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쓱크랩북] '우주의 기운'이 SSG를 떠난 그 후… 잔치는 끝났다, 외면하면 진짜 끝이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2년 SSG는 ‘우주의 기운’이 함께 하는 팀이었다. 그리고 그 ‘우주의 기운’을 불러 들일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선수들은 경기 종반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뒤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그 ‘기(氣)’에 상대 팀들이 질려 떠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이기면 이길수록 기는 강해졌다. 2022년은 누가 뭐래도 SSG의 해였다.
SSG는 2022년 득실점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피타고리안 승률에서 0.573으로 리그 2위였다. 리그 1위 LG(.653)와 제법 큰 차이가 났다. 그러나 실제 승률은 0.629로 피타고리안 승률보다 훨씬 더 높았다. 1~2점차 승부, 그리고 진짜 그 팀의 기초 체력으로 버텨야 해 어느 팀이 이길지 종잡기가 어려운 연장 승부에서 대단히 강한 모습을 보인 덕이 컸다. 그런 장점으로 시즌 막판 LG의 대추격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SSG는 지난해 박빙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2점차 이내 승부가 무려 63번이나 됐다. 전체 경기의 43.8%였다. 즉, SSG는 상당수 경기에서 막판까지 ‘해볼 만한 팀’이었다. 그런데 이 63번의 경기에서 45승(.714)을 쓸어 담았다. “해볼 만하긴 한데 경기가 끝나면 져 있더라”는 상대 팀의 푸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연장 승부에서도 10승4패4무(.714)로 역시 7할 승률을 넘겼다. 강팀이 이긴 게 아니었다. 이겨서 강팀이었다. SSG는 그런 팀이었다.
1점차 경기 승률 등의 지표는 결국 팀의 시즌 전체 승률에 수렴하게 되어 있다. 이를 고려하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이런 승률은 팀이 가진 저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약간의 운이 따랐다’는 지표로 해석할 수 있다. 시즌 요소요소에도 그랬다. 개막 10연승 기적의 시작이 된 NC와 개막 시리즈처럼 상대 팀 핵심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깨알 같은 운이 따랐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실력에 운이 더해져야 가능하다”는 기존 명제가 다시 입증됐다.
이런 우주의 기운은 올 시즌 중반까지도 SSG를 따라다니는 듯 보였다. 지난해만한 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접전에서 강했다. 타선이 터지지 않아도 마운드가 어떻게든 리드를 지키고, 마운드가 조금 불안한 날에는 홈런으로 상대를 두들기는 야구가 나왔다. 상대 주자는 이상하게 지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만약 이 운이 팀을 떠난다면, 과연 팀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느냐’였다.
실제 SSG의 올 시즌 잔루율은 리그에서 가장 높았다. 마무리 서진용이 이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선수다. 하지만 이 또한 시즌 평균으로 회귀하는 과정이 있다. 즉, 잔루 처리 비율이 계속해서 이렇게 높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점이 증가할 것이라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계산이 가능했다. 타선의 운은 부상자들이 속출하면서 점차 사그라져 갔다. 여전히 접전에 강하기는 하지만, 팀 전력이 떨어지면서 아예 박살이 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경기에는 운이 개입하기 어렵다.
SSG의 올해 피타고리안 승률은 0.469에 불과하다. 득점(504점)보다 실점(536점)이 더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상황에서도 5할 이상의 실제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건 SSG에 여전히 한동안 ‘우주의 기운’이 함께 했음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서는 그런 운도 없다. 팀이 가진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고, 결과가 나빠지면서 이제는 선수단이 자신들의 힘을 믿지 못하는 양상이 읽힌다. 누가 봐도 초조해 보인다. 3일 인천 KIA전에서는 역전을 당했는데, 그 다음 6타자가 한 명도 출루 못하고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이게 지금 SSG의 현실이다.
