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단식···황교안의 길 VS 김영삼의 길[여의도 앨리스]

김윤나영 기자 2023. 9. 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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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국회 단식농성장을 방문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로 단식 닷새째에 접어들었다. 정치인들이 단식투쟁을 막힌 정국의 돌파구로 삼은 적은 종종 있다. 그 중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의 단식은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은 실패로 끝났거나 비판받았다. 타이밍과 명분에서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이 대표의 단식을 역대 지도자들의 단식과 비교해봤다.

‘국민항쟁’ 선언했지만 ‘방탄단식’ 비판도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하면서 민주주의 파괴에 맞선 ‘국민항쟁’을 선포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파괴와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죄,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에 대한 반대 천명과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회의론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시점이다. 이 대표는 검찰 출석 일정을 조율하던 중에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제가 단식한다고 해서 검찰 수사는 전혀 지장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무기한 단식으로 검찰도 이 대표를 소환하기 부담스러운 처지가 됐다. 국민의힘이 “사법 회피·내분 차단·당권 사수용” ‘방탄 단식’이라고 공세를 펴는 이유다. 게다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내걸고 단식하기에는 시점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이 지난달 24일 방류를 시작한 지 일주일 넘게 지났기 때문이다. 개각 요구도 단식 명분으로 삼기엔 국민에게 절박하지 않은 사안이다.

‘국면전환용’ 비판받은 이정현의 단식

이 대표의 단식은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점에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농단 당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과 비교된다. 이 전 대표는 2016년 9월26일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자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7일간 단식 농성한 바 있다.

이 전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전 장관 해임건의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거부했기 때문에 단식투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 정 전 의장의 자진 사퇴도 국회법상 불가능한 요구였다. 국회의장의 사퇴는 국회 표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의 단식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농단’ 무마용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전 대표가 단식투쟁을 선언한 2016년 9월은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개입 의혹이 불거지던 때다. 원조 친박근혜계인 이 전 대표는 청와대 심기를 의식해 국정감사를 회피하기 위한 ‘정치 파업’을 벌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탄 논란 휩싸인 김성태의 단식

드루킹 특별검사제(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2018년 5월 진행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은 ‘방탄 논란’을 일으켰다. 김 전 대표는 드루킹 특검을 얻어내지 못하고 단식을 9일 만에 끝냈지만 ‘5월 임시국회 보이콧’을 통해 실리를 챙겨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유한국당 소속 염동열·홍문종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지연시켰고, 2018년 6·1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4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무산시켰다. 선거일 30일 전까지 의원직을 그만둬야 보궐선거가 열리지만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사직서를 처리하지 못하면서 재보궐선거 지역이 11곳에서 7곳으로 줄었다.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김 전 원내대표가 단식에 돌입한 이튿날 “한국당은 여야 합의도 없이 5월 방탄 국회를 소집했는데 한가롭게 비리 혐의로 구속을 코앞에 둔 한국당 소속 의원 두 명을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자유한국당과 TV조선 기자의 ‘드루킹’ 사무실 절도 사건에 김 전 원내대표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혹시라도 수사를 피하기 위한 무기한 단식이라면 국민적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우원식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도 “체포동의안 방탄용 꼼수”라고 비판했다. 염·홍 의원 체포동의안은 2018년 5월21일 부결됐다.

수사 당사자, 황교안의 단식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2019년 11월 20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철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공직선거법 개정 반대를 내세우며 8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야당에서도 “뜬금없는 단식”(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황 전 대표는 검찰 수사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이 대표와 유사한 처지였다. 황 전 대표는 2019년 11월 1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세월호 특별수사단을 출범시킨 지 9일 만에 단식을 단행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는 세월호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황 전 대표는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고 규정하기 위해 단식투쟁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황 전 대표는 삭발투쟁과 장외 집회도 이어갔지만 자유한국당은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패배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단식투쟁을 선언하면서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검찰 스토킹”으로 규정했다. 이 대표는 단식 농성 나흘째인 전날 국회 앞 농성장에서 “검찰 독재가 가장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손학규·이정미의 단식

야당 지도자들은 주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단식 농성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총재 시절인 1983년 5월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 자유 등을 내걸고 가택 연금 상태에서 23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분열된 야권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도입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한 끝에 이듬해 지방의회 선거 도입을 관철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4년 8월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촉구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 중단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을 열흘간 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018년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9일간 단식한 끝에 선거제 개편을 얻어냈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이 성공할지는 여론의 공감 정도에 달려 있다. 민주당 지지율이 반등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현재 민주당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일부터 3일간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후쿠시마 방류로 인해 해양·수산물 오염이 걱정되는지’를 물은 결과 ‘걱정된다’ 75%, ‘걱정되지 않는다’ 22%였다. 같은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4%, 더불어민주당 27%, 정의당 5% 순이었다.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5%포인트 하락해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단식투쟁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선제적으로 요청하면 당이 방탄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스스로 요청하면서 결자해지하지 않으면 단식의 순수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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