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민심을 읽어야 산다… ‘애민’의 해결사 vs ‘경청’의 조율사[Leadership]
“첨예한 이슈를 선점해 상대를 분열시키고 지지자들은 결집시켜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표어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무너뜨린 빌 클린턴의 ‘스핀닥터’ 딕 모리스가 남긴 말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도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7개월 남겨두고 민심을 정확히 읽어내는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양당의 ‘정책 컨트롤타워’인 싱크탱크는 매일 여론동향 점검 자료를 살피며 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서울대 82학번 동기이자 여야 싱크탱크 수장인 박수영(59) 여의도연구원장과 정태호(60) 민주연구원장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초선’이지만, 다선 의원 못지않은 경험과 실력으로 종횡무진 중이다.
與 여의도硏 박수영
경기도 행정부지사 시절 ‘경기도의 해결사’ 별명 얻어
‘주름살 펴는 정치’추구… 3년째 매주 토요일 주민 만남
◇‘법학도 출신 행정 달인’… 파워엘리트 박수영 = 부산의 달동네 남구 문현동 판잣집에서 태어난 박 원장은 1982년 전국 학력고사 9등으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뒤 행정고시 7등을 차지한 수재다. 서울대 법과대학 시절에는 당시 교수였던 고 박세일 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수제자였다. 당시 박 전 이사장은 법대생 제자들에게 ‘행정고시’에 도전할 것을 권했다. 박 전 이사장은 “이미 제군들은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여기까지 왔다. 판사와 검사는 사고가 난 뒤 뒷정리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행정공무원은 사고를 미리 막고 대비하면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직업이니 꼭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이 말에 감명받은 박 원장은 법대 4학년 시절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중앙인사위원회 정책총괄과장,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실 선임행정관, 행정안전부 혁신정책관, 경기도 행정1부지사를 역임했다. 행정부지사 시절에는 경기도의 수많은 현안을 깔끔하게 처리해 ‘경기도의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판교 테크노밸리를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메카로 이끌었고, 무산 위기에 직면했던 경기 광교 신청사를 살려냈다. ‘적극 행정 면책제도’인 사전컨설팅 감사제를 도입해 정부 감사제도 혁신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박 원장은 스승인 박 전 이사장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며 정치생활을 하고 있다. 박 전 이사장은 유작 ‘지도자의 길’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능력과 덕목으로 애민 정신과 자기 수양,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비전과 정책능력, 인재를 구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제시했다.
박 원장은 애민 정신과 공동체 의식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에서 ‘국회의원 좀 만납시다’라는 이름으로 2020년 6월 13일부터 매주 토요일 주민과 만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은 135번째 만남이었다. 그간 4500명이 넘는 주민이 사무실을 방문해 1125건이 넘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 중 780건의 민원이 처리됐다. 처리율이 무려 70%에 이른다. 서울시장 비서관 시절에는 달동네 화장실 문고리를 달아준 것을 계기로 ‘행정은 주름살 펴기’를 공직 수행의 모토로 삼아 이를 실천해왔다. 지금은 그의 의원실 책상에는 ‘정치는 주름살 펴기’라는 명패가 놓여 있다.
그는 자기 수양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국 하버드대 정책학 석사,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 행정학 박사 학위가 이를 증명한다. 추진력도 남달라 지난해 11월,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다르게 책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인상되는 수도권 지역 의원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법 통과를 위해 관련 상임위원회 위원들을 수시로 찾아가 설득한 끝에 해당 법안은 지난 5월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박 원장은 3월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되고서는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시스템 도입을 위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박 원장은 “여론조사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최적의 후보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박 원장이 사용하는 의원실에는 ‘박수영 의원실은 차와 커피가 셀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벽에 붙어 있다. 보좌진이 오롯이 본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스승이 강조한 ‘인재’를 구하는 작업을 몸소 실천 중이다.
