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호랑이 담배 먹던 옛이야기가 ‘상엿소리 랩’으로
“황을석씨네 할아버지가 젊을 때라는디, 눈에 푸른 불을 켠 호랭이가 외양간 앞에 떠억허니….”
지난달 18일 저녁 충남 부여읍 부여문화원의 소강당. 이용재 비암1리(배미실) 부녀회장이 마을을 품고 있는 감봉산의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송아지를 잡아먹으러 온 호랑이는 네 다리 안에 송아지를 품고 대항하는 어미 소와 쇠붙이를 두드리며 쫓는 주민들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쳤다고 한다. 100여년 전부터 비암리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지금도 산에 호랑이굴이 있다.
이날 외산면 비암1리, 은산면 나령1리를 소개하는 ‘부여스타일 마을만들기 첫걸음’ 전시회가 열렸다. 부여군지역공동체활성화재단의 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마을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만든 행사이다. 전시회는 동네 위치, 주민 삶, 역사 등 마을 현황을 알리는 전시물 공간과 두 마을 주민들의 목공예·종이접기 체험장 등으로 꾸며졌다. 또 두 마을 주민들은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아 ‘옛날이야기를 하면 몸땡이가 따가워’ 책을 펴내고, 무대에 올라 마당극을 하며 몸이 기억하는 가락들을 재연했다.
비암1리 주민들은 마당극 ‘어딜 가유? 여기가 배미실인디’를 선보였다. 배미실은 배 모양 바위가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첫 마당은 이종괄(76)씨가 ‘해원소리’(상엿소리)로 열었다. 주민들은 해원소리 사이사이에 고향을 떠난 이들의 사연을 대사로 만들어 ‘충청스타일 랩’을 했다.
“어히여 어~여. 어디 가유? 어르신들 편히 모신다고 아파트로 이사 갔슈. 어딜 또 가유? 순미네 아부지가 저세상으로 갔슈. 짝사랑하는 내 손 한번 못 잡아 보고. 손 한번 잡아주지 그랬어. 어허야 데야 어야 어야.”
나령1리 주민들의 마을 이야기도 이어졌다. 나령1리는 마을이 나팔 모양 같아서 ‘첫 나팔이 부는 마을’로 불린다. 염영호(82)씨는 영특한 소 이야기를 했다. “소에게도 신발을 신겼쥬. ‘이쪽 바~알’ 하면 소가 알아듣고 발을 들어 올렸어유. 네 발에 쇠신을 신기고 고삐를 죄면 지가 알아서 달구지를 끌고 대문 앞으로 갔대니깨유.” 이 마을에는 반딧불이가 하도 흔해서 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도 많다. 오창경 작가는 영호씨, 용완씨네 두 부부가 반딧불이들과 함께 보낸 신혼 첫날밤 사연을 담은 동화 ‘밥은 봄같이 먹고 국은 여름같이 먹고…’를 썼다.
어려운 시절 먹거리는 주민들 이야기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김분예(86)씨는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설익은 보리를 맷돌에 갈아서 지은 갈밥을 먹어보지 않았으면 사는 게 뭔지 말도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입안에서 보리 꺼럭이 널러 댕겼어. 요즘은 콩 졸인 걸 콩자반이라고 하대유? 짭짤하게 간한 생선 대가리에 콩과 물 한동이 넣고 뼈가 흐물거리고 멀국이 자박자박해질 때까지 고아서 간장으로 간한 게 콩자반이유.”
부여스타일 마을만들기는 2021년 규암면 신리에서 펼친 ‘마을이 박물관’ 시범사업에서 시작됐다. 규암면 신리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나루터 이야기 등 주민들 삶의 이야기를 발굴해 고유한 자원으로 승화시키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다. 정윤기 부여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은 “신리는 백마강(금강)을 건너던 나루터로, 부여군민은 누구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마을에 마지막 뱃사공도 거주해 성공적인 결실을 보았다”고 말했다.
부여군은 특색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부여군지역공동체활성화재단에 전담하는 부여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를 꾸리고 자체 예산을 세웠다. 이번에 마을만들기 사업에 선정된 비암1리와 나령1리에서 여러달 동안 주민들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조사했다.
장우석 부여군마을만들기센터장은 “노인 한분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마을 하나가 사라지면 박물관 한곳이 없어진다고 한다. 마을을 대표하는 열쇳말을 찾으려고 불에 그슬린 스웨터를 왜 버리지 못하는지, 수저통에 식구 수보다 많은 숟가락을 꽂아두는 사연 등 주민들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놓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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