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오르는 중동 ‘항공 大戰’, 게임 체인저 노리는 국가는?[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2023. 9.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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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리야드에어 설립으로 ‘항공 大戰’ 가열
리야드 기점 100곳 이상 직항 노선 마련 예정
개혁·개방 위해 ‘항공사 육성’이 필수라 판단
환승 아닌 직항 중심 전략으로 경쟁국과 차별화
중동 ‘경제 허브’ 둘러싼 경쟁, 갈등 심화 전망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3월 설립한 항공사 ‘리야드에어(Riyadh Air)’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25년부터 정식 운항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이미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리야드에어는 설립 직후 보잉에 B787 항공기 39대를 발주했다. 앞으로도 대규모 추가 항공기 구매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10일에는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명문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식 메인 스폰서가 돼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3대 명문 프로축구팀으로 꼽히는 ‘빅클럽’이다.

리야드에어는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에어쇼 때 항공기 디자인을 공개했다. 리야드에어 트위터 캡처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 항공사 에티하드(Etihad)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고 현재 리야드에어를 이끌고 있는 토니 더글라스 CEO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과 의 인터뷰에서 “(리야드에어는) 아주 공격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환승이 아닌) 사우디 방문이 목적인 탑승객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리야드에어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전세계 100곳 이상의 도시를 잇는 직항 노선을 마련할 계획이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에미레이트항공(Emirates), 에티하드, 카타르항공(Qatar Airways), 터키항공(Turkish Airlines)이 주도해온 중동 항공사 경쟁에 사우디도 본격적으로 가세하는 상황”이라며 “사우디가 계속 리야드에어에 투자한다면 중동은 물론이고 세계 항공 시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니 더글라스 리야드에어 CEO(오른쪽)와 미구엘 앙헬 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EO가 지난달 10일 공식 후원 계약을 체결한 뒤 리야드에어의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홈페이지 캡처

● 리야드에어, UAE와 카타르 항공사의 성공 전략 벤치마킹

리야드에어는 사우디 국영 항공사로 1945년 설립된 사우디아(Saudia)와는 별개 회사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 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리야드에어의 소유주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리야드에어의 경영에도 깊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원은 리야드에어가 설립한 뒤 처음 진행된 대형 스포츠 마케팅 활동이었다.

또 에미리트항공, 에티하드, 카타르항공의 스포츠 마케팅을 연상시킨다.

세 회사 모두 세계 항공업계에서 후발 주자로 여겨진다. 가장 ‘선배’인 에미레이트항공이 1985년에 설립됐다. 카타르항공과 에티하드는 각각 1993년과 2003년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항공사들은 자국의 막대한 ‘오일머니(석유와 천연가스 판매 수입)’ 덕분에 단기간에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이 항공사들이 역사가 짧은 기업임에도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파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이 꼽힌다. 세 회사 모두 리야드에어처럼 유럽 프로축구 리그의 빅클럽 후원에 공을 들여 왔다.
(글로벌 스포츠 산업 노리는 ‘진격의 오일머니’[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611/119705180/1

에미레이트항공은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을 후원 중이다. 에티하드는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FC를 후원한다. 맨체스터시티FC의 구단주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은 UAE 아부다비 왕실 구성원이다.

카타르항공은 자국 투자청이 소유 중인 프랑스 리그1의 파리생제르맹을 후원한다. 과거에는 FC바르셀로나,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세리에A의 AS로마 등 다양한 명문 축구팀을 후원했다.

