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홍범도 논쟁? ‘관심 없다’는 청년들 [임명묵의 MZ학 개론]
(시사저널=임명묵 작가)
갑작스럽게 독립운동과 국가 건설을 둘러싼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시작은 광주광역시에서 기리는 음악인 정율성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정율성은 광주 출신으로서 중국으로 건너가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에 참여했고, 오늘날까지도 인민해방군을 대표하는 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간 광주시에서는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고 광주 출신의 항일 인물을 기념한다는 이유로 정율성 음악제를 열고 정율성 생가 전시관 및 기념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8월부터 정부가 문제를 제기했다.
8월25일에는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독립군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히면서 더욱 민감한 역사 전쟁이 촉발되었다.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정율성과 달리, 육군사관학교의 독립군 흉상에는 교과서에 봉오동 전투의 영웅으로 나오는 홍범도가 포함되어 있기에, 각계각층의 반발은 훨씬 더 격렬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국방부·육사 측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맞는 인물을 기리는 것이 더 적합하기에 독립군 흉상 철거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북한을 '골치 아픈 이웃'으로 인식
물론 1962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홍범도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에는 해군에서 잠수함 홍범도함도 진수한 만큼, 왜 갑자기 정율성에 이어 홍범도까지 역사 전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아한 측면이 많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독립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한국에서 '민족'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도 민족주의적 의식이 훨씬 높았던 한반도에서 분단이 갖는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1945년의 세계는 민족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이념 투쟁의 시대, 즉 미·소 냉전으로 돌입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시작된 고강도의 체제 경쟁과 대치 상태는 남북 정권이 각기 자신이 한민족의 정통 국가임을 주장하게끔 만들었다. 이들에게 분단이란 현대사의 비극이 만들어낸 '일시적 상태'였다. 그러니 결국 언젠가는 우월한 체제를 갖춘 한쪽이 상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어내 민족사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일반적이었다.
누구보다 냉전 대치에 철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홍범도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홍범도는 남한 지역과는 어떤 연고도 없는 인물이었지만, 애초에 당시 한국에는 이북에서 건너온 실향민들이 상당했다. 박정희 정권은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통일될 모든 한민족의 정통이라는 감각하에 홍범도를 추서했을 것이다.
1980년대에 분단 및 냉전 체제에 비판적인 운동권들이 전면에 부상하고, 남북 체제 경쟁이 대한민국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면서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적 열정은 더욱 강렬해졌다. 게다가 꾸준한 경제성장의 결과로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세계 무대에서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자부심도 폭발했다. 북한이 실존적 위협으로서 진지한 상대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자, 이러한 민족주의적 열정은 일본, 혹은 미국을 향해 타오르게 되었다. 그 결과 홍범도를 넘어 정율성이나 김원봉처럼 북한 및 중국 등 6·25 전쟁과도 관련된 항일운동가들이 적극적으로 기념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이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면, 냉전과 분단으로 인해 잊혔던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도 기념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심리가 확산된 것이다.
2000년대의 남북 화해 분위기는 북핵 위기 및 김정일-김정은 후계자 계승을 맞이해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며 남북 사이에는 다시 군사적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남북 간 대치 국면이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청년층, 특히 청년 남성에게 강력한 반북(反北) 정서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이 서로 다른 국가를 이루며 갈라선 지 오랜 시일이 흘렀고, 그간 두 국가 사이에 교류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최근의 세대로 올수록 북한을 같은 동포라기보다는 언제든 '우리나라를 노리는 주적' 혹은 '귀찮게 아예 얽히고 싶지도 않은 골치 아픈 이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 되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 시기의 냉전적 감각과도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반공주의는 강했지만, 북한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같은 민족이라는 민족주의도 강했다. 반면 지금의 청년층 사이에서는 한민족 전체를 같은 집단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종래의 민족주의에서,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 구성원만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는 대한민국 민족주의로의 전환이 매우 뚜렷하게 관찰된다.
거기에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재차 경색된 남북관계, 시진핑 시기 미·중 갈등의 격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사건이 겹치면서 '북·중·러 연대'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체제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며, 반북-반중 정서가 거세졌고, 북한 및 중국과 연관된 민족 인사들도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및 한·미·일 공조 체계 강화라는 최근의 외교 행보를 역사를 통해 정당화하고자 '역사 전쟁'에 돌입한 것 같다.
역사 논쟁이 실질적 삶의 개선 만들 수 있나
그러나 문제는 청년층 사이에서 '대한민국주의'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었다 하더라도 역사 전쟁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이들의 정치적 수요에 맞는 것이냐는 데 있다. 사실 본질적인 면에서, 대다수 청년층은 정율성이나 홍범도, 그리고 자유시 참변 등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당면한 생활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지, 이념이나 역사의 추상적 차원에 대한 세세한 논쟁을 따라갈 심리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육사 출신의 유튜버 '코리아세진'은 8월25일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곰팡이가 슬고 천장이 무너지는 (육사 내부) 시설을 개·보수할 자원도 모자라다면서 동상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중국 관광객 효과를 기대한다는 광주시의 정율성 기념 문제도 결국에는 지방 소멸 국면 속에서 낙후하고 있는 광주시의 경제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는 얘기다. 탈이념화된 오늘의 세계에서는 육사 생도나 광주시 청년들에게는 홍범도 흉상이나 정율성 공원보다는 사관학교 시설 개선과 지역경제 활성화가 훨씬 중요한 문제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현실의 발전과 호응해야 재해석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진정으로 정권이 '대한민국주의'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러한 역사적 재해석이 어떻게 실질적 삶의 개선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납득할 수 있는 비전 제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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