하지만 그 외 한국 게임들의 성과는 매우 긍정적이다. 넷마블의 ‘스톤에이지’ 지식재산권(IP)으로 개발한 텐센트의 ‘신석기시대’, 스마일게이트의 대표 서브 컬처 게임 ‘에픽세븐’은 모두 출시 초기 톱10에 빠르게 진입했고 8월 17일 출시된 넥슨의 ‘메이플스토리M’은 매출 순위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위메이드와 샨다(세기화통)-액토즈소프트는 ‘미르2’, ‘미르3’의 중국 라이선스 사용권으로 5년간 5000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PC 게임으로서 글로벌 성과를 낸 후 7월 중국에 출시된 ‘로스트아크’는 현재 중국 도위TV에서 ‘리그오브레전드’, ‘던전앤파이터’, ‘도타2’와 시청자 수 기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산 게임과 한국산 IP가 여전히 중국에서 유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당연히 중국에 진출하는 것만으로 재무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는 2016년 전에 끝났기 때문에 선별적 투자가 필요하다. IP의 흥행 가능성은 개발사도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계속해 정성적인 요인들을 분석하며 새로운 기회와 사례를 기다려 볼 가치는 충분하다.
2000년대부터 중국인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 온 한국 IP들은 지금 어떨까. 수년간의 큰 변화 속에서도 ‘미르’, ‘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등의 레거시는 아무리 우려도 깊은 맛과 향을 내는 티백과 같다. 한국산 IP를 한국 개발사가 만들어 글로벌 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 개발사들이 IP를 빌려 만들어 낸 파생작들의 수도 많고 이에 따른 IP 수수료 수익도 여전히 유의미하다. 절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만큼 한국산 IP는 중국에서 엄청난 충성도를 보유하고 있고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개발사들에 하나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은 한국과 같이 중국에서도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상위권에 자리한 장르들을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이는 새로운 세대가 모바일 플랫폼에서 캐주얼 콘텐츠를 선호하는 트렌드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인기 IP를 이용하더라도 향후엔 하루종일 자동 사냥 돌려 놓는 게임보다는 ‘스타레일’이나 ‘우마무스메’ 같이 스토리를 이용해 IP 충성도를 높이면서도 한 스테이지를 짧게 진행할 수 있는 하이 퀄리티 패스트푸드가 젊은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 중국 게임 산업의 트렌드나 유저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예전에 비해 더 어려워진 느낌이다. 인구가 많고 다양성이 높은 때문인,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예전엔 잘 만들어진 게임을 수입해 즐겼지만 수년간 중국 개발사들의 역량이 발전해 이제는 그들이 원하는 게임을 직접 만들어 즐기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00~2010년 PC 시절엔 ‘크로스파이어’, ‘던전앤파이터’ 같은 게임들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모바일 플랫폼에서 고품목 게임이 이식되기 시작한 뒤에는 모바일 MMO·레이싱·슈팅 등 한국과 유사한 장르별 인기를 보여 중국과 한국 유저의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산 IP가 여전히 중국에서 영향력이 있지만 지금의 메인 트렌드와는 별개로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결과적으로는 중국만큼 매출 순위에 다양한 장르가 위치한 국가가 없기 때문에 특정 장르 내에서도 게임의 퀄리티, IP 파워뿐만 아니라 운영 능력까지 더욱 엄격한 잣대로 흥행 여부와 성과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
2023 상반기 인터넷·게임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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