UAE 두바이 국영 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은 잉글랜드 아스널과 이탈리아 AC밀란 등을 후원하고 있다. 에미레이트항공 홈페이지 캡처
UAE 아부다비 국영 항공사인 에티하드는 잉글랜드 신흥 명문팀인 맨체스터시티FC 를 후원한다. 에티하드 홈페이지 캡처
카타르항공은 이강인이 뛰고 있는 프랑스의 파리생제르맹의 후원사다. 카타르항공 홈페이지 캡처
맨체스터시티FC, 아스널, 파리생제르맹 유니폼(왼쪽부터). 모두 후원 항공사의 이름이 유니폼 앞면 가운데 적혀 있다. 통상 유럽 프로축구팀들은 메인 스폰서의 이름이나 로고를 유니폼 앞면 가운데 새긴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리야드에어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원은 UAE와 카타르 항공사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전략”이라며 “유럽 빅리그의 명문팀 후원은 해당 팀이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건 물론이고 소속 선수들의 국적도 다양하고 이들이 월드컵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에 효과가 매우 큰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 항공사 육성, 탈석유 전략과 산업 다각화에 필요

사우디가 새로운 항공사를 설립해 가며 항공사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7년 왕세자 자리에 오른 뒤 본격 가동 중인 탈석유 전략과 개혁‧개방과 맞물려 있다. 현재 사우디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와 ‘석유 판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나라’란 기존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비전 2030’ 전략이다.

‘사우디의 젊은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는 석유 중심의 산업 구조를 바꾸는데 관심이 많다. 리야드에어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경영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사우디 국부펀드 PIF 소유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다양한 산업 구조를 갖춘 나라로 변화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콘텐츠 △관광 등과 관련된 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이를 위해, 해외 기업, 투자자, 관광객을 안정적으로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이탈리아와 유치 경쟁 중인 ‘2030 엑스포’를 비롯해 △네옴 프로젝트(사우디 북서부와 홍해 일대에 서울의 44배 크기의 대형 국제도시를 개발하는 사업) △성지순례가 아닌 일반 관광 허용 △글로벌 기업의 중동지역본부 유치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 등 다수의 중‧장기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하나 같이 해외에서 많은 인력이 사우디를 방문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향후 사우디 관련 항공 여행 수요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
(사우디가 ‘2030 엑스포’에 ‘올인’하는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625/119926276/1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항공사는 사우디가 중동의 대표 국가,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려면 꼭 갖춰야 하는 인프라”라며 “산유국이라 항공사 운영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를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사우디가 파격적으로 항공사 육성에 뛰어든 이유”라고 말했다.

UAE나 카타르도 산유국이란 특성이 자국 항공사를 단기간에 국제적인 수준으로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우디는 향후 네옴항공도 운영할 계획이다. 사우디아, 리야드에어의 뒤를 잇는 제3의 국영 항공사인 셈이다. 이름에 걸맞게 네옴항공은 사우디가 서북부와 홍해 일대를 중심으로 운항하게 된다.

사우디는 다른 아랍 산유국에 비해 인구가 많기 때문에 비석유 산업 육성이 더욱 필요하다. 글로벌 항공사는 해외 기업과 관광객 유치에 꼭 필요한 인프라로 여겨진다. 동아일보 DB

● 리야드에어에선 술이 허용될까

사우디 안팎에선 향후 사우디아와 리야드에어 간 역할 분담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리야드에어는 출장 또는 관광 목적으로 사우디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주고객으로 삼을 예정이다. 또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성장을 지향하겠다고 강조한다. 분명한 ‘상업 항공사’의 길을 걷겠다는 뜻이다.

반면 사우디는 향후 사우디아를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방문을 위해 사우디를 찾는 ‘무슬림 성지 순례자’ 운송에 중심을 둔 항공사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 메디나의 ‘예언자 모스크’를 찾은 순례자들. 리야드에어가 운항을 시작하면 기존 국영 항공사인 사우디아는 성지 순례자들을 수송하는 역할을 주로 할 전망이다. 동아일보 DB

일각에선 이런 항공사 간 역할 분담을 통해 리야드에어에선 ‘주류’ 서비스가 허용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아는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원칙아래 모든 노선에서 주류를 제공하지 않는다. 사우디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들도 원칙적으로 사우디 영공을 벗어난 뒤부터 술을 제공할 수 있다. 사우디아 항공기에선 이륙 전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쿠란(이슬람 경전) 구절이 기내 방송으로 나온다. 또 메카와 메디나 상공을 비행할 땐 ‘신의 축복’을 기원하는 기장의 안내 방송도 나온다. 말 그대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는 항공사인 것.

