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유상증자…결국 자금 목적성 따라 주가 갈렸다 [투자360]
롯데케미칼 1.2조·SK이노 1.3조·한화오션 2조
증권가 “중장기 주가 향방, 목적에 크게 갈려”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올해 들어 조(兆) 단위 대규모 유상증자가 잇따르고 있다. 고금리로 회사채 등을 발행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카드로 여기며 적극 유증에 나서면서다.
대규모 유증에 대한 투자자들의 옥석 가리기에도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주주 가치 희석을 부르는 만큼 주주들의 원성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작용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회사의 미래 가치 제고를 위한 유증이라면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4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유증 절차를 최종적으로 완료한 기업은 총 222개에 이른다. 최근 한국예탁결제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증을 한 기업의 수(197개)와 금액(7조143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66.8% 줄었다.
다만, 올해 유증의 큰 특징은 조단위 자이언트 유증이 다수 눈에 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계획을 공시해 올해 2월 1조215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완료한 롯데케미칼을 시작으로 6월엔 CJ CGV, SK이노베이션이 각각 1조200억원, 1조3000억원 규모의 유증 계획을 공시했다. 가장 최근엔 지난달 23일 2조원 규모 유증을 공시한 한화오션이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올해 대규모 유증이 잦아진 이유로 고금리를 꼽는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689%, 10년물 금리는 3.778%로 4%에 근접했다. 여기에 신용등급 AA-인 기업이 발행한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4.447%, ‘투자적격’ 중 가장 낮은 BBB- 등급 기업 발행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무려 10.865%에 이르렀다.
이날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지난달 대기업집단(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기준)의 회사채 발행액은 1조352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동기(2조6105억원) 대비 48.2% 급감한 수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유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회사채와 달리 이자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부채의 증가 없이 자산과 자본을 함께 증가시킬 수 있는 장점이 큰 유증에 굵직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자이언트 유증을 단행했거나 계획을 밝힌 기업들의 주가는 공통적으로 단기 하락세를 면치 못한 모습이다. 전체 주식 수의 증가로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주당 가치가 떨어졌고, 유통 물량 증가에 따른 변동성 확대 등이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내리면서다.
유증 공시 후 1주일간 주가 등락률은 CJ CGV가 33.86%로 가장 컸던 가운데, SK이노베이션 -13.2%, 롯데케미칼 -8.86%가 뒤를 이었다. 한화오션의 경우 이례적으로 12.36%를 기록하며 상승한 듯했지만, 지난 1일 종가(3만5000원) 기준으론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다만, 유증이 무조건 주가엔 악재만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잘못된 경영활동 과정에서 악화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유증이라면 경영진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유증 이후 주가가 상승한 기업도 다수인데, 이들 기업은 자금의 활용 방안과 유증의 당위성 등을 시장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증 이후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대폭 오른 기업으로는 포스코퓨처엠이 있다. 지난 2020년 11월 2차전지 소재 부문 투자를 위해 1조2735억원 규모의 유증을 실시했고, 해당 시점 이후 지난 1일 종가까지 주가는 457.27% 올랐다.
증권가에선 올해 자이언트 유증을 단행한 4개 종목 주가의 향방 역시 크게 갈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당장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미래 먹거리 투자를 위한 목적의 유증인지가 중요 포인트란 지적이다.
우선 한화오션에 대해선 유증으로 모은 자금을 ▷해외 해양방산 생산거점 확보(9000억원) ▷친환경·자율주행 선박 기술 개발(6000억원) ▷해상풍력 토탈서비스(2000억원) 등에 대규모 투자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신한투자증권은 투자의견을 ‘트레이딩 매수(향후 6개월 수익률 -10~10%)’로 기존(매수) 대비 한 단계 낮췄지만, 목표주가는 기존 3만원에서 3만3000원으로 높였다. 중장기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 본 것이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선업 회복 국면에서 재무 구조 개선은 시간문제”라며 “조선업은 과거 경기 사이클 관점에서 신성장산업으로의 전환 시기이며 관련 투자는 신시장 개척의 의미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유증 금액의 70% 이상인 9514억원을 미래 에너지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쓸 계획인 SK이노베이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진다. 김도현 SK증권 연구원은 “관건은 수익성 개선과 투자효율성 확보”라며 “시장 우려가 해소되면서 주가 악화 분위기는 장기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롯데케미칼과 CJ CGV의 유증에 따른 주가 흐름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도 상당하다. 실제로 유증 공시 시점 후 지난 1일 종가까지 롯데케미칼, CJ CGV의 주가 등락률은 각각 -25.71%, -47.03%를 기록했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의 유증은 일진머리티얼즈(현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한 자금 확보보단 업황 부진 속에 겹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 등으로 영업 여건이 악화된 롯데건설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 높아진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꼬집었다.
CJ CGV 역시 유증으로 수혈한 자본을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자본 확충이 마무리될 경우 부채비율은 1045%에서 320%로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미래 사업 투자가 아닌 부채 절감에 유증 자금이 쓰이는 것은 회사 사정이 매우 좋지 못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일이란 점에서 주가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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