SSG는 8월 이후 10승16패에 머물고 있다. 이 기간 팀 평균자책점은 5.36으로 리그 9위다. 팀 OPS(출루율+장타율)는 0.681로 리그 8위에 머물고 있다. 투‧타 지표에서 모두 리그 하위권이다. ‘우주의 기운’까지 사라졌으니 팀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다. 그나마 외국인 투수와 김광현이 나올 때 1~2경기씩 잡아 연패가 아주 길어지지는 않았지만, 연승도 길지 않다. 흐름은 처지고, 선수들도 지친다. 새로운 얼굴은 잘 보이지 않거나 벤치에 있거나 2군에 있다.
SSG는 6월 6일부터 8일까지 광주에서 열린 KIA와 3연전에서 모두 1점차 승리를 거뒀다. KIA 내부에서는 "진이 빠지는 패배"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9월 1일부터 3일까지 인천 KIA 시리즈는 달랐다. 마운드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동시에 타선도 침묵하며 세 판을 내리 졌다. 운이 개입하기 어려운 경기력의 차이였다. 물론 KIA의 전력이 당시보다 강해진 것도 있겠지만, 불과 2~3달 사이 추락한 SSG를 상징하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9년 이상의 추락이 기다리고 있다. 산술적으로 보면 그렇다. 당시 SK는 2위 두산에 큰 경기차로 앞서고 있다가 결국 뒤집히고 플레이오프로 내려앉았다. 역사적인 레이스의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SK도 이렇게 허약하지는 않았다. 타선이 극심한 부진에 시달려서 그렇지 선발과 필승조는 굳건했다. 8월 이후 한없이 추락한 것 같지만 그래도 승률 5할 정도(.488)는 했던 팀이다. 지금 SSG와 비교하기는 실례일 수 있다.
지금 SSG는 당시 그 초라했던 SK보다도 나을 게 없다. 선발은 들쭉날쭉하다. 4~5선발 경기에서 이긴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타선은 힘이 없다. 8월 15일 이후 5회까지 뒤진 7경기에서 SSG는 예외 없이 모조리 졌다. 그냥 시작부터 못 치면 끝까지 못 친다. 불펜은 1~2점차 리드가 불안하다. 8월 15일 이후 SSG는 무려 6번이나 역전패했다. 리그에서 가장 많다. 5회까지 앞선 7경기에서 4승을 건지는 데 그쳤다.
3일 부랴부랴 코칭스태프 개편을 했지만 이 또한 한숨을 자아낸다. 주축 선수들이 시즌 내내 제 기량을 찾지 못한 건, 선수의 문제도 있지만 코치들의 문제도 분명히 크다. 그걸 인정했다면 차라리 더 일찍 개편을 했어야 했다. 9월에 와 개편해 올라온 코치들은 대부분 1군 경험이 별로 없다. 1군 선수들의 근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도 자신할 수 없다. 해결사들이 아니다. 결국 또 분위기 타령이다. 그게 아니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뀌면 팀 성적이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지속 가능한 팀의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코칭스태프와 프런트는 ‘우주의 기운’이 진작에 팀을 떠나간 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다. 무엇이든 문제다. 개편은 그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 돈을 쓰고 편하게 하라며 대신 ‘리빌딩 버튼’을 눌러줄 정신 나간 모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은 구단 역사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더 큰 문제는 당시 잔치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래도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었다. 2019년은 정규시즌 88승을 한 팀이었다. 에이스들의 전력 이탈은 있다 하더라도 이 정도 전력이라면 다음 시즌에도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해 버린 것이다. 근거없는 상상에 차 있었고, 문제를 지적하는 일부 프런트의 주장은 뒤로 밀렸다. 이미 팀 내부에서 이런 저런 균열의 조짐이 있었는데 이를 외면해 버렸다.
그런 방심은 선수단의 노쇠화와 함께 팀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2020년 SK는 9위까지 추락한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즌 초반부터 모든 문제들이 걷잡을 수 없이 속출했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팀은 기지개 한 번 제대로 켜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지금 SSG에 중요한 건 그런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9월 3일의 패배가 2023년과 2024년 이후의 전망을 극적으로 부활시키는 하루가 될 수 있을까. 이미 끝난 잔칫상을 다시 세팅할 수 있을지, 한 달 뒤 다시 꺼내볼 스크랩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SSG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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