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평)당 공사비 '1000만원 시대', 시작된 분양가 폭탄

정영희 기자 2023. 9. 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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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주 52시간제 후폭풍(2)] 공기 연장에 제반비용 커져… 건설업체 '울상'

[편집자주]노동자의 휴식권리 보장과 노동권 선진화를 위해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제'(근로기준법 개정안)가 올해로 시행 5년째를 맞고 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해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2018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주 52시간제는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안전사고와 부실시공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론 산업별 특성에 따라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연속 공정이 중요한 건설현장의 경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비용 증가를 상쇄하기 위해 각종 특수 자재와 공법이 시도되며 부실시공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일부 기업들은 발주처와 공사비 분쟁을 겪으면서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다. 30인 이하 중소기업의 경우 올해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돼 이 같은 분쟁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신규아파트 분양가가 상승하는 데에는 2018년 7월부터 도입된 주 52시간제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현장작업자들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공사기간(공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사진=뉴스1
◆기사 게재 순서
(1) 주 52시간제 분쟁의 서막… "수천억원 공사비 더 내라"
(2) 3.3㎡(평)당 공사비 '1000만원 시대', 시작된 분양가 폭탄
(3) 1~2년 늘어진 아파트 공사… 주 52시간 후폭풍 본격화

아파트 분양가격이 1년 새 10% 이상 치솟는 등 신규공급을 기다리는 수요자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공급망 대란으로 야기된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에 따른 원가 인상 여파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올 1월 부동산 시장 정상화 차원에서 실시한 분양가상한제 적용 폐지 영향도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민간아파트 3.3㎡(평)당 평균 분양가는 1628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1455만9000원) 대비 11.9%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는 1년 전보다 13.2% 오른 3.3㎡당 3198만4000원이었다. 수도권(3.3㎡당 2255만2000원)과 5대 광역시·세종(3.3㎡당 1706만1000원)도 같은 기간 각각 10.9%, 10.4% 올랐다. 8개 지방자치도(3.3㎡당 1335만5000원) 역시 이 기간 13.9% 가량 분양가가 뛰었다. 지역별로 지난 1년간 평균 분양가가 내린 곳은 17개 광역시·도 중 인천(-1.6%) 대구(-2.6%) 경남(-5.8%) 등 3곳이다.



늘어난 공사기간, 증가하는 비용… '주 52시간제' 여파 어디까지


이처럼 신규아파트 분양가가 상승하는 데에는 2018년 7월부터 도입된 주 52시간제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현장작업자들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공사기간(공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요일 휴무제'가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공공공사 현장이나 건설 규모가 큰 대단지 아파트 등은 더하다. 공사기간이 늘어나면 계약자들과 약속한 입주 일정을 맞추기 어렵고 자칫 입주 지연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계약자(수분양자)는 입주 지연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보다 적다면 지체상금 청구가 가능하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체는 입주자모집공고에서 정한 예정일 내 입주를 시키지 못한 경우 실입주개시 이전에 납부한 입주금에 사전에 정한 연체요율을 적용한 만큼의 금액을 지체상금으로 지급하거나 주택잔금에서 공제해야 한다.

입주 전까지의 납부 대금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친 것으로 통상 전체 분양가의 70~80% 정도다. 연체요율은 예금은행 가중평균 여신금리와 시중은행이 정한 가산금리를 합산한 이자를 통해 추산하는데 고금리 여파를 고려하면 현재 연체요율은 연 10%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0억원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지체상금은 건설업체에게 만만찮은 금액이다.

지체상금을 피하려면 줄어든 근로시간을 채워줄 추가 현장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신호탄으로 외국인 근로자가 크게 줄어들며 건설업계는 유례없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종합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인력 부족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건설현장에서 기술인력 채용이 어려웠다고 답한 업체는 94%로 집계됐다. 인력 부족으로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공사비가 증가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 기업도 61%에 달했다.

공사기간이 늘어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내야 할 분양보증수수료도 추가된다. 주택 선분양 시 사업주체가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 이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 통상 분양보증수수료는 분양가에 포함돼 있지만 공사기간 연장으로 늘어나는 부분을 반영한다고 이미 정해진 분양가를 더 올릴 순 없는 일이기에 이는 온전히 건설업체가 떠안아야 하는 몫이 된다.

2018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1000억원 이상 사업장에선 주 52시간제로 인한 공사 지연으로 최대 14.5%의 공사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노무비의 경우 최대 20.5%까지 증액될 것으로 분석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기 지연은 현장에서 가장 예민하게 보는 것인 만큼 기업이나 직원들 입장에선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법으로 정해진 근로시간은 있고 그렇다고 공사를 대강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공사비 인상은 결국 아파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건설업체는 늘어난 비용으로 인한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상당액을 분양가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2020년 400만~500만원 수준이었던 3.3㎡당 공사비는 현재 600만원대 후반에서 700만원대 후반까지 급등했다. 일부 사업장의 경우 3.3㎡당 공사비가 1000만원을 찍기도 했다.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정비사업 현장도 늘어난 공사비로 난리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홍제3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지난 8월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했다. 2020년 3.3㎡당 공사비 512만원에 계약을 체결했으나 현대건설이 지난해 687만원, 올해는 약 900만원으로 잇따라 공사비를 늘려달라고 요구한 데에서 갈등이 비롯됐다.

아예 공사를 중단 위기를 맞닥뜨렸던 사업장도 있다.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선경3차 재건축조합은 공사비 인상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사업을 중단했다. 서초구 신동아아파트는 시공사인 DL이앤씨가 3.3㎡당 공사비를 474만원에서 65% 인상한 780만원으로 증액을 요구해 현장이 일시정지됐다 최근 약 720만원에 합의했다.

착공 시점이 3년 뒤인 2026년 6월임을 고려하면 원자재 가격 인상 추세가 이어질 경우 실제 공사비가 3.3㎡당 1000만원에 육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에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과 동시에 시공자가 발주자에게 계약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민간공사 표준도급계약서'를 개정했다. 계약 변경 요인에 대한 세부 기준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실제로 이를 활용한 건설업체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기준법엔 2주 단위나 3개월 내 단위기간을 설정, 그 기간에서의 총 근로시간이 평균 주 52시간을 초과하는지 계산하는 탄력근로제가 규정돼 있다. 1개월의 정산 기간을 기준으로 1주 평균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는 유연근무제도 도입됐다.

하지만 이 같은 대안이 공사기간 연장으로 인한 공사비 인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제를 이유로 발생하는 공사비 인상 리스크(위험)를 해결하기 위해선 해당 제도 자체를 손보기보단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추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은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초과 근로시간 운용을 '주' 단위로 해야 하는 탄력근무제 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를 추구한다면 주 52시간제의 바람직한 정착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지금 건설현장에선 주 52시간제에서 수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가 안착 중인 상황이어서 공사기간을 앞당기기 위한 목적에서의 제도 개편은 최근의 부실공사 이슈와 안전 문제로 볼 때 적합해 보이진 않는다"며 "선택적 유연근무제 도입 정도가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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