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상승, 아파트 시장의 5가지 지표[스페셜 리포트]
“서울은 이미 반등한 지 오래다”, “더 이상의 상승 여력은 없다”, “바닥을 찍고 회복기에 돌입할 것이다.”
올해도 부동산 시장, 그중 아파트 시장은 시끄럽다. 몇 달 사이에 “수억원씩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와 “저점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가 뒤섞이며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몇몇 숫자는 상승을 가리키고 다른 숫자는 하락을 가리킨다.
우선 올해 아파트 실거래가는 작년에 비해 올랐다. 특히 서울 아파트는 상반기에 10% 가까이 올랐다. 수도권 전체 실거래가지수는 상반기 동안 6.44% 상승했다. 올해 지방에서 아파트 값이 가장 많이 오른 세종시의 실거래가지수는 8.43% 상승했고 울산(3.06%), 대전(2.87%), 부산(1.98%), 광주(1.76%) 등도 지수가 올랐다.
각 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도 상승세가 뚜렷하다. 8월 전국 시가 총액 상위 50위권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1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KB부동산에 따르면 8월 KB선도아파트 50지수는 전월 대비 1.22% 올랐다. 이는 2021년 10월(1.42%)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아파트 가격은 다양한 변수의 결합이다. 하나의 지표를 두고도 하락론자와 상승론자의 의견이 엇갈린다. 수많은 지표 중 부동산 시장을 읽을 수 있는 핵심 숫자는 무엇일까.
1. 이자보다 무서운 심리
최근 난리가 난 금융 상품이 하나 있다. ‘50년 만기 주택 담보 대출(주담대)’이다. 8월 한 달 동안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5대 은행에서만 2조원 넘게 급증했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지난해 5월 금융당국이 청년층과 신혼부부를 한정으로 월 대출 상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내놨던 상품이다. 당시 50년 만기에 대해 은행권은 수요가 클 것이라고 보지 않았지만, 주택금융공사의 50년만기 상품이 기대보다 수요가 있자 금융권도 동참했다.
하지만 대출이 급증하자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50년 만기 주담대를 가계 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불안 심리를 촉발하며 투자자들을 은행으로 향하게 했다. 7월 말 8657억원이던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8월 24일 기준 2조8867억원으로 폭증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부동산 투심'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50년 만기 주담대가 빠르게 소진된 사례가 부동산 시장을 읽는 법을 정확히 보여준다”며 “부동산을 전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심리인데 지난 몇 년간 ‘집을 사는 사람이 위너’라는 사회 인식이 번졌고 여전히 집값이 폭락할 것이란 심리가 확산되지 않았고 오히려 모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은 포모(FOMO : 뒤처짐에 대한 공포)에 약하다. 희망과 욕망이 걸린 아파트는 더더욱 심리에 좌우된다. 금리·세금·규제 등 부동산 상승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아파트 투자 심리는 죽지 않았다.
실제 투자 심리도 개선됐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지난해 12월부터 오르기 시작해 올해 8월 1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00을 넘으면 집값 상승론이 하락론보다 우세함을 뜻하는데 7월에 102, 8월에 107을 기록했다. 물론 하락론자들은 주택가격전망지수가 미래 예측에 유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실제 시장에서는 여전히 집을 사겠다는 사람보다 팔겠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매수 수요는 25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3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9.3이었다. 지난 2월 4주(66.3) 저점을 찍은 뒤 25주 연속 상승한 것이다. 매수와 매도의 우위를 보여주는 매매수급지수는 수요와 공급 비율을 지수화한 것이다. 기준선(100)보다 수치가 낮을수록 시장에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다. 서울 5개 권역 가운데 도심권(종로·중·용산구)과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은 각각 92.8과 91.7로 이미 지수 90을 웃돌고 있다.
심리는 곧 시장에 반영된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수급 지수는 매매지수를 선행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2006년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급등했고 6~8개월의 시차를 두고 매매 가격이 큰폭으로 상승했고 주택 시장의 암흑기였던 2012년에도 매매수급지수는 매우 저조했고 2013년부터 반등했는데 매매 가격 역시 시간을 두고 플러스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배 애널리스트 과거 15년 사이클을 봤을 때 금리와 M₂ 통화량, 미분양 물량은 아파트 가격과 상관관계가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정책과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2008 년 금융 위기 이후 아파트 가격은 조정을 겪었고 기준금리는 5%대에서 2%대로 급격히 하락했지만 아파트 가격 반등은 지연됐다.
