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났던 꽃·나무 사랑… 조선의 ‘식집사’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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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난을 그린 지 사십 년이 됐는데(現吾寫蘭四十年) 늘 의중을 끌어와서 (정을) 그림에 투영시켰다(每引意輸情)'.
호림박물관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분원에서 개최한 '조선양화(朝鮮養花) 꽃과 나무에 빠지다'는 조선 시대 기록·그림·도자기에서 보이는 정원을 가꾸던 문화, 꽃을 주제 삼아 펼쳤던 문예활동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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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식물 가꾸고 곁에두며
한가로운 삶 꿈꾼 생활상 보여줘
‘매·난·국·죽’ 백자·회화도 소개
도자 화분·꽃 새겨진 필통 눈길
‘지금 내가 난을 그린 지 사십 년이 됐는데(現吾寫蘭四十年) 늘 의중을 끌어와서 (정을) 그림에 투영시켰다(每引意輸情)’.
흥선대원군으로 잘 알려진 석파(石坡) 이하응(1820~1898)은 1887년 그린 ‘석란도’에서 이렇게 밝혔다. 평생 가장 즐겨 그리고 애정을 쏟은 대상이 화목(花木)이란 것이다. 호방하게 표현한 난 줄기와 생동감 있는 꽃에선 이하응의 예술적 자부심이 잔뜩 묻어난다. 당시 조선 선비들은 촛불을 이용해 난초 화분의 꽃과 잎의 그림자를 완상(玩賞·아름다움을 보고 즐김)했다고 하니, 꽃과 나무에 대한 사랑은 비단 이하응만의 독특한 취미는 아닌 셈이다.
조선 선비들의 꽃나무 사랑은 유별났다. ‘반려식물’ 기르는 건 예사고, 꽃향기에 파묻힐 수 있는 정원을 갖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다. 꽃나무 재배에 도움을 주는 화훼 실용서도 있었다. 조선 초 문신 강희안(1418~1465)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이 대표적이다. 출근하거나 부모님 안부를 묻는 때를 제외하면 꽃을 키우는 일에 몰두했던 강희안이 쓴 원예 서적이다. 성리학적 국가 이념이 지배하던 당시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을 두고 완물상지(玩物喪志·사물에 정신을 뺏겨 본뜻을 잃음)로 인식돼 꽃 사랑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없던 선비들은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을 넘어 자연의 이치를 탐구한다고 뜻을 부여하며 집에서 꽃이 그려진 그림을 걸고 와유(臥遊)하기도 했다.
호림박물관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분원에서 개최한 ‘조선양화(朝鮮養花) 꽃과 나무에 빠지다’는 조선 시대 기록·그림·도자기에서 보이는 정원을 가꾸던 문화, 꽃을 주제 삼아 펼쳤던 문예활동을 소개한다. 호림박물관과 함께 고미술 관련 국내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리움·간송 미술관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을 모셨다. 국보와 보물 각 한 점 등 총 11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는 세 가지 테마로 이뤄졌다. 조선 시대 정원을 주제로 한 ‘측(側) 꽃을 사랑한 조선’에선 왕족부터 사대부, 평민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가꾸고 그 속에서 한가로운 삶을 꿈꿨던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고려대 박물관에서 가져온 국보 ‘동궐도’ 모사본은 조선 시대 선진적인 원예문화를 보여준다. 조선 후기 문신 김조순(1765~1832)의 별장인 옥호정을 그린 ‘옥호정도(玉壺亭圖)’에선 온갖 식물들로 도심 속 자연을 누리며 힐링했던 사대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테마 ‘志 나를 키우는 꽃’에선 사군자로 불리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가 새겨진 백자들과 회화가 소개돼 있다. 마지막 테마인 ‘養 꽃을 키우는 나’에선 조선 후기 원예를 당당하게 취미로 드러낼 수 있게 된 사대부들이 소비했던 도자 화분, 꽃이 새겨진 필통과 연적으로 채워진 문방(文房) 인테리어 소품을 볼 수 있다.
전시에서 돋보이는 점은 공간 구성이다. 스타 디자이너 양태오가 맡아 조선 시대 사대부의 시선으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동선과 작품 배치에 변화를 줬다. 전시를 관람한 후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매화감상실은 양태오 디자이너가 얼음 등불을 비춰 감상했다는 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호림박물관이 꼽는 반드시 지나쳐선 안 되는 작품이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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