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왜 '무빙' 대본을 쓴다고 그래서…잠도 안 왔죠" [인터뷰+]
내놓는 작품마다 히트시킨, 우리나라 웹툰 시장의 태동을 이끈 1세대 작가도 "긴장돼 잠이 안 온다"고 했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무빙'이 국내뿐 아니라 미국 Hulu에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중 공개 첫 주 시청 시간 기준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에 등극하며 해외에서도 인기라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야 "주변에서만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대중적인 반응이 좋구나 싶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인기 웹툰 작가 강풀이 첫 드라마 대본 도전작인 '무빙'을 내놓고 한 말이었다.
강풀 작가는 '순정만화', '아파트',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이웃사람' 등 영화로도 제작돼 관심을 모았던 영화의 원작 웹툰을 그렸다. 웹툰이라는 소재가 생소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그리기 시작해 '무빙' 드라마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까지도 쉬지 않고 그렸다. 강풀 작가는 이전까지 자신의 원작이 영화화됐던 것과 달리 이번엔 직접 각본을 썼을 뿐 아니라 캐스팅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더욱 깊숙하게 관여했다.
"강풀 영화의 가장 큰 적은 원작이다"는 말이 한 때 영화계에서 나왔을 정도로 강풀 작가의 웹툰은 강렬한 스토리로 유명했고,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팬들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외면받았다. 그런데도 강풀 작가는 자기 작품이 영상화됐을 때 각색에 관여하지 않는 원작자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직접 '무빙' 각본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기획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다.
"원래 각본을 다른 분이 쓰고 계셨어요. 4, 5회까지 대본을 받았고,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냈죠. '더 천천히 가야 한다'고요. 그 과정에서 제작진이 '직접 써보라'고 제안해주셨고, 저는 저를 못 믿는 성격이기도 해서 거꾸로 '제가 쓴 걸 보고 판단해 달라'고 해서 처음 써보게 됐어요. '이렇게 할 건데 괜찮냐?', '16회로 기획됐던데, 20회로 해주면 쓰겠다' 이런 얘기들이 오갔고, 20회로 해주신다고 해서 쓰게 됐어요."
"'무빙'의 목표는 오직 재미"
'무빙'은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던 이웃들이 알고 보니 초능력자였다는 콘셉트에서 시작돼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한다. 수줍은 많던 남학생과 학교폭력으로 전학을 왔던 여학생, 그리고 이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반장까지 알고 보니 모두 초능력자였고, 이들의 부모들 역시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초능력자들을 이용해 혼란을 일으키고, 개인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에 맞서 이들이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무빙'의 주요 줄거리다.
이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게 아니다. 작품의 메시지나 등장인물은 원작과 드라마가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듯 다르다. 극 중 배우 차태현이 연기한 전계도는 전기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번개맨'이자 버스 운전기사로 등장하지만, 원작에는 없던 캐릭터였다. 엄청난 신체 재생 능력의 소유자 장주원 역시 원작에서는 서사가 소개되지 않았던 캐릭터였음에도, 드라마에서는 그의 젊은 시절과 로맨스까지 진득하게 그려진다. 이 모든 각색의 의도에 대해 강풀 작가는 "재미"라고 밝혔다.
"제가 메시지를 던지려 그린 웹툰은 '26년' 하나뿐이었어요. 그 후 만화를 그릴 때나, 각본을 쓸 때나 항상 저의 마음은 '재미'였어요. 의미보다 중요한 게 재미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재미가 없다면 의미도 없지 않을까요? 아무도 보지 않는 의미니까요. 독자가 시청자로 바뀌었지만, 저의 목표는 동일했어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나만 재밌으면 어떡하나' 싶었죠. 만화는 혼자 작업하고, 혼자 망하면 그만이지만 이건 그게 아니니까요. 정말 많은 사람과 공동작업을 했어요. '나는 정말 재밌는데,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하면 어떡하나' 이게 가장 큰 걱정이었어요."
'무빙'은 조인성과 한효주, 류승룡, 차태현, 류승범 등 신뢰감을 주는 배우들의 멀티 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얼굴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들보다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 등 신예들이 극 초반을 이끄는 모험을 선택했다. 기획 단계에서 "시간대별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하이틴 로맨스를 초반에 배치한 건 강풀 작가의 고집이었다.
"다른 작품들이었다면 시간 순서대로 갔을 거 같아요.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해놓고, 앞부분엔 신인들을 넣는다고 하니까. 그런데 제 고집에 (박인제) 감독님도 동의하셨고, 제작진도 알아주셨어요. 지금의 구조가 아니라면 미스터리한 부분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 먼저 보여주고, 과거로 돌아가 합쳐지길 바랐어요. 그런 부분들을 신인 배우분들이 정말 잘해주셨어요. 그들을 보면서 '오, 됐는데' 싶었죠. 사실 그분들도 20대 중반인데, 현장에 가면 항상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니 저도 10대 학생처럼 대하게 됐어요. 너무 예뻐 주겠어요."
원작을 본 사람 중엔 스타 캐스팅으로 각 캐릭터의 전사를 보여주기 위해 이에 대한 내용과 비중이 커진 게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이에 대해 강풀 작가는 "순서가 틀렸다"면서 "각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많이 줬고, 이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야 이야기도 재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각각의 인물에 대한 기획이 먼저 이뤄진 후 캐스팅 작업이 진행된 것이라 설명했다.
인간의 도구화…안기부와 남북 갈등
'메시지'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고 했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사의 아픔을 떠올릴 수 있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무빙'에서도 부모 세대 초능력자들이 안기부 비밀 요원으로 도구처럼 이용됐고, 남북 갈등을 조장하며 개인적인 안위를 유지하려는 악당이 등장한다. 이런 강풀 작가의 성향에 대해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저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정치가 우리의 삶이랑 떨어뜨려 볼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제가 이 나라에 살고 있고, 경험하는 것들을 작품으로 그리는 데 이걸 애써 배제해서 가는 게 더 비현실적인 거 같아요. 우리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국가고요. 그래서 이걸 떼 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어찌 보면 정치는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한 거 같아요. 대학 다닐 때 정치가 잘못되면 등록금부터 올라갔잖아요."
"난 이야기를 쓰는 작가"
수년 동안 꾸준히 웹툰 작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왔고, 이제 드라마 작가로도 영역을 넓혔다. 쉼 없이 창작 활동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는 원동력을 묻자 강풀 작가는 "직업이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직업이니 그냥 하는 거예요. 예전엔 '아, 나 작가인데' 이랬는데, 저는 작가 의식보다 더 센 게 직업 의식 같더라고요.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 하기 싫다고 그만두면, 그건 직업이 아니잖아요. 저는 작가고, 이게 생계 수단이고, 이걸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해요. 직업이라는 점, 그 부분이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그런 직업 의식을 확실히 갖고 나니 안 할 수 없더라고요."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이 언제까지 재미를 느낄지 모르겠다"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저는 줄거리를 쓰는 사람이 아닌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제가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된 거 같은 느낌이에요. 어릴 때부터 '태백산맥' 같은 10권짜리 이상 장편 소설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대중은 이제 더 이상 이런 서사에 관심이 없어진 거 같아요. 모든 플랫폼에서 밀도가 높고, 짧고 강렬한 콘텐츠를 추구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서 서사라는 영역을 지키고 싶어요. '무빙'을 할 때도 '느리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깊게 파면 길게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게 요즘과는 다른 이야기가 되고, 심지어 단점일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도 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런 주장을 하다 언젠가 시대에 뒤처질 거 같긴 하지만요.(웃음)"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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