2012~2014년 아파트 가격은 큰 조정을 겪었는데 오히려 금리는 낮아졌고 미분양도 금융 위기 이후 대비로 50% 가까이 줄어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배 애널리스트는 “이 당시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당시 집값은 하락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고 연일 가계 부채 이슈, ‘깡통 전세’ 등 부정적 뉴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도 가격이 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나서 ‘영끌’을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출 금리가 상승했는데 주담대는 오히려 빠르게 불어났다. 이 총재는 “지금 젊은 세대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해 다시 저금리로 갈 것이란 생각에 집을 샀다면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며 “집을 빌려 샀다면 금융비용이 지난 10년처럼 낮아질 가능성이 낮지 않으니 이를 감안해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 거래량 느는데 매물은 적체 왜?
최근 부동산이 ‘바닥을 찍었다’는 주장의 대부분은 매매 거래량에 대한 내용이다. 거래량은 부동산 시장의 피가 얼마나 잘 돌고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실거래가가 올라도 거래량이 뒷받침돼야 시장 전반이 상승할 수 있고 실거래가가 떨어져도 거래량이 활발하면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서울 아파트 바닥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7월 서울시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2만136건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거래량인 1만1958건보다 약 68.3% 급증한 규모다. 특히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4월부터 7월까지 넉 달째 매월 3000건을 훌쩍 넘겼다. 서울 부동산이 최저점이던 지난해 10월 559건까지 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표현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호황기 시절에 비교하면 거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간을 5년으로 넓혀도 서울 아파트의 평균 월 거래량은 5000∼6000건이었다.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2023년 상반기 누적 약 20만3000건이었는데 이는 지난 10년(2013~2022년) 평균인 31만5000건보다 35% 낮다.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연초 대비 증가한 것은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서 급매물이 소진됐고 1·3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가 완화된 영향이 컸다. 다만 전문가들은 금리 등 현재 부동산 상황을 고려할 때 매매 거래량이 현재보다 유의미하게 늘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연구원은 “부동산 가격이 반등한다고 해도 거래량이 뒷받침돼야 대세 상승을 이어 갈 수 있는데 금리와 경기 상황을 보면 하반기에 거래량이 예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거래량의 발목을 잡는 요소는 또 있다. 매물이 쌓여 가는 속도다. 부동산 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8월 2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7만 건을 돌파했다. 2022년 8월 이후 7만 건을 웃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 물건은 올 1월 최저 4만9198건에서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2월에는 5만 건대, 3월 중순부터 6만 건을 넘어섰고 8월 말 7만118건을 기록했다. 쌓인 매물은 7만 건인데 아파트 매매 계약이 체결되는 것은 한 달에 약 3000건이라는 얘기다. 거래량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매물이 빠른 속도로 쌓이는 것이다. 시장 거래가 평년보다 줄어들자 올해 7월까지 휴·폐업한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1만 곳 가까이 늘었다.
1·3 부동산 대책 등 정책 효과와 급매물 소진 효과로 거래량이 늘었지만 이후 호가가 오르면서 매도자와 매수자 간 가격 괴리가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배 애널리스트는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연초 대비 증가한 것은 아파트 가격 하락, 부동산 규제 완화, 보금자리론 등 대출 우대 정책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금리 등 현재의 부동산 상황을 고려할 때 매매 거래량이 현재 수준보다 유의미하게 늘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3. ‘역전세냐 갭 투자냐’ 전세가율의 두 얼굴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만 중요한 지표가 하나 있다. 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이다. 전셋값이 매매가에 가까울수록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가능해진다. 이 같은 투자 수요가 늘면 통상 매매가도 오른다. 반면 전세가율이 떨어지면 집주인들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세가율은 매매 시장에서 선행 지표로 활용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51.00%를 기록했다. 지난 4월 50.80%까지 떨어진 이후 서서히 오르면서 51%대를 회복했지만 매매 가격 대비 전셋값의 상승 폭이 느리다. 특히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전문가들은 전세가율의 유의미한 회복이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는 약세론자들이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4. 역대 최악 선행 시장,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까?
