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으로 가늠해보는 ‘이동관 방통위 시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시대가 열렸다. 그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대변인(2008년 2월~2009년 8월)과 홍보수석(2009년 8월~2010년 7월)을 연이어 지냈다.
“선전·선동을 능수능란하게 했던 공산당의 신문과 방송을 언론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관지라고 한다.” 방송통신위원장(방통위원장)으로 지명돼 인사청문준비단에 첫 출근한 8월1일 이동관 후보자가 소감을 밝혔다.
언론계가 반발했다. 전날 각종 언론 단체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동관이 갈 곳은 방통위가 아니라 감옥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동관 위원장의 이름 앞에는 ‘언론 장악 논란’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따라붙는다. 그는 “언론은 장악될 수도 없고, 또 장악해서도 안 된다”라고 반박한다.
그런데도 쉽사리 잦아들지 않는다. 문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을 동원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공작을 벌였다. 언론인도 그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가 연루된 정황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지휘한 수사 덕에 이 기록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정원 내부 문건만이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유했던 영포빌딩(이후 자신이 설립한 청계재단에 소유권을 넘김)에서도 서류 상자가 발견됐다. 당시 언론계 살풍경이 담겼다. 15년 만에 다시 펼쳐지는 ‘이동관 시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료(史料)다.
‘언론 장악 의혹’에 대해 이동관 위원장은 일관되게 부인한다. 8월18일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은 해당 문건에 관여하지도 보고받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혹은 정당한 행위였다고 했다. 판단은 독자 몫이다. 문건을 날것 그대로 싣는다. 분량 관계상 문건 중 KBS·MBC·YTN 등 각 언론사에 해당하는 한 건씩을 뽑았다.
〈그림 1-1〉과 〈그림 1-2〉에서는 이동관표 ‘당근과 채찍’이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VIP(대통령) 전화 격려 대상 언론인’을 선정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박보균 당시 〈중앙일보〉 편집인 등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2009년 8월24일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실 작성 ‘대통령 서면 보고서’에는 보고자로 이동관 대변인이 쓰여 있다. ‘제5차’와 같은 단어가 명시됐다. 이미 수차례 이뤄졌다는 뜻이다. ‘VIP 전화 격려 필요 대상 언론인’에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을 명시하며 사유를 이렇게 밝혔다. “보도 협조 요청에 적극 호응.” 예시로 꼽힌 기사는 ‘용산 철거민들 “망루 농성 사전 연습했다”’ 등이다.
격려하거나 조치하거나
문제 보도는 ‘조치’했다. 〈그림 1-2〉를 보자. 2009년 9월7일 12시30분 홍보수석실 문건에는 MBN의 한 앵커 멘트를 ‘순화’시켰다고 쓰여 있다. MBN은 같은 날 10시 “우리 정부의 재해 대응체제의 총체적 부실의 한 단면을 드러냈습니다”라는 앵커 멘트를 내보냈다. 정부 책임을 꼬집었다. 11시에는 “정부와 군, 지자체 모두 눈을 닫았습니다”라며 톤이 바뀌었다.
2010년 5월31일 16시30분 홍보수석실 문건에는 YTN과 MBN ‘문제 내용’을 지적했다. 전날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 관한 외신의 평가를 종합한 기사였다. 9시에 AFP·AP 등 외신의 부정적 반응을 보도했는데, “10시 뉴스 이후부터 해당 기사 비보도”로 조치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현재 YTN 해당 보도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제목만 나온다. 링크를 누르면 ‘죄송합니다,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뜬다. MBN 해당 보도는 글은 남아 있지만 영상은 사라진 채 까만 화면만 보인다.
8월18일 인사청문회에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문건을 가리키며 “밥 먹듯이 방송에 개입했다는 게 나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동관 후보자는 문건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정도 협조 요청하는 것은 사실은 기본 직무다. 책에도 나와 있다. 스핀닥터의 역할 중 하나다”라고 주장했다. 인사청문회 사회를 맡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거들었다. “대통령께서 언론사 사장하고 통화하면 안 되나?” 두산백과에 따르면, 스핀닥터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건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사람, 국민의 생각이나 여론을 정책으로 구체화함은 물론 정부 수반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역할까지 하는 정치 전문가 또는 홍보 전문가’를 뜻한다.
