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념 전쟁’에 참전 않는 여당, ‘총선 악재’ 눈치만

정대연·조문희·문광호 기자 2023. 9. 4.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지도부, ‘홍범도 흉상 철거’ 관련 공식 언급 없어
당 관계자들도 “대통령 발언 아슬아슬”…중도층 민심 촉각
‘벌거벗은 임금님’ 빗댄 이준석 “망토 안 입었다고 말해줘야”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야권을 겨냥한 ‘이념·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고 있다.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잡아야 하는 중도층의 반감을 키울 수 있어서다. 당내에선 총선을 앞두고 ‘전쟁’을 선포한 윤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8·15 광복절 축사를 시작으로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일에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 축사)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뒤로 가겠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이전 문제와 관련해서도 “잘못된 것을 가만히 놔둬야 하느냐”며 ‘역사 바로 세우기’ 의지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 논란처럼 윤 대통령이 먼저 내지르면 여당이 뒷수습을 하던 앞선 사안들과는 달리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가 불거진 지난달 25일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는 공개회의 석상에서 한 차례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1일 국회에서 본회의 도중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이미 입장을 다 밝혔으니 그것으로 갈음하겠다”고 했다. 이후 장동혁 원내대변인이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이 진정 홍범도 장군의 명예를 위한다면 이제라도 이념 논쟁을 즉각 멈추기 바란다”고 논평한 게 전부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당론으로 정할 사안은 아니다.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국민의힘의 선 긋기는 이념·역사 전쟁이 결코 여권에 유리한 이슈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나왔다. 총선이 7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보수 지지층을 굳건히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총선 승패를 좌우할 수도권 중도층 민심을 잡는 데는 악영향을 줄 거라는 데 여당 의원들도 대체로 공감한다. 수도권 위기론을 제기하는 안철수 의원은 지난달 29일 당 연찬회를 마친 뒤 “정부가 최근 이념 공세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앞서 당 핵심 인사들이 참여하는 전략회의, 사전 최고위원회의 등 비공개회의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가 논의됐는데 부정적 의견을 밝힌 참석자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 지도부 한 인사는 “당이 모든 사안에서 (대통령을) 다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 최근 발언은 아슬아슬해 보인다”며 “ ‘적폐청산’을 하려면 총선 후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과 정부가 이념전쟁을 이어갈 경우 국민의힘이 계속 외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핵관’ 이철규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홍범도 장군의 사망 당시 레닌기치(신문)에 게재된 부고장을 보면 홍범도 장군은 공산주의 이념에 충실하였음이 명확하다”고 밝혔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 2일 대구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치맥(치킨+맥주) 페스티벌에서 “누군가는 (윤 대통령에게) ‘지금 망토 안 입고 계세요’라고 계속 이야기해줘야 한다”며 “지금 본인은 망토 좋은 거 입었다고 착각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윤핵관’들이 ‘이런 망토 처음 본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빗대 윤 대통령과 주변인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대연·조문희·문광호 기자 ho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