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방어선 이제야 돌파…장기전 우려 키우는 ‘우크라이나 대반격’
[주간경향] ‘대반격’이란 표현이 무색하다. 지난 6월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전선의 교착상태가 길어지는 가운데 전쟁은 우크라이나 영토를 넘어 확대되는 모양새다. 2014년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름반도와 흑해 일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점점 더 과감해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확전’을 우려해온 서방 동맹국 사이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당초 올봄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던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은 서방의 무기 지원이 늦어지면서 초여름쯤 개시됐다. 하지만 전선은 이후로도 수개월째 교착상태였다. 시기를 놓쳐버린 진격은 러시아가 6개월간 구축해와 요새화된 방어선을 좀처럼 뚫지 못하며 예상보다 부진한 상황이다.
로보티네 탈환했지만
지난 8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자포리자 전선에서 러시아가 점령 중이던 로보티네를 탈환한 것 정도가 눈에 띄는 성과다. 우크라이나군이 로보티네에서 더 나아가 자포리자주 최대 도시인 멜리토폴 탈환까지 성공한다면 크름반도 북부에서 동부 돈바스까지 이어지는 러시아 남부 점령지 회랑을 중간에서 끊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로보티네 탈환은 러시아군이 지뢰밭과 참호, ‘용의 이빨’로 불리는 대전차 방어벽 등으로 겹겹이 구축한 4~5겹의 방어선 중 이제 막 ‘1차 방어선’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위성사진을 분석해 우크라이나군이 로보티네에서 20㎞ 떨어진 요충지이자 멜리토폴 공략을 위한 핵심 교두보인 토크마크까지 닿으려면 최소 방어선 2개를 더 뚫어야 한다고 보도했다.
NYT는 “로보티네를 탈환하는 데 몇 주간 치열한 전투가 소요됐고, 우크라이나군은 6월 대반격 시작 후 불과 몇 마일만 전진했을 뿐”이라며 “이는 앞으로 전선이 더 어려울 것이란 징조”라고 전했다.
대반격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전력 손실도 컸다. 미국 정보기관에 따르면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군 사망자는 7만여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대반격 개시 후 몇 개월 만에 4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곧 다가올 계절 변화도 우크라이나군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라스푸티차’가 올가을 우크라이나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진흙의 계절’을 뜻하는 라스푸티차는 매년 초봄과 가을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가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이는 지난해 2월 러시아 전차의 진격으로부터 수도 키이우를 방어한 ‘1등 공신’이지만, 동시에 올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을 늦춘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훈련과 무기를 보강해 내년 봄 공세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서방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방어선을 공략할 수 있는 공중전력인 F-16 전투기가 내년에야 투입이 가능하고, 여기에 서방의 추가적인 무기 지원 및 훈련을 더해 내년 전선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서방의 지도자 및 정책 입안자들이 ‘장기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두고 씨름하고 있다”면서 “중대한 돌파구가 없는 한, 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모두 올해 ‘대반격’ 작전에서 성과를 내 러시아에 타격을 주고, 그 결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올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이제 그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전쟁이 소모전으로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해군분석센터의 러시아 전문가인 드미트리 고렌부르그는 “이 전쟁은 초기 몇 달 동안 전선이 활발히 이동한 뒤 정체되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전쟁과 비슷하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전쟁처럼 ‘동결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드론으로 러시아 타격 왜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드론 공격을 대폭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650㎞ 떨어진 러시아 공군기지에서 장거리 초음속 전략폭격기가 드론에 파괴되는가 하면, 수도 모스크바를 겨냥한 공격도 수일째 계속됐다.
우크라이나군이 장거리 미사일 등 타격 능력이 강한 무기보다 자체 개발한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이유는 이 공격에 서방이 지원한 무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방 동맹국들은 전쟁이 ‘러시아 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싸움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 나토가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지 말 것을 무기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어 왔다. 여기에 드론은 미사일보다 제조 비용이 싸고 대량 생산이 용이하며, 전쟁에 무감했던 러시아 시민들에게 이를 환기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산발적인 공격이 전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이 확전을 우려하는 서방에게 고성능 무기 지원을 꺼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국무부가 “미국은 러시아 본토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내며 거듭 공개 경고에 나서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 서방 국가들이 우리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 발언 사흘 뒤에도 러시아는 주요 도시 6곳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개전 이후 러시아 본토에 대한 최대 규모 공습이었다.
전선의 교착상태가 길어질수록 서방의 후원자들에게 의존해온 우크라이나로선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동맹국 내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이 나올 수 있고, 여기에 내년엔 나토의 주축인 미국 대선도 예정돼 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꺼리는, 영토 포기를 전제로 한 협상론과 종전 압박이 동맹국으로부터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최근 나토의 한 고위 간부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나토에 가입하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나토가 기존 입장에서 바뀐 것이 없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이 발언은 이미 나토 내에서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영토를 모두 회복할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론’을 받아들이고 타협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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