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덤핑' 악몽 재현?…中 저가 공세에 배터리 업계 '발칵'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올해 중국 기업들의 배터리 생산용량이 자국 수요의 두 배를 넘길 것으로 전망됐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배터리 업체가 저가 물량을 해외에 쏟아내면 글로벌 태양광 산업을 잠식했던 덤핑 사태의 배터리 버전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원자재 시장 분석업체인 CRU그룹 데이터를 인용해 "중국 배터리 공장들의 생산 능력이 올해 1500기가와트시(GWh)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기업들의 계획 용량은 구체적으로 1448GWh로, 이는 전기자동차 2200만 대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양이다. 국내 배터리 수요 예측치인 636GWh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중국산 배터리는 지난해에도 과잉생산됐다. 작년 중국 기업들의 배터리 생산량은 545.9GWh였다. 전기차용 국내 수요(294.5GWh)와 고정형 에너지 저장용 국내 수요(84.3GWh), 해외 수출 물량(68.1GWh)을 다 합쳐도 99GWh 가량의 배터리가 남아돌았다.
FT는 "중국 업체들이 국가 보조금, 은행 대출 등 무제한적인 화력을 토대로 마구잡이식 배터리 공장 확장에 나서고 있다"며 "이는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관련 국내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전했다. CRU 분석에 따르면 현재 중국 배터리 공장들의 평균 가동률은 55%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 배터리 기업들의 경우 공장 가동률이 70% 이상이어야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과 대조된다는 게 컨설팅 기업 리오모션의 분석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3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자국 배터리 업계의 묻지마식 확장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향후 수요 급증을 전망한 중국 각 지방도시도 정부 보조금을 받고 배터리 생산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간 발표된 중국의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취합하면 배터리 과잉생산량은 2027년엔 중국 내 수요의 4배로 급증할 전망이다. 또 2030년이면 배터리 공급량이 중국의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용량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중국 외 배터리 업계는 "현재 양상이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분야에서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흐름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시장에서 중국산 저가 배터리의 물량 공세가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다. 글로벌 광산기업 리오틴토의 전직 임원은 "알루미늄 업계가 겪었던 사태와 매우 유사하다"며 "중국 기업들은 시장 선점 이상의 장악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르노가 지분을 투자한 프랑스 배터리 스타트업 버코(Verkor)의 올리비에 뒤푸르는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버코가 최근 유럽연합(EU) 관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레젠테이션에서 회사 측은 "2030년 기준 유럽에서는 500GWh의 배터리 공급 공백이 있을 전망이고, 이 공백은 중국의 1100GWh 과잉 생산량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한 고위 임원은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확장 계획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중국 외 다른 시장에 덤핑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의 패트릭 안드레아슨 전략 담당 부사장은 "유럽의 대용량 에너지저장 부분이 중국발 수출 공세에 특히 취약하다"며 "중국의 저가 배터리를 대량 수입하면 유럽의 지속가능성 로드맵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서방의 보호무역 움직임과 각종 인센티브는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들의 현지 진출을 자극하고 있다. 해외 현지 합작사 설립 등을 통해서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은 올해 2월 미국 자동차 제조사 포드와 미시간주 합작 법인 설립 계획을 밝혔다. 중국계 배터리 기업 엔비전 AESC는 인도 타타그룹의 영국 선덜랜드 공장에 대규모 물량을 납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배터리 과잉생산 이슈가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의 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정부는 불법 보조금을 문제 삼아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반(反)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중국 기업들이 동남아 지역에서 태양광 완제품을 제조하는 방식으로 '생산지 세탁'으로 대응하자 이들 기업의 우회 수출 혐의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배터리 수요 전망이 긍정적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중국이 석탄화력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력을 저장하는 데 필요한 배터리 수요가 과잉생산 우려를 잠재울 것이란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내 에너지저장용 배터리 수요가 2030년까지 70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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