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국립대학법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최인호 충남대 교수회장 2023. 9.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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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충남대 교수회장

대선 운동 기간 '지방대학시대'를 공약했던 현 정부는 약속한 것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 신호탄은 이주호 장관의 임명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이었던 그는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설립준칙주의, 반값등록금정책, 사업비 위주의 재정지원방식 등 각종 정책 및 제도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되거나 고착화됐다.

특히 그는 두 차례의 국립대 선진화방안을 통해 국립대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법인화를 시도하다 실패하자 반강제적으로 다수의 국립대를 통폐합했으며, 재정지원사업 선정 평가에서의 불이익을 앞세워 총장직선제가 한동안 폐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지역대학의 중추인 국립대와 상당한 악연이 있는 그가 지방대학시대를 선언한 현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명백한 아이러니다.

이주호 장관은 '규제완화와 경쟁촉진, 지방대학의 육성,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대학설립·운영규정의 개정,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글로컬대학 30 사업, 서울 소재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의 증원,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1학년 전과 허용, 무학과 제도, 책임시수 자율화 등을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해 대학정책을 급격하게 재편하고 있다. 최근에는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해 공익에 반하는 학교법인의 퇴출을 허용하는 사립대학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각종의 정책들은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지역대학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큰 폭의 예산 증액 없이 소모적인 경쟁만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대학설립·운영규정의 개정과 서울 소재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의 증원은 서울 소재 대학이 그 혜택을 독점하게 될 것이며,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가 시행되면 역량과 준비가 부족한 광역지자체에 행·재정적 권한이 위임되어 지역대학들은 지자체장에게 예속되고 지역정치에 휘둘릴 것이다.

강제적인 구조조정 정책인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국립대 간 통폐합을 촉진해 국립대의 비중을 낮춰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선정되지 못한 다수의 지역대학들을 고사시킬 것이다. 글로컬대학 30 사업과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의해 뒷받침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은 기초학문과 학문의 다양성을 파괴할 것이다.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지역대학의 위기를 방치하게 된다면 거의 모든 지역대학들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의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것이므로 조속한 시일 내에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올바른 방향은 기획재정부의 교육예산 통제와 사업비 위주의 재정지원을 통한 교육부의 대학 통제라는 대학정책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대학의 자율성 보장과 재정지원의 대폭 확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균형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지역대학의 중추인 국립대의 집중적인 육성과 사립대의 공공성 강화라는 시대적 요청을 반영해야 한다.

학계·연구계·관계에서의 그동안의 논의 덕분에 국립대학법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국립대학법은 국립대에 관한 포괄적인 성격의 특별법으로서 자율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학내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한편, 안정적이고 충분한 예산의 총액지원과 교원확보를 통해 국립대를 집중 육성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은 내국세 수입과 연동된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도입해 장기간 지속된 반값등록금정책과 입학자원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재정난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재정의 확보를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대학 전체 예산을 OECD 주요국 평균인 1.1% 수준에서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국립대는 물론 사립대의 재정난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근본적인 대학정책 전환의 출발점이 될 국립대학법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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