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에겐 본받을 ‘좋은 여자어른’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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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와 비누를 만드는 공방을 운영하는 '나리'는 코로나19가 한창 번지기 시작하던 때 갑자기 쓰러지고, 이전에 결핵을 앓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어디서 결핵이 옮았을까 생각하던 그는 어릴 적 자신을 종종 돌봐주던 '만조 아줌마'를 떠올린다.
"만조 아줌마는 나리를 그저 봐준 게 아니라 나리의 마음을 봐줬던 거예요. 자신의 마음을 내어 깊이 헤아린 겁니다. 나리 자신도 다른 아이에게 줄 힘을 그때 얻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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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딸 슬픔 보듬는 여성 그려
향초와 비누를 만드는 공방을 운영하는 ‘나리’는 코로나19가 한창 번지기 시작하던 때 갑자기 쓰러지고, 이전에 결핵을 앓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어디서 결핵이 옮았을까 생각하던 그는 어릴 적 자신을 종종 돌봐주던 ‘만조 아줌마’를 떠올린다. 부모가 운영하던 사과밭에 일하러 오던 만조 아줌마네 팀 일꾼들이 결핵 환자들이 모여 살던 ‘딴산마을’ 사람들이었다는 것까지. 나리는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만조 아줌마를 다시 찾아간다.
소설가 최은미가 6년 만에 낸 두 번째 장편소설 ‘마주’(창비)는 코로나19 유행이 거셌던 2020년을 배경으로 한다. 자녀 돌봄 부담을 오롯이 떠안아야 했던 여성들의 고통을 그린 단편 ‘여기 우리 마주’(2021·문학동네)의 서사를 확장했다. 지난달 28일 문화일보에서 만난 최은미 작가는 “단편에서 돌봄의 힘듦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소설은 그다음을 상상하고 조금 더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사의 확장 과정에서 등장한 인물이 ‘만조 아줌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리를 돌봐주던 아줌마, 자신처럼 덩치가 커질까 봐 항상 음식에 엄격했던 엄마와 달리 ‘찐덕하고 맛난 것들’을 손에 쥐여주던 그, 나리의 실수로 자신이 곤경에 처했음에도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던 사람이다. 작가는 “나에게도 이런 아줌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어른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어른 여성에겐 이제 어린이 단계를 지나 동료 시민으로 커나갈 10대 여자아이들에게 좋은 어른, 좋은 여성으로 남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좋은 어른으로 설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좋은 어른을 겪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조 아줌마를 그렸습니다.”
딸 은채를 키우는 나리는 은채 친구 서하의 엄마인 수미와 많은 일을 함께해왔다. 하지만 서하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수미에게 증오를 느끼고, 수미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해 거실 집기들을 깨부순 장면을 보게 된 날, 서하를 공방으로 데려와 문을 잠근 채 수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작가는 “가족 바깥에 있는, 부모가 아닌 제3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며 썼다”고 했다. “가족 바깥의 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습니다. 가족 내 문제를 가족끼리만 마주하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잖아요.”
나리는 수미를 향해 이렇게 속엣말을 한다. 서하를 보고 있는 어른이 너뿐이 아니라고.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믿어보라고.
나리는 ‘서하의 만조 아줌마’가 돼줄 수 있을까. 작가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만조 아줌마는 나리를 그저 봐준 게 아니라 나리의 마음을 봐줬던 거예요. 자신의 마음을 내어 깊이 헤아린 겁니다. 나리 자신도 다른 아이에게 줄 힘을 그때 얻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은 여전히 공방을 지키고 있는 나리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서하의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냈던 공간이다. “나리는 저 공방 문을 계속 열어놓고 있겠구나, 그 공방으로 여러 사람이 찾아오고 여러 말이 오가고, 이들의 일상이 조금은 더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겠구나, 하는 안심을 독자분들이 느낀다면 좋겠습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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