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한국에서 웬 팁?”… ‘팁 문화’ 왜 한국에서 도입 거론하나
몇몇 식당·카페에서도 팁 요구해 비난 사
국내 팁 문화 도입 대한 소비자 우려 상당
최저임금 정해진 한국은 팁 문화 필요없어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여러분은 ‘팁’이란 것을 주거나 받아본 적이 있나요? 팁 문화권으로 여행을 가보신 분들이라면 팁을 내본 경험이 있을 텐데요. 라노는 아직 팁 문화권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여행을 가본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팁을 계산하는 게 은근 골치 아프다고 입을 모아 말해요. 팁을 얼마나 줘야 할지도 신경이 쓰이고, 팁 지불을 위해 지출해야 하는 돈이 부담될 정도로 많다고 해요. 팁을 지불할 정도로 엄청난 서비스를 받은 것 같지도 않은데 그 나라의 문화라는 이유로 팁을 지불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는데요. 우리나라는 팁 문화권이 아니라서 더 생소하고 더 당황스러운 것 같아요.
‘팁’이란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일정 대금 이외에 추가로 더 챙겨주는 돈을 말합니다. 팁 문화의 정확한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16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 상류층인 귀족이 하인에게 호의를 베풀던 문화가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했다고 하죠. 남북전쟁 이후 과거 노예였던 흑인들이 해방돼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팁 문화가 널리 퍼졌습니다. 이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팁에 의존하게 한 것입니다.
미국은 중앙정부가 정한 연방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한 주별 최저임금 중 더 높은 것을 적용하게 돼 있습니다. 현재 연방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약 9600원)입니다. 그런데 외식업이나 숙박업 일부 직종의 연방최저임금은 시간당 2.13달러(약 2800원)에 불과합니다. 미국 최저임금법은 팁을 받는 직종을 지정해 최저임금 이하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임금을 낮게 주도록 허용한 것이 팁이 일반화된 이유입니다. 고용주가 지급해야 하는 상당 부분의 월급을 손님에게 대신 받도록 유도한 시스템인 것인데요. 최저임금이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상품 가격 안에 서비스 가격을 포함해 지불하도록 돼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팁 문화가 비교적 활성화된 서구권과 달리 한국에서는 생소한 문화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9일, 국내 택시 호출 플랫폼 카카오택시가 ‘팁 지불 서비스’를 시범 도입하면서 팁 문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택시 이용이 끝나면 카카오택시 앱을 통해 기사에게 팁을 줄 수 있도록 했는데, 좋지 않은 문화를 굳이 도입한 것에 대한 반감을 샀습니다. 카카오택시를 시작으로 몇몇 식당과 카페에서도 팁을 요구해 소비자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국내 팁 문화 도입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는 상당합니다. 처음에는 호의로 시작한 팁 지불이 나중에는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팁을 주지 않는 게 무례한 행동으로 통하고, 종업원의 눈치를 보며 몇 퍼센트의 팁을 낼지 선택할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염려합니다. 미국과 같이 서비스직 근로자의 낮은 임금을 정당화하는 악질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게다가 ‘팁’이란 것 자체가 유동가격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불해도 되고,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유동가격이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고정된 가격을 기준으로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게 더 편한데, 유동가격까지 고려해 물건 구매 여부를 결정하면 훨씬 불편해진다는 것. 팁 문화는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실제로 국내 여론조사 플랫폼 더폴이 최근 2만2203명에게 팁 제도 도입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매우 부정적(37.95%)’ ‘약간 부정적(23.08%)’ 등 부정적 의견이 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팁 문화 확산을 부담스러워하는 여론이 많다는 뜻입니다.
인하대 이은희(소비자학과) 교수는 “팁 문화 도입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소비자가 지불한 팁이 고용주에게 갔는지 종업원에게 갔는지 알 수 없고, 팁을 지불하지 않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불이익이 걱정된다는 것. 팁 박스와 같은 도구를 통해 팁을 요구했을 때 소비자가 느낄 압박에 대해서도 우려했습니다.
이 교수는 고물가로 인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은 현시점에 팁 문화 도입이 거론되는 것도 부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팁을 지불한다는 것 자체가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뜻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른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 이 교수는 “최저임금이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팁 문화가 필요 없다”며 “고물가 때문에 고생 중인 소비자에게 팁까지 지불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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