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90% 급등했는데 가상자산거래소 실적 부진 이유는
고객 위탁 자산도 감소세…해외거래소 등으로 이동 추정
바이낸스 국내 진출 난항 속 원화 거래소 '1강 1중 3약' 고착화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민선희 기자 = 올해 상반기 주요 코인 가격 상승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각종 호재로 개별 코인 가격이 올라도 장기 상승 기대가 크지 않아 거래량 증가가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코인별 가격 상승폭이 차별화되면서 새로운 투자 수요를 이끌기에는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전반적인 시장 침체에다가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의 국내 시장 진출 지연으로 '1강 1중 3약'의 가상자산거래소 구도 역시 굳어지는 양상이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급등 불구 거래소 실적 부진
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 상반기 90%가량 급등했다.
국내 거래소인 빗썸의 가상자산 공정가치 평가에 따르면 1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말 기준 2천114만9천원에서 올해 6월 말 4천12만5천원으로 89.7% 상승했다.
비트코인에서 '하드포크'(분리)된 비트코인캐시(BCH)와 비트코인골드(BTG)의 개당 가격은 같은 기간 12만5천100원과 1만4천950원에서 39만1천200원과 2만700원으로 212.7%와 38.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코인) 대표주자이자 시가총액 기준 두 번째인 이더리움의 개당 가격은 지난해 말 기준 153만4천원에서 올해 6월 말 246만2천원으로 60.5% 올랐다.
리플의 개당 가격은 437원에서 619원으로 41.6%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통상 가상화폐 가격 상승기에는 차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거래가 활발해진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 매매 수수료가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거래소들의 실적도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가상화폐 '불장'(상승장)이었던 2021년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와 2위인 빗썸의 영업이익은 각각 3조2천714억원과 7천821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주요 가상화폐 가격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국내 거래소들은 지난해에 이어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두나무의 상반기 매출(영업수익은)과 영업이익은 4천915억원과 2천985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7천850억원과 5천660억원 대비 37.4%와 47.3% 감소했다.
빗썸의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2천47억원에서 올해 827억원으로 59.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천229억원에서 128억원으로 89.6% 줄었다.
5대 원화거래소 중 한 곳인 코인원은 올해 상반기 8억7천780만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나머지 원화거래소인 코빗과 고팍스 지난해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 상반기에도 별다른 개선 요인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승세 지속 확신 어렵고 코인별 차별화…거래량 수반 안돼"
업계에서는 거래량 부진 이유로 우선 2021년과 달리 코인 상승세 지속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목하고 있다.
특정 코인이 호재를 만나 가격이 급등해도 장기 상승 기대가 크지 않다 보니 투자자들이 섣불리 코인 거래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안전자산으로의 쏠림, 리플 발행사인 리플랩스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증권성 소송 결과,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가능성 등 개별 호재가 전해질 때마다 비트코인이나 리플 등 특정 코인 또는 전체 코인 시장이 상승세를 나타냈지만, 단기에 그쳤다.
국내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코인 가격이 앞으로 계속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있어야 투자자들이 시장에 들어오는데 그런 만큼의 힘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가격이 오르거나 내려도 매매에 나서지 않고 지켜보는 투자자들이 많으면서 거래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반기 비트코인 가격이 오른 데 비해 알트코인의 상승세가 이에 못 미치면서 전체 거래량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예전 상승장 때는 비트코인이 오르면 알트코인도 탄력을 받곤 했는데 그런 동조화 현상이 최근에는 좀 덜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이 대표적 가상화폐기는 하지만 실제 거래소에 상장된 수백여개 코인 중 하나에 불과한 만큼, 다른 알트코인의 가격 상승세가 뒷받침돼 거래량이 늘어야만 거래소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코인 가격이 작년 4분기 하락 후 올해 1분기 상승세를 나타냈지만 2분기 다시 횡보한 점도 거래량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인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비트코인 등 고객 위탁 자산 줄어…해외거래소 이동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를 떠나 해외 거래소로 투자 무대를 이동하거나 아예 코인 투자에서 손을 떼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6월 말 기준 업비트에 고객이 위탁한 가상자산의 평가액은 20조6천800억원 규모로, 지난해 말(13조5천억원) 대비 53.2% 증가했다.
그러나 고객이 맡긴 비트코인 수량은 같은 기간 12만974개에서 11만9천202개로 1.47% 줄었고, 이더리움은 102만7천404개에서 98만7천170개로 3.92% 감소했다.
빗썸 역시 마찬가지다.
고객이 맡긴 비트코인 수량은 지난해 말 3만5천446개에서 올해 6월 말 3만3천662개로 5.04%, 이더리움 수량은 33만9천61개에서 28만3천815개로 17.3% 감소했다.
수많은 알트코인 중 위탁 수량이 늘어난 코인도 많지만 대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만 보면 감소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고객이 위탁한 코인 수량이 줄었다는 것은 다른 거래소로 옮겨갔거나 코인을 현금화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른 거래소의 관계자는 "시장이 좋지 않아 코인을 현금화해 보유하고 있거나, 현물거래만 가능한 국내 거래소 대신 고위험·고수익의 파생상품 거래가 가능한 해외 거래소로 옮겨갔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메기 효과' 기대했던 바이낸스 한국 진출 7개월째 '심사 중'
전반적인 시장 활력이 떨어진 가운데 국내 원화 가상자산 업계는 '1강 1중 3약'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지난 2일 코인마켓캡 기준 업비트의 24시간 거래량은 1조1천840억원으로, 빗썸(3천589억원)의 3.3배였다.
나머지 코인원(395억원), 코빗(41억원), 고팍스(33억원) 등은 거래량 자체가 미미한 수준이다.
고객이 맡긴 비트코인 수량을 비교해봐도 6월 말 기준 업비트가 11만9천202개로 빗썸(3만3천662개)의 3.5배, 코빗(7천535개)의 15.8배였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던 고팍스를 통해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 구도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이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바이낸스는 지난 2020년 계열사 바이낸스코리아를 설립해 한국 시장 진출을 도모했지만 금융당국의 규제 등으로 그해 말 문을 닫았다.
바이낸스는 지난 2월 고팍스와 투자계약을 체결, 고팍스 운영사 스트리미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한국 시장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문제는 고팍스가 지난 3월 등기임원 변경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아직 심사를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FIU는 통상 변경신고 접수 후 45일 이내 신고 수리 여부를 통지하지만 재차 서류 보완을 요청하면서 심사는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바이낸스가 최근 미국·유럽 등 주요국에서 자금세탁 등 문제로 각종 잡음에 시달리고 있어 FIU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자금세탁 방지 규제 위반, 대 러시아 금융제재 위반, 증권 관련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 바이낸스는 국내 기업에 스트리미 지분을 일부 넘기고, 주요 주주로 남아 고팍스 경영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FIU 심사가 길어지면서, 고팍스의 '고파이' 대금 상환도 늦어지고 있다.
고팍스는 지난해 11월 미국 가상자산 대출업체인 제네시스 트레이딩 서비스 중단 여파로 자체 예치 서비스 '고파이' 상품의 출금을 중단했다.
이후 바이낸스의 투자금으로 지난 2월 고파이 대금 25% 정도를 상환했으며, 지난달 24일 잔여 예치 수량의 약 37%를 추가상환했지만, 정상화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팍스 운영 정상화가 지연되고, 새로운 원화 거래소 등장은 요원한 상황인 만큼 당분간 국내 가상자산 시장 재편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pdhis959@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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