항공사는 국가 브랜드나 이미지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성지순례자가 아닌 출장자와 관광객을 주고객으로 삼는 리야드에어에선 ‘사우디아와는 다른 서비스(주류 제공)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도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리야드에어 설립을 결정했을 무함마드 왕세자가 개혁‧개방을 강조해왔단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우디가 네옴 프로젝트를 통해 홍해 일대에 대규모 관광지를 개발한다고 2017년 밝혔을 때도 향후 일부 지역에선 외국인에게 제한적으로 술이 허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물론 현재까지 사우디 정부는 자국내 주류 허용과 관련해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다. 리야드에어가 향후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는 사우디의 개혁‧개방 속도와 강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도 여겨질 수 있다.

7월 말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디스커버 네옴’ 전시회. 사우디는 네옴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해외에서 관련 전시회를 열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서울에서 가장 먼저 열렸다. 동아일보 DB

● UAE와의 갈등 심해지나

리야드에어가 본격적인 운항에 들어가면 바로 옆 나라인 UAE, 카타르와 ‘묘한 신경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치열한 ‘중동 항공사 대전(大戰)’에 또하나의 강력한 경쟁자가 뛰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리야드에어는 ‘환승객 적극 유치 전략’을 택했던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터키항공과 달리 ‘직항 중심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더글라스 CEO도 “카타르, UAE와는 다른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UAE 두바이는 그동안 중동 진출 해외 기업의 법인과 지사를 대거 유치하며 ‘중동의 경제 허브’란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사우디가 최근 공격적인 해외 기업 유치 전략을 세우면서 경쟁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리야드에어 설립은 사우디의 해외 기업 유치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부르즈 할리파(가운데 높은 건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두바이의 상징이다.동아일보 DB

또 사우디는 내년부터 자국에 중동지역본부를 두지 않은 외국 기업에게는 정부와 공공기관 사업 입찰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장기적으로는 UAE가 두바이를 중심으로 펼쳐온 ‘중동 경제 허브 전략’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다.

사우디는 아랍권에서 인구와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대형 개발 프로젝트도 많다. 때문에 사우디가 자국 내 중동지역본부를 둔 외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입찰 기회를 허용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UAE를 떠나 사우디로 향하는 기업’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와 UAE는 아랍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두 나라는 정치 체제(왕정), 경제 구조(산유국), 종파(이슬람 수니파)가 같다. 6개 아랍 산유국(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이 결성한 정치‧경제협력체 걸프협력회의(GCC)에서도 사우디와 UAE는 유독 가까웠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킹덤타워. 동아일보 DB

하지만 최근에는 △예멘 내전(사우디는 계속 개입 중이지만 UAE는 사실상 철수 상태) △카타르 단교사태(사우디는 화해에 적극적이었지만 UAE는 부정적이었음) △석유 증산(사우디는 소극적, UAE는 적극적) 등에서 입장이 달랐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아부다비 국왕)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소문도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월 UAE에서 열린 중동 국가 정상 회의 때 무함마드 왕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12월 사우디에서 열린 중국·아랍 정상 회의 때는 무함마드 대통령이 불참했다.

원래 두 사람은 멘토(무함마드 대통령)와 멘티(무함마드 왕세자) 사이란 말이 돌 정도로 가까웠다. 특히 올해 62세인 무함마드 대통령이 38세인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개혁‧개방과 안보 이슈에 대한 조언을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국내 한 중동 전문가는 “두 나라 관계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그동안 UAE가 주도해온 중동의 경제 허브 자리를 사우디가 많이 장악해 간다면 사이는 더욱 소원해 질 것”이라며 “항공사 간 경쟁도 두 나라 간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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