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없이 일하는 7080 전문직 불퇴족들... “일하는 보람 못 놔요”
2018년부터 매년 최고치 경신 중
“내 은퇴는 내가 정해...체력 한계 올 때가 은퇴할 때”
기업에서도 퇴직자 재고용 확대
지난 29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의 한 약국에서 만난 김 모(80) 씨가 몰려드는 손님을 능숙하게 응대하고 있었다. 1976년부터 47년째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에게 언제까지 일할 계획이냐고 묻자 근육이 잡힌 팔뚝을 보여줬다. 김 씨는 “아직 헬스도 할 만큼 건강하다”면서 “앞으로 (약국 운영을) 5년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회가 정한 정년 60세를 훌쩍 넘어 70~80대에도 은퇴하지 않고 활발하게 일을 하는 전문직 ‘불퇴족(은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 씨처럼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고령층은 은퇴 연령 이후에도 계속 일하는 사람이 동년배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들은 정년에 구애 받지 않는 여건에 속해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 때문에 현업에 머물러 있다고 입을 모았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을 뜻하는 고용률은 36%로 2018년부터 매년 최고치를 경신했다.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336만5000명으로 최근 5년 간 연평균 9%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연령대의 취업자 수가 0.9% 증가하는 데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8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해 37만6000명으로 5년 새 연평균 16.5%나 늘었다.
고용연구원은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고령층 상당수가 노후 소득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부는 자발적으로 은퇴하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65세~79세 관리자·전문가 취업자 수는 5월 기준 182명으로 10년 전(2013년) 대비 2배 증가했다. 같은 연령대의 전체 취업자가 평균 1.7배 는 것보다 증가 폭이 크다.
서울에서 세무사로 일하고 있는 이 모(72) 씨는 “정년이 65세라고 해도 남은 노년기가 20년인데 집에만 있기엔 상당히 길다”며 “아직 내 일이 있으니 이 나이에도 매일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해야 하는 일이라 여전히 활발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어 일상에 활력이 돈다”며 “한번 맺은 인연으로 사람들이 일을 믿고 맡길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 서울에서 50년 간 이비인후과를 운영했던 서모(85) 씨는 “여든이 넘어서까지 진료를 하도록 동기부여가 된 것은 일에 대한 보람 때문이다”라며 “동네에서 나를 꾸준히 찾아주는 환자들과 취약계층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는 환자들이 눈에 밟혀 은퇴를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스로 신체적인 한계를 느낄 때 비로소 퇴직을 고려한다고 했다. 서씨는 “여든이 넘어가니 하루종일 의원에 앉아 진료를 보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의원을) 접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무사 이씨도 “세무 관련 법이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전문직으로서 내가 지식을 더이상 업데이트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만둘 것”이라면서 “70대 초반은 아직 은퇴를 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 기업도 퇴직자 재고용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퇴직자의 노하우가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대구은행은 2019년부터 퇴직한 베테랑 은행원들을 재고용하는 ‘기업금융 영업 전문가(PRM)’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재직 중인 PRM은 총 71명으로 이들이 2019년부터 현재까지 따낸 대출금액은 총 2조3000억원에 달한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지점장으로 퇴직하는 사람들은 이미 뛰어난 영업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 사람들을 재고용하면 우량 기업들을 놓치지 않고 고객으로 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2019년부터 공장 생산직 퇴직자를 대상으로 ‘시니어 촉탁제(숙련자 재고용 제도)’를 운영한다. 이 제도로 60세 정년퇴직인 직원들이 61세까지 일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매년 2000명 이상의 정년퇴직자가 발생하는데 거의 100% 시니어 촉탁제를 희망한다”며 “직원들은 더 일할 수 있어 좋고 회사에서는 고숙련 퇴직자를 줄어든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어 앞으로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KT도 분기별로 정년퇴직 예정자 중 10%를 재임용하는 ‘시니어 컨설턴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최장 고용기간은 2년으로 재직 시 직무 전문성, 업무 성과, 인사평가 등을 고려해 선발한다. KT 관계자는 “네트워크 엔지니어분들은 현장 관리와 정비 등 네트워크 운용에 노하우가 있으신 분들이다”라며 “재고용을 하면 이 분들의 업무공백이 생기지 않아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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