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들고 튄 '간 큰' 4인조…70일간 종적 감췄는데[新경찰청사람들]

송상현 기자 서상혁 기자 허경 기자 2023. 9. 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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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중석 팀장 등 서초서 강력6팀 인터뷰…차량 3대 갈아타며 도망
70일 넘게 생활반응 안나오자 …탐문 수사로 울산·충북제천서 검거
서초경찰서 강력6팀이 23일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민재 경사, 김정규 경위, 곽중석 팀장, 송욱호 경사, 이우열 경사. 2023.8.23/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서상혁 허경 기자 = "70일간 종적을 감췄죠. 생활반응이 전혀 안 나왔어요"

대부업자 소유의 20억원짜리 수표를 들고 달아난 4인조. 지방으로 흩어진 후 행적은 묘연했다. 이들은 도주 과정에서 차를 세 차례 갈아타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알고 보니 치밀한 기획…수표 지급은 정지했지만

특수절도 혐의를 받는 4인조를 붙잡은 곽중석 팀장(55) 등 서초경찰서 강력6팀은 이번 사건에 팀원 5명 모두를 총동원할 만큼 난관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사건의 발단은 A씨(36)가 대부업자가 발행해 준 20억원짜리 수표를 들고 달아나면서부터였다. 곽중석 팀장은 "서초역 인근 노상에서 대부업자를 만난 A씨가 사진만 찍겠다고 수표를 받은 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의 차를 타고 그대로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신규 가맹 계약을 체결할 때 점주의 자금력을 확인하기 위해 점주 자신의 명의로 된 수표 사진을 찍어서 보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대부업자들이 다른 사람의 명의로 수표를 잠시 발행해 주고 5억원당 수수료를 300만원 정도 챙기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고 한다.

곽 팀장은 "A씨는 수표를 찢어버리고 재빨리 지급정지 신청한 다음 제3자의 명의로 수표를 재발행해 편취하려던 속셈"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수표 번호를 알고 있던 대부업자가 먼저 지급 정지하면서 실제 20억원을 빼앗기는 것은 막았다.

당장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추적을 멈출 순 없었다. 곧바로 차량의 이동 동선 추적에 들어갔다. 하지만 A씨는 렌터카 2대를 더 갈아타는 능수능란함으로 경찰의 추적을 지연시켰다.

강력6팀은 렌터카를 빌린 명의자와 A씨가 최근까지 거주하던 곳의 CC(폐쇄회로)TV 등을 확인해 이번 사건에 총 4명이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의 지인 B씨(43)는 이번 사건을 기획했고, C씨(34)는 운전기사, D씨(34)는 대부업자와 A씨를 연결한 브로커 역할이었다. 이번 사건은 이들 4인조가 치밀하게 기획한 계획범죄였던 것이다.

곽중석 서초경찰서 경감이 23일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8.23/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생활반응 70일 넘게 안 나왔는데 어떻게 잡았을까

문제는 범행 후 70일 넘게 이들 중 누구에게서도 통화 기록이나 카드 사용 등 생활반응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 수사를 주도한 송욱호 형사(39)는 "4인조가 있을 만한 곳을 탐문하는 수밖에 없었다"며 "C씨와 D씨의 생활 터전이 울산이기 때문에 울산으로 향해 조력자를 찾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송 형사는 C씨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폰의 기지국 정보와 계좌 입출금 내역 등을 통해 조력자 E씨의 존재를 확인했다. 곧바로 E씨의 집에서 잠복근무가 시작됐다. 송 형사는 "처음에는 2박3일 잠복했지만 C씨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 허탕을 쳤다"며"며 "주로 밤 10~11시에 돌아다닌다는 것을 추가로 확인하고 다시 울산으로 가 체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붙잡힌 C씨는 고향 친구인 D씨와 간간이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송 형사는 C씨가 검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재빨리 D씨까지 붙잡고 울산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C씨가 D씨에게 연락해 만날 약속을 잡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눈치챈 것일까. D씨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송 형사는 C씨를 통해 확보한 D씨의 친구들에게 연락해 자신의 말을 대신 전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을 썼다. 송 형사는 "'종이 쪼가리 수표 한장에 인생을 망치지 말라', '가담 정도가 낮으니 자수해라'라고 설득했다"며 "결국 D씨는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C·D씨는 이번 사건의 주범 격인 A·B씨의 행방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20억원 수표 역시 이들이 가져간 상황이어서 외려 형사들에게 답답함을 호소할 뿐이었다.

강력 6팀은 A씨가 장기간 숨어있으려면 애인 F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F씨의 소재지를 찾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F씨가 충북 제천에서 전입 신고를 했다. 송 형사는 "시간이 3달 가까이 흐른 만큼 경찰이 더 이상 추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도한 것 같다"며 "바로 F씨의 거주지로 향했다"고 말했다.

F씨의 주거지 주변 CCTV를 통해 A씨가 F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잠시 다시 잠복이 시작됐다. 한여름에 에어컨도 틀지 못한 채 밤새 잠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심야엔 불침번 개념으로 돌아가면서 비좁은 차에서 1~2시간씩 쪽잠을 자기도 한다. 곽 팀장은 "잠복근무 때는 화장실도 한곳만 가면 의심받고 싫어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잠복 3일째 되던 날 밤 12시가 됐을 무렵 A씨가 F씨와 함께 강아지 산책을 위해 나왔다. 송 형사는 "A씨를 보자마자 반가움 반, 열받는 감정 반이었다"며 "차 안에만 있다가 잡으러 나가려니 손발과 심장이 떨렸다"고 회상했다.

더 반가운 것은 A씨와 한 집에서 B씨도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B씨는 주말에는 인근 모텔에서 생활하는 패턴이어서 현장에서 바로 붙잡을 순 없었다. 다음날 B씨가 머물던 모텔 인근 커피숍에서 B씨까지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83일 만이었다.

곽중석 서초경찰서 경감과 팀원들이 23일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8.23/뉴스1 ⓒ News1 허경 기자

◇24년 강력팀서 대부분 보냈는데 '강력의 매력'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선수를 한 곽 팀장은 1992년 무도 공채로 경찰에 입직했다. 이후 24년 경찰 생활 대부분을 강력팀에서 보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모자 살인사건과 은행 경비직원 강도 자작극 등 굵직굵직한 사건도 많이 맡았다.

곽 팀장은 "강력의 매력은 현장감"이라며 "사건을 받으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범인을 특정하고 어디에 있는지까지 찾아내야 하는데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격"이라고 웃었다.

형사의 자질을 물었더니 끈기와 차분함을 꼽았다. 곽 팀장은 "범인을 쫓기 위해 길면 10시간 넘게 CCTV를 봐야하는데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구토까지 나오는 일"이라며 "끈기와 차분함이 없으면 첫 단계나 다름없는 CCTV 추적 수사부터 막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송 형사는 두가지 자질을 잘 갖춰서 이번 사건을 잘 해결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곽 팀장은 "강력팀 형사는 피의자를 한번씩 강하게 눌러줘야 할 때가 있다"며 "그동안 날고 기는 많은 형사를 봤지만 송 형사가 그런 아우라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치켜세웠다.

송 형사 역시 이번 사건 해결에서 곽 팀장의 역할을 높게 평가했다. 송 형사는 "이번 사건에서 우리 팀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현장 경험이 많은 팀장님이 적극적으로 지휘한 덕분"이었다고 공을 돌렸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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