주택 공급의 선행 지표인 인허가·착공·분양은 상황이 좋지 않다. 당장 2년여 뒤 입주 아파트 규모를 결정하는 착공과 분양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공사비가 증가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이자가 오르면서 사업성이 악화하자 시행사가 신규 주택 사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주택 인허가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8.2% 줄었고 주택 착공 실적은 50.9% 감소했다. 전년의 절반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2~3년 뒤 공급 부족에 따른 주택·전셋값 급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분양 시장은 12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분양 물량은 2010년 하반기 이후 약 12년 만에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R114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전국에 총 3만3706가구가 일반 분양됐다. 이는 작년 하반기 분양 물량인 9만1041가구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또 2010년 하반기 이후 약 12년 만에 가장 적은 물량이다.
부동산R114가 예상한 2023년 분양 물량은 30만 가구다. 이는 남은 5개월 동안 20만 가구 이상을 분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분양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이 같은 물량을 달성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분양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서울은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총 15개 단지가 분양된 가운데 강북구 미아동 엘리프미아역 2단지 한 곳을 제외한 14개 단지는 모두 청약이 마감됐다. 서울 아파트 청약 경쟁률도 2분기 평균 49.5 대 1에서 3분기 들어서는 103.1 대 1로 치솟았다.
하지만 지방 상황은 정반대다. 지방에서 분양된 64개 단지 중 42곳이 모집 가구 수를 채우지 못했다. 전국적으로는 총 123개 분양 단지 중 54%에 해당하는 67개 단지가 미달됐다.
건설사들이 할인 분양과 다양한 판촉 활동을 진행하면서 미분양 물량은 감소했다. 올해 초 7만5000가구까지 불어나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미분양 물량은 3월부터 4개월 연속 줄어들고 있다. 다만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후 미분양이 9000가구를 넘어섰다. 2021년 4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백광제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대출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부동산 부양책으로 초기 미분양 물량이 서서히 감소하고 있지만 준공 후 미분양 증가세는 수도권에서도 확산하고 있다”며 “주택 가격 방향성에 대한 상식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5. 소득은 줄고 빚은 늘었다
소득은 줄고 빚은 늘었다. 대출로 부동산을 떠받드는 가계의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1분기 기준 서울의 중간 소득 가구가 지역의 중간 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소득의 약 44%를 주담대 원리금 상환에 지불해야 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으로도 금융 당국의 규제 기준인 40%를 넘어선다. 소득의 절반을 빚을 갚는 데 쓰면 경제 성장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높은 원리금 상환 부담이 민간 소비 증가의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빚을 갚느라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빚으로 부동산을 떠받들고 있는 한국 경제에 가계 부채는 늘 뇌관으로 꼽힌다. 한국의 가계 부채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지난 1분기 101.5%로 집계됐다. 가계 부채가 GDP보다 많은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4곳 정도에 불과하다. 은행권의 가계 대출 잔액은 1068조원에 이른다.
한국은행도 가계 부채를 주시하고 있다. 이 총재는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가계 부채가 지금 수준보다 더 늘어나면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그 수준은 넘었다고 본다”며 “채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자율이 지금처럼 조금만 올라가도 쓸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고 그것이 성장률을 낮추는 영향으로 크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성장과 금융 안정에 제약이 되지 않는 가계 부채 비율 수준은 80% 이하다. 한국은 부채 비율을 21%포인트 이상 줄여야 하는 것이다.
부채는 늘어가는데 소득은 줄었다.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9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해 0.8% 감소했다. 특히 물가를 감안한 실질 소득은 3.9% 감소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주담대 금리는 2개월 연속 상승하며 매월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취급된 주담대 금리는 연 4.28%로 전월보다 0.02%포인트 올랐다. 주담대 금리는 2개월 연속 상승했다.
다만 금리로만 시장을 예측할 수는 없다. 정부는 예전 같은 저금리 시대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금리 인상이 언제 끝날지’에 가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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