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향 어디서부터였을까…‘멸종위기 4만 2100종’ 인류세로 지구 대멸망 온다
존 루든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회장은 지난달 2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 세계지질과학총회(IGC2024) D-1주년 행사’에서 “IGC2024에서 인류세 관련 결의문이나 성명문이 나오기는 시간이 촉박하다”며 “지질학계에서 인류세의 시작점을 두고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 만큼 당장 결론을 내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지구가 약 1만 1700년 전 시작된 ‘홀로세’에서 벗어나 인류에 의해 큰 변화를 겪는 지질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인류를 뜻하는 ‘anthropo-’에 지질시대의 한 단위인 세(世)를 붙였다. 1980년대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 박사가 처음 용어를 사용하고, 2000년 크뤼첸 박사와 스토머 박사가 다시 문헌을 통해 사용했다. 인류의 환경 영향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개념처럼 사용되어오다 최근 새로운 지질시대로 공식 지정하기 위한 학계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인류가 지구에 미친 영향이 커진 만큼 새로운 지질시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2009년 국제층서학위원회(ICS) 인류세워킹그룹(AWG)을 구성해 인류세의 기준을 세우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 끝에 지난달 1950년대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설정하고, 캐나다 크로포드 호수를 대표 지층으로 하는 최종안을 발표했다. 이 안을 ICS와 IUGS가 승인하면 인류세가 학계에서 공식 인정받는 것이다. 시기상 내년 IGC 부산 총회에서 인류세 공식 선언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루든 회장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인류세 시작점을 1960년대 플루토늄 사용하면서부터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인류가 지구에 영향을 미친 시점으로 봐야 할 지 등의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며 “인류세는 특정 시작시점과 종료시점을 결정하는 전통적 지질학적 원칙과 사뭇 다르기도 해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내리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세 선언이 주목 받는 것은 ‘인류의 문명이 지구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인류는 250만 년 전 탄생해 다른 수 많은 생물처럼 자연에 순응해 살고 있었다”며 “어느 순간 인간이 자연이 바꾸는 조절자 역할을 하게 됐는데, 인류세 선언은 이 시기의 시작점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인류세 선언이 지구 대멸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고도 주장한다. 인류세에 접어듦에 따라 나타내는 대표적 변화가 종의 멸종이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 따르면 현재 4만 2100종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2000년 1만 533종이었던 멸종위기종은 2012년 2만 219종을 기록한 데 이어 가파르게 그 숫자가 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멸종의 속도는 지금껏 지구의 생물이 겪었던 그 어떤 시기보다도 빠르다는 분석이다.
인류세 도입을 아예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인류의 영향이 지구 대멸종을 이끈다는 주장에 정치적 목적이 너무 강하게 담겨있다는 게 이유다. 지구에 끼친 인류의 영향을 논하기에는 인류 역사가 너무 짧다는 주장도 존재하는 등 인류세를 두고 학계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 논의는 내년 8월 25~3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IGC2024 개최까지 쭉 이어질 전망이다. 전 세계 1만 명의 연구자가 부산에 모여 인류세 외에도 지구물리학과 환경지리학, 층서학 등의 최신 학술 연구를 공유한다. 루든 회장은 “내년 대회가 지질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고심해볼 논의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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