野 민주硏 정태호
1시간 만나면 50분 들어… 文정권 광주형 일자리로 주목
‘구호’ 보다 ‘실력’이 낫다… 정책 역량 기르기에 치중해
◇“靑 수석 거친 3선 같은 초선”… 정책통 정태호 = 정 원장은 “데모 수백 번을 하는 것보다 노동법 한 줄을 바꾸는 게 유익하다”는 생각으로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다. 대학 시절(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민주화 운동으로 두 번이나 옥살이하고도 세상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한 뒤 중요한 건 ‘구호’가 아닌 ‘실력’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1991년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이해찬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정 원장이 정치인의 여러 자질 가운데 ‘정책 역량’에 유독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1997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의 정책 분과에서 행정관으로 일하면서다. 각 중앙부처의 내로라하는 실·국장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정책 장악력 없이는 세상을 바꾸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이에 정 원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서 근무할 기회를 포기한 채 미국으로 날아가 2년에 걸쳐 뉴욕주립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한국과 달리 토론을 특히 중시하는 환경에서 유학한 경험은 정 원장이 높은 정책 이해도뿐 아니라 ‘경청의 리더십’을 장착하는 밑거름이 됐다. 동료 의원들은 정 원장을 “1시간을 만나면 50분 동안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소통 리더십’은 보좌진이나 실무자와 회의를 진행할 때도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본인 생각과 ‘다른 의견’일수록 귀 기울이고 충분히 숙고해 ‘정·반·합’을 통한 더 나은 제3의 의견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정 원장이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으로 일할 때 그를 눈여겨본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여름 일자리수석비서관으로 발탁한 배경에는 젊은 시절부터 갈고 닦은 정책 역량이 놓여 있다. ‘정태호 일자리수석’의 대표적 성과로는 광주형 일자리 창출이 꼽힌다. 광주형 일자리는 정부와 광주시·현대자동차 등 노·사·민·정 4자의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으로 약 7000억 원을 투입해 1만2000여 명의 고용 효과를 창출한 프로젝트다.
2015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아픔을 딛고 21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뒤에도 ‘정책 브레인’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창업 정책의 근간인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바꾸는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지역구인 서울 관악구 주변의 신림동 고시촌을 미국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스타트업 창업 기지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초선임에도 탁월한 추진력 덕분에 정 원장에겐 ‘3선 같은 초선 의원’이라는 애칭이 따라붙는다.
내년 총선 결과에 대한 전망은 어떨까. 정 원장은 현재 ‘정권 심판론’과 ‘정권 안정론’이 팽팽히 맞선 만큼 경제 여건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원장에게 ‘민주연구원장 정태호’가 아니라 ‘정치인 정태호’로서 내년 총선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지역주민들은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까요? ‘세상을 얼마나 바꿨는가. 조금이라도 바꿨으면 다시 출마하고, 그렇지 못하면 때려치워라.’ 이 무언(無言)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힘없고 배경 없는 사람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정치인 정태호의 초심을 되새깁니다.”
이해완·나윤석·이후민 기자
여의도연구원 한국 최초 정당 싱크탱크… ‘여연에 물으면 답 나온다’ 말도
민주연구원 2008년 정세균 주도 설립… 2019년 양정철 취임하며 주목
여의도연구원(여연)과 민주연구원은 양대 정당을 이끄는 대표적 ‘싱크탱크’이다.
여연은 국민의힘 싱크탱크로 1995년 민주자유당에 의해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정당 정책 연구원이다. 여연은 정책 발굴과 여론조사, 선거 판세 분석 등을 담당하고 있다. 한때 ‘여연에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는 말이 돌 정도로 예측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 당시 시중에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보수 여당의 압승으로 나왔을 때도 여연은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여당의 패배를 예견했다. 심지어 총 의석수가 125∼127석 정도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122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암흑기도 있었다. 특정 계파 인물이 원장직을 맡아 여론조사 결과 등으로 상대 계파를 억압하는 계파싸움의 도구로 여연을 활용한 적도 있었다. 여연 해체론도 이때 나왔다.
여연 재건을 위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정책·행정 전문가이자 2020년 총선 참패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당시부터 여연의 쇄신을 주장한 박수영 의원을 원장으로 임명했다. 박 원장은 여연 개혁을 위해 집중회의와 토론회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년 총선 선거 승리를 위한 ‘빅데이터 시스템 도입’을 결정하고 완성형 모델로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2008년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 주도로 설립됐다. 민주정책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출범한 이 싱크탱크의 명칭은 2016년 민주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사실 당 대표가 원장으로 누구를 임명하느냐에 따라 당내 계파 갈등의 향배가 달라진 여의도연구원에 비해 민주연구원은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랬던 민주연구원의 위상이 확 달라진 것은 2019년 5월 대통령의 복심이자 ‘문재인의 남자’로 불린 양정철 원장이 취임하면서다. 취임하자마자 정부 고위 인사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 당시 여권의 주요 지방자치단체장과의 연이은 회동을 통해 민주연구원이 당정과 지자체를 아우르는 ‘정책적 가교’ 역할을 하는 토대를 닦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지난해 12월 취임한 정태호 원장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30% 안팎의 지지율로 맞서 있는 상황에서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 수립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민주연구원이 내세우는 양대 핵심 전략은 ‘세대 확장’과 ‘38대 민생회복 입법’이다. 정 원장은 “돈 봉투 의혹과 코인 투기 논란 등으로 정치혐오감이 높아진 2030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최근 청년정책 관리단인 ‘LAB 2030’을 출범시킨 것이 대표적인 세대 확장 전략”이라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희망을 잃은 청년을 위한 맞춤형 정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해완·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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