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부터 말하라는 교육청 매뉴얼…교사 단체 “책임 전가”

김동환 2023. 9. 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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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 후 80여명이 모인 ‘현장교사 정책 TF팀’의 300쪽 분량 ‘연구 보고서’
서울시교육청의 ‘특이 민원 대응 매뉴얼’ 응대 방식 비판…“악성 민원으로부터의 보호 의지 부족”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불편을 끼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 8일 후인 지난 7월26일, 서울시교육청이 공식 홈페이지에 재안내한 ‘특이 민원 대응 매뉴얼’의 방문 민원 세부상황별 대응 요령에 이 같은 ‘대응 예시문’이 나와 있다.

‘용건 없이 학교에 와서 고함을 지르고 행패를 부리는’ 특이 민원 ‘진정 시도’ 단계에서 대처 방안을 나타낸 대목인데, 매뉴얼은 우선 차를 대접하거나 접견실 안내로 민원인의 진정을 시도하고 이후에도 고함과 행패가 지속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식의 대응을 이어나가도록 안내한다.

아울러 ‘사소한 일로 꼬투리를 잡고 항의하는 경우’에서도 담당자가 민원인 주장을 처음부터 ‘반박’하지 않고 우선 주장을 충분히 들어본 후, 공감 의사를 표현해 편안한 소통을 노력하는 것으로 대응 요령을 뒀다. 담당자는 이때도 ‘선생님의 고충을 잘 이해한다’며 ‘불편을 드린 점 사과드린다’ 등의 말을 하도록 예시가 나왔다.

두 가지 대처 방안의 공통점은 담당자, 즉 교사의 선제 사과를 문제 해결의 전제로 언급한다는 점이다. 대화를 통한 민원 해결이라는 취지에서 이러한 대응 요령이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일선 교사 사이에서는 교육청이 학교에 문제를 떠넘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서이초 교사 사망 후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서 현장교사 80여명이 모여 구성한 ‘현장교사 정책 TF팀’의 보고서가 이를 지적했다는 점은 교육 당국이 더욱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장교원 정책 TF팀 제공
 
TF팀은 지난달 발표한 ‘현장교사들이 생각하는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현 정책에 대한 해결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약 300쪽 분량 보고서에서 행정안전부의 민원응대 매뉴얼 언급으로 ‘교육 당국이 학교급에 민원의 책임을 전가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행안부의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에는 대면 민원인의 폭언에 ‘폭언하면 정상적 상담이 어렵다’며 ‘폭언을 중단해달라’는 비교적 강경한 어조의 대응 방침이 나와 있다. 이어 주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돌발상황 방지를 위해 휴대용 보호장비로 녹화나 녹음을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 경고성 대응 과정에서 민원인의 폭언이 그친다면 ‘정상 응대’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도록 규정했다.

한 발 나아가 비상대응팀이 폭행죄 고소를 당할 수 있으므로 민원인과의 신체접촉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유의를 당부하고, 민원인과 민원 담당자의 법적 분쟁 발생 시 전담 부서가 나서 증거물을 관할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하는 등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TF팀은 이러한 차이를 들어 “행정안전부 매뉴얼은 첫 단계부터 ‘폭언하시면 정상적인 상담이 어렵다’고 대응하게 안내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우선 불편을 끼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와 같이 민원 담당자가 잘못한 사실이 없는데도 진심으로 사과하게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시교육청 매뉴얼이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주장도 TF팀은 펼쳤다.

학교 운동장을 쓰는 주말 축구 동호회 소음 민원 사례에서 교육청이 민원인에게 ‘학교 측에 운동장 이용 시 유의하도록 요청하겠다’고 예시 든 대목을 두고 TF팀은 “교육청은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육 공무원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며 “민원의 책임을 학교에 전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날을 세웠다.

계속해서 “민원 공무원이 잘못한 사실이 없는데도 사과부터 하도록 하거나, 민원인의 욕설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상담실로 안내하도록 하는 등 교육청이 비난받을까 두려워 악성민원을 단호히 막지 못하고 보호해야 할 구성원의 아픔을 부추기는 현 매뉴얼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교사는 보호자의 민원을 응대함과 동시에 학생을 지도하는 교육자이기도 하다”며 “학교의 민원 매뉴얼이 일반 공공기관 민원 매뉴얼과 비슷하게 구축된다면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교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말로 일반 공공기관과 다른 ‘학교 현장’에 적합한 매뉴얼 별도 개발 중요성을 부각했다. 학교에서의 민원이 특수한 이유는 민원 처리 주체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이라는 게 TF팀의 주장이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각 학교에 교육공무직이 참여하는 민원대응팀을 구성하는 방안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 보인다. 악성 민원을 교사가 필터링 없이 담당한다는 비판에 학교장 책임하에 교감, 행정실장, 교육공무직 등 5명 내외 민원 대응팀을 구성·처리하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 발표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일선 교사를 보호하고 소통 창구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와 까다로운 학부모 민원을 두고 일종의 ‘폭탄 돌리기’라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같은 달 28일 정부서울청사와 전국 시·도 교육청 앞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이 같은 방침 발표에 거세게 반발했다.

단체는 “학교에는 체계적인 민원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나 그 모든 민원을 민원대응팀이 받고 접수·분류·처리까지 교육공무직이 떠맡게 되면 심각한 민원업무 폭탄이 초래된다”며 “교육공무직은 민원업무 전담을 위해 채용된 사람이 아니다. 고유한 역할을 무시하고 새로운 업무 영역과 체계를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상급기관이 1차 민원 응대를 맡는 등 교육공무직 지원 대책 마련 촉구의 목소리가 자리에서 나오기도 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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