〈그림 2〉 〈그림 3〉은 국정원 문건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실과 대변인실이 작성한 문건이 아니다. 국정원 사찰을 당한 이들이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했고,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하고 받아낸 자료다. 1000쪽이 넘는다. 이 중에는 문건 상단에 날짜와 함께 ‘홍보수석실 요청사항’이라는 표시가 된 기록도 있다. 배포 난에 ‘홍보수석’이라고 쓰여 있다.
〈그림 2〉는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작성된 문건이다. 제목은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일자는 ‘10.1.13’이다. 지방선거를 다섯 달 앞두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방송사 내부 문건이 아니다. 국정원은 “공정보도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계도활동 강화 필요”라고 남겼다. “방송사 경영진과 협조, 좌편향 제작진 배제 및 자체 모니터링 강화” “건전매체 및 보수단체들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최근 경찰·방통심의위에서 (MBC의) 선거기획단 인적 구성을 조사하자 〈PD수첩〉을 통한 폭로 협박 등 정부의 ‘선거 개입’ 시비 제기도 우려”라는 구절도 눈에 띈다.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다가올 6월 지방선거 보도를 어떤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는지 MBC에 물어봤다가, 내부 반발을 겪었다는 의미다. 그것을 ‘폭로 협박’이라고 기재했다. 마지막 장에 ‘※배포:민정수석, 홍보수석, 기획관리비서관’이라고 쓰여 있다. 당시 민정수석은 권재진, 홍보수석은 이동관, 기획관리비서관은 정인철이다.
‘배포:홍보수석’의 의미는?
〈그림 3〉은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 다음 날 작성됐다. 이명박 정부는 ‘심판론’이 거세게 작동한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16곳 중 6곳만 이겼다. 하지만 국정원의 방송사 인사 개입에는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면밀한 인사검증을 통해 부적격자 퇴출 필요”라며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를 기준으로 삼았다. 근거는 ‘노무현 서거 특집’ ‘봉하마을 그 후 1년’ ‘4대강에선 무슨 일이?’와 같은 제작물이 쓰여 있다. 석 장짜리 이 문건 또한 첫 장에 ‘5.28 홍보수석실 요청사항’ 마지막 장에 ‘※배포:홍보수석’이라고 적혀 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8월18일 인사청문회에서 해당 문건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동관 후보자는 부인했다. “제가 만약에 이런 관여를 했다면, 그 엄혹한 적폐청산 수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좌우간 저는 보고받거나 지시하거나 한 일이 없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이 추가로 물었다. “황○○ 행정관 기억하죠? 국정원에서 파견돼서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홍보수석실에서는 국정원 파견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처음으로 파견했다. 저도 청와대에서 근무를 했지만 국정원에서 파견관을 받기 위해서는 수석이 동의를 안 하고 사인을 안 하면 안 된다.” 그러자 이 후보자는 그때는 정말 황 행정관을 몰랐다고 대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윤영찬 의원은 황 행정관의 검찰 진술도 공개했다. 그는 ‘홍보수석실 내 유일한 국정원 파견관이어서 홍보수석실 내 여타 비서관실과 국정원의 업무 연락을 맡았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당시 이동관 수석의 직속 김 아무개 보좌관에게 황 행정관이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동관 후보자는 “저는 그런 문서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라고 답했다.
이후 이동관 후보자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기관(국정원)을 모욕하는 얘기 같아서, 이 말은 좀 제가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 보고서를 처음에 한두 번 가져오길래 제가 갖고 오지 말라고 그랬다. 참고가 되지 않는 내용들뿐이었기 때문에.”
문건을 둘러싼 공방이 인사청문회 내내 오갔지만, 평가는 여야가 명확히 나뉘었다. 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과방위원)들은 “이동관씨는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 언론사에 전례 없는 흑역사를 쓴 장본인”이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8월24일 자체 제작한 ‘부적격 청문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전달하려고 했다. 대통령실은 거부했다.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은 “민주당 보고서는 카더라식 뉴스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일방적으로 담은 ‘지라시’ 수준의 단독 민주당 의견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사기를 치지 마라”고 반박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6월13일, 현재의 언론 지형을 바로잡기 위해 이동관 위원장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이 위원장이 하마평에 오르던 설왕설래가 오간 때였다. 여당 소속 이 의원이 밝힌, 이동관이 방통위원장에 적임인 이유는 이렇다. “(방통위는)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상식적인 사람이 가서는 오히려 어렵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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