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기자 노종면이 말하는 이동관의 추억
YTN은 이명박(MB) 정부 언론 장악의 1호 타깃이었다. 2008년 5월 MB 언론특보를 지낸 구본홍씨가 YTN 사장으로 내정된다. YTN 노조를 중심으로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이 벌어진다. 사장 출근 저지 투쟁과 생방송 피켓 시위가 이어졌고, 노조위원장이었던 노종면 기자는 그 중심에 섰다. 그해 10월 조합원 6명 해고를 포함해 33명이 징계를 받았다. 그에겐 MB 정권 해직 언론인 1호라는 수식어가 생긴다. 15년 후, '언론 장악'의 증언자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섰다.
공교롭게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처음 마찰을 빚은 언론사도 YTN이었다.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내정되기 두 달 전 벌어진 사건이다. 2008년 3월5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금품수수 인사 명단’을 공개한다. 이명박 정부 고위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적 파장이 컸다. 그날 기자회견은 오후 4시로 예정돼 있었는데,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한 시간 일찍 ‘사전 브리핑’이란 걸 연다. 오후 3시, 단상에 선 이동관 대변인은 “자체 조사결과 거론된 분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말했다. 명단이 발표되기도 전에 해명이 먼저 나온 셈이다. 이틀 뒤인 3월7일 YTN 〈돌발영상〉은 이 브리핑의 전말을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콘셉트로 풍자한다.
예정대로라면 그날 네 차례 재방이 남아 있었지만 모두 불방되었다. 홈페이지는 물론 포털사이트에서도 영상이 사라졌다. YTN 노조와 기자협회가 반발하자 당시 홍상표 보도국장은 이동관 대변인의 항의 전화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방송 기자들이 취재 편의를 위해 요청한 것이었고, 브리핑 이외의 과정은 보도하지 않기로 암묵적 약속을 했는데 YTN이 이를 어겼다는 취지였다. 이 대변인은 영상 속에서 “제가 이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해주셔야 한다”라고 말한다. 온라인에선 “코미디가 따로 없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결국 YTN은 사과문과 함께 영상을 다시 올렸다.
노종면 기자 스스로도 “나중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 말하는 이 사건은 어쩌면 전조 현상이었다. 날것 그대로를 기록하는 〈돌발영상〉 포맷 자체가 본질적으로 권력과 불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4월 〈돌발영상〉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정치인들의 B컷이 다 버려진다는 문제의식이 기획 의도였다. “발언은 고작 10초 나가는데 30분 넘게 NG가 날 때도 있다. 그때만 해도 정치인들은 자신을 찍는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기자들도 용인해주는 분위기였다.” 〈돌발영상〉이 등장한 이후, 정치인은 언론의 ‘적당한 포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실언은 물론이고 휘갈겨 쓴 메모, 옆자리 동료 의원과의 대화까지 보도 대상이 되었다.
항의가 빗발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없었다. 직접 연락을 받은 건 한 번이었는데 한 국회의원의 하소연에 가까웠다고 노종면 기자는 기억했다. 오히려 YTN 내부, 특히 정치부에서 불만이 있었다. 취재하기 곤란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상 삭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발표도 안 된 명단을 어디서 입수했는지, 누구를 조사했고 무엇을 근거로 문제없다고 판단했는지 따져 물어야 했다. 이걸 당시 기자단에서 못 물었고 지금까지도 그 경위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정치부 근처에는 가보지 못한 덕분에 〈돌발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는 그는 ‘출입처 시스템 안에서 이동관 대변인의 언론 대응이 비호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YTN 기자에게 3일간 춘추관 출입금지 징계를 내렸다.
노 기자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청와대 대변인이 본인에 대한 보도에 항의하기 위해 언론사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다. “보도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면 문제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라면 해명 자료를 내거나 정정 보도를 청구하는 등 공식 대응이었어야 한다. 이동관 대변인의 방식은 언론사 내 ‘우군’이나 정부 내 조력자들 말고는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교묘하고 대담했다.”
흔히 언론 장악이라 하면 무자비한 탄압이나 위협부터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조용히 이뤄졌다. MB 정부의 보도 개입 정황이 여러 문건으로 드러난 뒤에야 노종면 기자도 심증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발영상〉 담당 기자와 PD들은 징계를 받고, 이를 주도한 배석규 사장 직무대행은 사장으로 취임한다. 영상을 삭제한 홍상표 보도국장은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홍보수석이 되었다. 이동관 초대 홍보수석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YTN은 ‘5공 이후 최대 언론인 탄압’이라 불리는 사태를 맞게 된다. 2008년 10월7일 직원 33명에게 회사는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노종면 기자가 해고 통지서를 받은 것도 이때다. 당시 YTN 앵커와 기자들은 이 사태를 ‘언론 자유 사망선고’로 규정하고 검은색 옷을 입고 뉴스를 진행했다.
언론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
노종면 기자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YTN 사태가 100일 넘게 장기화되자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진다. 2008년 9월18일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중심에 이동관 대변인이 서 있다는 소문이 있다”라는 질의에 이동관 대변인은 “언론 장악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고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달 뒤인 10월31일 YTN 사태에 대한 청와대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YTN이 정상화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직후 YTN 노조는 구본홍 사장의 신임 보도국장 선임에 반발하며 사장실 점거 농성을 벌였고, 노종면 기자는 업무방해 혐의로 2009년 3월 구속된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반대하는 이유다. ‘언론 장악’이 그때 ‘시나리오’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히려 15년 전보다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달간 공영방송 이사 5명이 해임되었다. 이미 YTN이 가진 공기업 지분 매각이 결정되었다. 8월16일 이동관 후보자는 YTN 방송 사고에 3억원 규모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노종면 기자는 결국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본다. “2008년에도 싸울 줄 몰랐다. 처음엔 ‘우리가 반대할 수 있겠나’ ‘그래도 캠프 출신은 너무하지 않나’ 하는 반응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대를 안 하면 너무 창피한 일이 돼버리더라.” 사장실을 점거할 생각도 없었는데 용역 직원 수십 명이 출입을 막자 뚫으려다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일화를 그는 이어 말했다.
올 3월 YTN을 퇴사한 그는 후배 언론인들에게 당부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훼손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것이다. 보도를 하면 탄압이 들어올 거다. 경영진을 교체하고, 보도국을 바꾸고 보도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립점이 안 생길 수 없다. 경영진이 뭘 바꾸려 하든 기자는 기사를 써야 하고, PD는 제작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노종면 기자는 SNS 아이디로 ‘노돌발’을 즐겨 쓴다. 〈돌발영상〉은 언론인 노종면의 정체성이다. 불방을 거듭하던 〈돌발영상〉은 2013년 끝내 폐지되었다가 2018년 12월 부활했다. 노 기자가 앵커로 복귀한 후였다. 지난 대선에서도 〈돌발영상〉은 편파성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국민의힘은 〈돌발영상〉의 비판 대상이 당시 범여권이 6회인 반면 범야권이 20회였다며 YTN에 항의 방문까지 했다. “10대 0으로 하든 5대 5로 하든 어떤 것을 보도할지는 언론사가 판단하는 것이고 공정성에 대한 판단은 정치인이 아닌 독자가 내린다. 미안한 얘기지만 〈돌발영상〉은 소재가 잡혀야 만들 수 있다. 문제가 없으면 〈돌발영상〉도 없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의무라고 보는 언론인 노종면의 대답이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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