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임옥상 규탄한다면서... 작품 철거 못하게 막아섰다
서울시가 일본군 위안부 추모 공원인 ‘기억의 터’에 설치된 ‘민중미술가’ 임옥상(73)씨의 작품 2개를 철거를 예고한 4일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여성인권단체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철거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날 “임옥상을 규탄한다”면서도 “서울시의 임옥상 작품 철거는 반대한다”고 했다.
정의연과 기억의 터 설립추진위원회 등 회원 30여 명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서울 중구 예장동 기억의 터에 모여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려는 서울시 규탄한다’ ‘기억의 터 철거 중단’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억의 터 기습 철거 즉각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 참가자들은 약 50m 길이의 보라색 천으로 기억의 터를 외곽을 먼저 둘러쌌다. 이어 임씨의 작품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 등 두 점을 보라색 천으로 뒤덮었고, ‘대지의 눈’ 앞에 모여 집회를 이어갔다.
단상에 오른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기억의 터는 서울시의 것이 아니다”라며 “현 정부가 일본에 아첨하는 기조에 맞춰 (서울시가) 역사를 지우려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성추행 작가가 할머니들 이야기를 함께 기억하는 데 반성도 없이 함께했다는 것에 분노한다”면서도 “철거가 이렇게 시급한 일인지 납득할 수 없다. 임옥상을 핑계로 한 역사지우기일 뿐이며, 일본이 가장 지우고싶어하는 역사를 앞장서서 지우려는 것 아닌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기억의 터 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최영희 전 국회의원(민주당)은 “돈과 상관없이 해주겠다고 해서 임옥상을 결정하게 됐는데, 그런 사람인지 몰랐고 (이런) 날벼락을 맞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면서 “하지만 서울시의 무조건 철거는 반대한다”고 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임옥상을 규탄한다. (우리가) 일본군 성노예제와 지금도 싸우는 이유는 여성폭력, 성폭력이 만연한 현실에 살아가기 때문”이라면서 “서울시가 (임옥상 작품을) 기습철거 하려는 것은 (성폭력에 대한) 반성과 사과, 재발방지 등 아무런 대책없이 그저 지우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날 오전 입장을 내고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장소에 성추행 선고를 받은 임씨 작품을 방치하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시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는 “계획대로 기억의 터 내 임씨 작품인 ‘대지의 눈’을 철거하겠다”면서 “(정의연과 기억의 터 설립추진위원회는) 편향적인 여론몰이를 중단하고 작품 철거에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어 “시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65%가 임씨의 작품을 철거해야 한다고 답하고, 위원회가 주장하는 ‘조형품 내 작가 이름만 삭제하자’는 의견은 23.8%에 불과하다”며 “작가 이름만 가린다고 기획하고 만든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며, 정의기억연대와 위원회의 행동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했다.
서울시는 또 “기억의 터 자체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의미를 변질시킨 임씨의 조형물만 철거하는 것이며, 추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작품을 재설치하겠다”며 “기억의 터를 과거의 아픈 역사를 함께 치유하고 가슴 깊이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억의 터 인근 도로에는 서울시가 철거를 위해 준비한 포크레인 1대가 있었지만, 정의연 등 시위 참가자들이 집회를 진행하면서 철거 작업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경찰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50여명이 배치됐지만, 집회는 물리적 충돌은 없이 2시간여 만에 자신 해산하며 끝났다. 집회 현장에는 임씨의 작품 철거 현장을 중계방송 하기 위해 보수 유튜버 5~6명이 찾았는데, 한때 정의연 관계자들과 서로 고성을 지르며 충돌하기도 했다.
‘기억의 터’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16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당시 설립 추진 위원회가 시민 2만여 명의 성금을 모아 옛 일제 통감 관저 자리에 조성했다. 임씨가 공원을 총괄 기획하면서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 등 자신의 작품을 2개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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