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피프티 나비효과? 정부까지 나섰다…K팝은 ‘탬퍼링 주의보’[SS초점]
[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가요계에 ‘탬퍼링 주의보’가 불고 있다.
‘탬퍼링’은 계약 만료 전 운동선수와 사전에 접촉해 부적절한 이적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주로 스포츠계에서 사용됐지만 최근 그룹 피프티 피프티 사태로 국내 가요계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가요계는 기획사에 불리한 표준전속계약서 허점을 노려 아티스트를 빼가는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하며 대중문화예술인 전속표준계약서 개정 촉구 목소리를 높였다.
‘탬퍼링 논란’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 진입한 ‘큐피드’로 해외서 큰 인기를 얻은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지난 6월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어트랙트는 프로듀서 안성일이 대표로 있는 외주 업체 더 기버스가 탬퍼링을 시도했다고 주장했고, 이들이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몰래 ‘큐피드’의 저작권을 사는 행위 등을 했다며 안성일 대표 외 3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피프티 피프티 멤버 4명이 수익항목 누락 등 정산자료 충실 제공 의무 위반, 신체적·정신적 건강관리 의무 위반, 연예 활동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 보유 및 지원 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은 지난달 28일 계약 해지가 필요한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기각됐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피프티 피프티의 음반·음원 판매나 연예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제작 등에 소요된 비용을 초과해 피프티 피프티가 지급받았어야 할 정산금(수익금)이 있다고 확인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소속사 측이 멤버들에 대한 건강 관리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피프티 피프티 측이 즉시 항고하면서 분쟁은 장기전으로 흐를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K팝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한 유튜버는 과거 SBS가 그룹 오메가엑스의 전 소속사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하며 이들이 새 소속사로 이적하는 것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오메가엑스의소속사 아이피큐는 해당 의혹을 반박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관련 영상에 대한 방송금지 가처분 및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등으로 유튜버를 형사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오메가엑스 멤버들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열고, 전 소속사 스파이어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상습 폭언과 폭행, 성추행 등을 폭로한 바 있다. 이후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 지난 7월 현 소속사 아이피큐와 계약 체결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오메가엑스 역시 피프티 피프티 사례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고, 전 소속사도 스파이어엔터테인먼트도 민사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예고하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SBS 탐사 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편파 방송 논란에 휩싸이면서 도리어 K팝 업계의 탬퍼링 논란이 심각하다는 공분이 확산됐다. 이에 한국매니지먼트협회와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 연예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K팝 제작자와 아티스트가 성장할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업계에선 불공정 노예계약을 막는 조항들이 주축을 이룬 표준계약서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표준계약서는 2007년 SM엔터테인먼트와 동방신기 멤버들 사이의 분쟁으로 처음 만들어졌는데, 지금과는 동떨어진 조항들이 많다는 것이다.
K팝의 글로벌화로 개별 연예인의 영향력이 회사를 뛰어넘으면서 이들이 예전처럼 약자가 아닌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업계와 달리 아이돌 산업은 선투자 후수익의 구조이기 때문에 탬퍼링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회사의 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무조건 소속사가 ‘갑’이고 가수는 ‘을’이란 시선이 이번 피프티 피프티 사태와 법원의 결정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아이돌 그룹이 소속사를 상대로 제기하는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체로 법원은 기각보다는 인용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 기각 결정으로 연예인의 권리침해에 대한 시선도 상당부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까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6월부터 진행 중인 대중문화산업실태조사를 연장하거나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피프티 피프티 사태를 언급하며 “공정성이란 잣대에 주목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에는 유인촌 문체특보가 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국연예제작자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피프티 피프티 사태부터 연예계 현황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앞서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연예계 탬퍼링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한 뒤 “중소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선 연예인 한 명 한 명이 귀중한 자산인데 기술 탈취가 버젓이 이뤄진다”며 문체부에 적극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탬퍼링 행위와 관련해 법정 제재가 필요하다며 ‘피프티 피프티 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하 의원은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대중문화예술발전법 개정안을 문화체육관광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다면 업계 자체에 대한 규제가 커지지 않도록 K팝 영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원 소속사를 두고 불법적인 이적을 시도한 이들에게는 법적인 제재를 강화하면서 미성년자가 많은 아이돌 멤버와 연습생의 권리를 함께 보호해야 할 방안을 동시에 마련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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